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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님 Mar 23. 2023

차라리 단칼에 자를 수 있는 감정이라면.

지금의 나에게는 슬픔, 분노, 허망함, 고통 등 이러한 단어들만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아무리 좋은 글귀를 보아도 매일 아침 눈을 감고 눈을 뜨는 일조차 버거워 회사를 나가는 일조차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다.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 그러면 두 사람은 적어도 내가 죽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지 않을까. 그게 내 최고의 복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이 나를 갉아먹으며 3개월 만에 몸무게가 8킬로가 넘게 빠졌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 왜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날이 오겠지.)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나에게 살면서 잘 못 했던 기억들보다 좋았던 기억들만 생각이 났다. 연애 때도 결혼 후에도 사이가 틀어지기 전까진 매일 아침 수고하라는 카톡 문자와 일하는 시간 도중 시간 날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던 사람. 둘 다 술을 좋아하지 않고 노는 것도 잘 맞아 여행 가서도 싸운 적이 거의 없던 사람. 내가 어딜 가더라도 항상 데리러 왔던 사람. 그런 사람이었기에 충격이 더 컸고 마음이 쉽사리 내려앉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날까. 


친구는 그런 내 말을 듣고 그랬다. 그건 과거고 결국 너한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이라고. 맞다 그건 이미 과거일 뿐 미래가 될 수 없다는 걸 아는데 나는 왜 이리도 미련한지. 


외도를 걸리기 5개월 전 권태기가 크게 온 것으로 느껴 한 달 남짓 떨어져 자면서 생각할 시간을 가졌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집안일과 더불어 함께 그려나갈 미래에 대해 전혀 소통하지 않고 함께 있어도 외로웠던 그 사람에게 나는 지쳐있는 상태였다. 아마 그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  찰나의 시간 동안 그는 매일 술을 마시고 내 눈치만 보았다. 노력하려고 하는 모습이 아닌 여전한 그의 모습에 1주일 정도 내 눈치 보지 말고 천천히 생각 좀 해보라며 친정집을 다녀왔고 그 이후 그 사람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원래도 나에게 소통하지 않았던 사람은 더 동굴 속으로 들어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겨우 한 달도 안 된 시간이었다. 


그게 그에게 그토록 커다란 상처였을지 모르겠지만 내 잠시의 부재가 그 여자와 함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그가 다른 여자와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는 5개월 동안 나는 혼자 관계를 돌려보려 고군분투했었다. 부부상담을 받기 위해 혼자 상담소도 찾아가 보고 말투를 바꿔보려 관련 책도 사서 읽어보고 울며불며 이야기 좀 하자며 매달려도 봤지만 이미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는 나의 울부짖음이 들릴 리가 없었다.


매일 한 카페를 찾아가 이혼 후 삶에 대한 게시글을 살펴본다. 내가 곧 가야 할 길이도 하고 잘 이겨낸 사람들을 글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공통적인 건 몇 년이 지나도 그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할 뿐 나를 위해서 또는 죽지 못해서. 


그 카페를 가며 항상 느끼는 건 정말 많구나 이렇게 상처받고 이혼하는 사람들이. 내가 당사자가 되지 않아 모르고 있었을 뿐 진짜 너무 많아도 많다는 생각. 그럴 거면 대체 왜 결혼을 하는 건지 왜 결혼을 해서 멀쩡한 사람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건지. 도대체 그 심리는 무엇일지 너무 궁금했다. 차라리 너무 힘들면 이혼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지. 


나는 결혼 전에 늘 그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만약 나와 살다가 지치고 힘들어서 다른 사람이 좋아질 것 같으면 제발 나랑 이혼하고 만났으면 좋겠다고. 이혼이란 건 어떤 이유에서든 힘든 게 맞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과의 만나는 모습을 내가 알게 되거나 보게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결국 그 바람은 지켜지지 않았고 우리 관계는 이렇게 끝이 났다. 


다음 주면 확정판정을 받고 구청에 서류를 내면 끝이 난다. 이제는 말하고 싶어도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진짜 남이 된다. 그는 두렵지 않은 걸까. 나는 아직도 이렇게 많이 혼자가 되는것이 두렵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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