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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마타타 Dec 13. 2022

돈 없어도 잘 살고 있습니다

-제 옆에 오래 계셔 주세요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다.

내 기억이 왜곡되지 않았다면.     


“그런 거 안 해도 잘 살아요. 얘네 시대에는 돈만 있으면 사람 부리고 살 수 있어요.”

엄마가 할머니께 큰 소리 아니 어쩌면 포효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올해로 시집살이 47년째 하고 계시는 엄마가 할머니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하극상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렇다. 우리 엄마는 지금도 97세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계시는 예순이 넘은 며느리이다.

게다가 설, 추석 차례를 제외하더라도 일 년에 13번의 제사를 지내고 계시는 종갓집 맏며느리이다.

양가 어른들끼리 술 한 잔 하시면서 순한 엄마를 맏며느리로 삼겠다는 말로 엄마는 아빠의 얼굴을 약혼 날 처음 보고 나서 한 달 뒤에 결혼식을 하셨다.

시집에 와 보니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데, 결혼하지도 않고, 아직 학생 신분으로 있는 시동생과 시누이가 줄줄이 사탕마냥 여섯이나 있었다. 게다가 홀시어머니까지.

    

천성이 부지런하고 착한 엄마는 군소리 없이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아빠의 벌이가 얼마 되지 않는 것을 알고 나서 돈 되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하셨다. 거기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의 속옷까지 손으로 빨아가면서 아홉 식구들의 집안일을 혼자서 해 내셨다.     



내 나이 열 살.

그날은 어쩐 일인지 할머니께서 빨래를 개기 시작하셨다.

“너도 여기 와서 빨래 좀 개라. 여자가 이런 것도 해야 결혼해서 잘 산다.”

할머니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에 엄마가 발끈하신 거 다.

당신 딸의 속옷을 당신의 딸은 손도 못 대게 하시면서 당신의 손녀딸에게,

아니 엄마의 우주인 하나뿐인 딸에게 하신 소리에 정신 줄을 놓아버리신 거다.     


외할머니께서는 엄마가 아주 어릴 적부터 몸이 편찮으셔서 친정에서도 집안일은 엄마 몫이었다. 위로는 오빠가 셋, 아래로는 동생들 넷을 모두 엄마 손으로 밥을 해주시고, 밤에는 혼자서 공부를 하신 대단하신 분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걸 엄마 손으로 해내시는게 당연했다. 결혼 전 본가에서부터 지금까지.

딸의 방청소는 물론, 12시가 넘는 시간에 라면이 먹고 싶다는 철부지 딸 한마디에 라면을 근사한 요리로 내오시는 그런 엄마 밑에서 결혼 전까지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나는 부잣집 공주님처럼 살았다.    

 


서른이 넘어서 라면도 못 끓이는 그런 딸이 결혼을 했다.

사위 손을 잡고 “미안해. 아무것도 못 하는 애야. 내가 그렇게 키웠어. 그래도 내 딸이지만  애는 정말 착해. 많이 사랑해 주면서 살아.” 사죄와 부탁을 동시에 하셨다.  


   

여전히 부자는 아니라 사람은 부리지 못하고 산다.

그런데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하지 않았나.     


빨래를 세탁기에서 건조기까지 넣는 게 나의 몫이고 꺼내어 개고 서랍에 넣는 건 남편 몫.

발로 툭툭 치며 지나갈 길만 있으면 되기에 청소는 내 몫이 아니다.

아이의 옷에 있는 단추가 떨어졌는데 아이는 너무도 당연하게 엄마가 아닌 아빠에게

“아빠, 나 단추 달아줘.”라는 소리를 한다.     



올해 결혼 10년 차인데 여전히 잘하는 것은 없다.

라면 물도 계량컵에 맞춰서 타이머로 시간을 재면서 끓이고, 담가 준 김치를 써는 것도 못해 시댁과 친정에서 김치를 잘라서 통에 담아 온다. 꽁꽁 얼린 사골과 온갖 반찬과 함께.     


엄마 말대로 집안일 못해도 잘 살고 있다.

비록 돈이 있어서 사람을 부리면서 사는 건 아니지만.

돈을 벌어다 주면서 집안일해주는 남편과 동네 맛있는 반찬 집 상호도 모른 채 지낼 수 있게 해 주시는 엄마와 시어머님이 계시기에 오늘도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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