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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마타타 Dec 09. 2022

진정한 된장녀를 꿈꾸다

텀블러가 아닌 매장 컵

“주문하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라는 소리를 듣고 잠깐 멈칫했다.

500원 차이지만 아메리카노와 라떼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매장 내 손님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고, 한 잔이라는 소리가 내 것임이 확실하다.

오늘도 역시 500원을 아끼겠다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나 보다.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어서 어디든 나서야 했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만나자고 불러낼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택한 곳이 나의 마음의 안식처, 스타벅스     




20년 전, 스타벅스 파트타임 공개 채용을 보고 pc방에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급하게 써서 지원했다. 당일 마감이라는 문구에 수정할 시간도 없었다.     

3일 뒤,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서류 심사는 합격했고, 다음 주 월요일에 면접이 있으니 소공동에 있는 본사로 오란다.     

면접에 합격을 했고, 본사 교육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지원하는 매장을 적어 제출하란다.    

 

1. 강남역 2. 광화문 3. 메가박스     

너무 바빠서 남들은 모두 피해서 쓰는 지점만 골라 썼다.

바쁜 곳에서 일을 하면 더 빨리 커피를 내릴 수 있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     

배정된 곳은 쓴 적이 없는 선릉역점이었다.

으리으리한 빌딩들이 많이 모여 있는 오피스가.

‘뭐야, 바쁜 곳 지원했더니 한가한 곳으로 유배 보냈나?’


첫 출근부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른 아침,

파트너가 출근하기 전부터 매장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5명이 있었고, 매장에 들어가는 순간 선배 파트너는 샷을 내리고, 나보고 주문을 받으라 했다.

본사 교육 중 포스 교육이 있었지만 실전에서는 아메리카노를 찾는데도 1분이 넘게 걸렸다.     

그렇지만 선배 파트너는 손님의 얼굴을 보고 주문을 하기도 전에 음료를 만들어 놓고 내 옆에 와서 포스를 찍어 주었다. 그렇게 폭풍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나서야 선배 파트너와 인사를 했다.     


“아침인데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이건 아무것도 아닌 걸요, 점심시간을 기대해보세요.”라며 선배 파트너는 웃었다.     

말끔한 정장을 입고, 목에 사원증을 건 사람들이 삼삼오오 들어오는데 순식간에 매장이 꽉 차 버린다.     

의자에 앉는 사람은 없고 커피를 받고 바로 나간다.  내 시급보다 비싼 커피를 들고 자릿세도 내지 않고.  


스타벅스 커피가 비싼 이유는 오래 앉아서 내 할 일을 하기 위한 자릿세가 포함되어 있기에 비싼 것이라고 알고 있는 그동안의 인식이 완전히 깨져버리는 현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된장녀의 상징인 스타벅스의 커피를 들고나가는 회사원들이 멋있었다.

분명 달랐다.

말끔히 입은 정장에서 자신감이 배어 나왔고, 목에 건 사원증에서 그들의 경제적 여유가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 진정한 된장녀가 되자.’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서 과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번 돈으로 내가 누리면서 멋있게 사는 것이 진정한 된장녀라고 스스로 정의하며 파트타임 첫 출근 날 결심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된장녀가 아닌 500원을 아끼겠다고 라떼 대신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텀블러 할인을 받는 억척스러운 아줌마다.     

회사의 서류를 가지고 와서 카라멜 마키아또와 조각 케잌을 시켜 놓고 일을 하는 대신,

아이들이 풀어놓은 문제집을 가지고 와서 채점을 하고 있다.     

 급하게 회사의 업무에 관해 물어보는 전화를 받는 대신,

보험 권유하는 전화를 받고 끊을 타이밍을 잡지 못 한 채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저녁에 먹을 국을 끓여놓고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

서류가 아닌 공부방에서 아이들이 풀고 간 문제집을 채점하고 있는 40대이지만 여전히 된장녀가 되고 싶다.

아니 이제 500원에 벌벌 떨지 않고

 당당하게 카라멜 마키아또를 투명하게 보이는 매장 컵에 담아 마시는 된장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남아있는 커피의 텀블러 뚜껑을 닫는다. 서둘러 나의 출근지이자 퇴근지인 집으로 간다.  

열심히 채점한 문제집과 된장찌개에 넣을 두부 한 모만을 가방에 넣은 채로.

햇살이 유난히 빛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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