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과 달라진 게 없어서 더 슬프다

-읽는 라디오

by 하쿠나 마타타

오프닝

상황이 불만족스럽다면 사람마다 선택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바꾸거나, 타인에게 요청을 해서 상황을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그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체념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떤 선택을 하시나요?



음악

-박지윤 (해야 할 일)

박지윤 - 해야 할 일 (From “겨울왕국 2”)



사연

아이가 5살 때 만난 아이 친구 엄마가 있습니다. 동네에서 오며 가며 마주치면서 인사는 했지만 일부로 약속을 잡고 만나서 커피를 마시거나 대화를 한 적이 없습니다. 서로 연락처를 가지고 있으나 연락하지 않는 사이였던 거죠.

'언니, 커피 한 잔해요.' 한 줄의 카톡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거절할 명분도 없었고.

약속 시간을 잡고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하 그녀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그녀는 착한 걸로 따지면 제 지인 중에 단연 탑오브 탑에 속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녀는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극성스러운 시댁 식구들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이나 요구도 군소리 없이 다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하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남들의 눈에 보이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해내는 그녀에게 대단하다고 하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라고. 자기가 하는 건 너무 하찮은 일이라고. 남편이 자기에게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매일 같은 소리를 한다고. 그게 사실이라고 합니다.


가스라이팅을 제대로 당했고, 지금도 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7년 전에 유치원 행사가 끝나고 아주 잠깐 동안 몇몇의 엄마들이 모여 투썸을 갔는데 "언니 저 여기서 2년 넘게 살았는데 여기 처음 와 봐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비싼 커피 마시지 말라고 해서 못 와 봤다고. 그 뒤로 이어지는 남편의 행동과 언어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집안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생활이 다르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런데 잠깐동안 들은 내용은 다른 게 아니고 상식을 벗어났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녀의 자존감은 이미 바닥이었고, 남편이 하는 말이 다 옳기에 따라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 사냐, 그건 너무 심했다, 이렇게 야무지게 아이 잘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아무 일도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참고로 그녀는 다둥이, 넷을 키우고 있습니다.)

다 같이 입을 모아 남편이 그러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데 그 와중에 그녀는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라고 하니 다들 할 말이 없어 커피타임이 마무리되고, 그게 그녀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달라졌을까요? 진심으로 그러길 바랐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행동과 말은 여전했고, 그녀는 그 상황이 답답한 건 머리로는 알지만 바꿀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남의 일에 오지랖을 부리지 말자고 숱하게 다짐을 했지만 오늘은 지키지를 못했습니다.


그녀에게 같은 여자로서 하는 말이니까 기분 나쁘게 들지 말라고 당부하며,

답답한 걸 알면 하나라도 바꾸려고 노력을 해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거부터 찾아서 하루에 하나씩 해라. 남편이 심한 말을 하면 "그렇게 말하지 마요."라고 말하는 것부터 해라. 고 했지만 그녀는 머리로는 알지만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그런 딸 둘이 나중에 자기처럼 살아도 괜찮아? 아들 둘은 그런 남편처럼 되어서 자기 아내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괜찮냐고 물었더니 "그건 슬프네요. 그런데 안 그러겠죠."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더 이상의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상황이 잘못된 걸 인지하고는 있지만 그녀는 바꿀 용기도 힘도 없어 보였고, 제가 하는 말조차 그녀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만두는 게 맞다고 판단되어 이번에도 서둘러 마무리했습니다.


집에 와서 한참을 생각해 봤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투성이고, 7년이 지난 시간 동안 그 어느 것도 바뀌지 않은 상황에 슬펐습니다.

제가 그녀에 대해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그런 그녀가 가여워 보였습니다.

상냥한 그녀가 웃음에도 생기가 없고, 남편의 막말에 반박할 힘조차 없다는 게.

그저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음악

-하동균 (그녀를 사랑해 줘요)

하동균 - 그녀를 사랑해 줘요 [가사/Lyrics]



클로징

제가 그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녀도 원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 무거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분명 그녀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일 텐데 그걸 모르는 게 더 가슴이 더 아픕니다.

그녀도 분명 순간순간 행복을 느낄 테지만 그 순간순간이 자주 그녀를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수고했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은 행복을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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