-읽는 라디오
오프닝
우리는 기억을 하기도 하고, 기억을 잊기도 합니다. 기억을 한다는 건 강렬함 때문일 것이고, 기억을 잊는다는 건 다른 더 강렬한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흐려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억지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지우려 애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망각이라는 건 과연 축복일까요? 아님, 저주일까요?
음악
-미도와 파라솔 (이젠 잊기로 해요)
미도와 파라솔 (Mido and Falasol) - 이젠 잊기로 해요 (Let's forget it) Hospital Playlist 2 OST Special Lyrics
사연
매일 저녁 설거지를 하면서 내일 아침에는 빈속에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지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그걸 잊고 새벽부터 쓴 커피를 마십니다. 오전 근무를 하면서 이따 오후에는 냉장고를 정리해야지 생각하고 다짐하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또 하루를 넘깁니다.
이렇게 하루에 몇 번씩 계획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 당장 큰일이 나는 것들은 아닙니다.
그런데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들이 생긴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금 하는 공부의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데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왜 하는지 기억하면서 하고 싶지 않은 공부여도 해내야 하는데 그 이유를 자꾸만 망각합니다. 해야 할 공부의 양을 채우지 못하면 자기 전에 제 자신이 너무도 바보 같아서 화가 납니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 하지 못한 분량만큼의 양을 채우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그다음 날도 여전히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횟수가 잦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망각은 저주가 되어버립니다. 나 자신을 갉아먹으며 자책하고, 후회합니다.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못합니다.
사소한 것까지 전부 기억한다면 사람이 힘들고 괴로워서 행복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망각이 축복이라고 생각하십니다. 맞습니다. 너무 힘든 건 잊고 살아야 합니다. 그게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저도 힘든 일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일부로 잊기 위해서 애썼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써 잊으려 했을 때는 그 기억이 더 또렷해져서 더 힘들었습니다. 그 뒤에는 충분히 아파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니 기억이 흐려졌습니다. 흐려진 기억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 이럴 때는 망각이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둘 다 제가 겪은 상황인데 어떨 때는 저를 향한 저주라고 생각하고, 다른 상황에서는 축복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과연 뭐가 맞는 걸까요? 제가 너무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사람인가요?
음악
-god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클로징
자책하는 시간을 보내다 글을 썼습니다. 내일은 그렇지 말자고 다짐도 했습니다.
사람이라 그럴 수 있다고 다독여주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낸 저를 위로해 줄 사람이 저라는 것도 알아서요.
오늘도 수고했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큰 행복을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