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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Aug 20. 2021

몽골에서 말타기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몽골 말타기 여행_18


전설은 그렇게 시작된다.
작은 들풀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듯,
지금 여기에서 품어오는 생각 한 점이 삶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달빛 속을 바람처럼 
질주해 가는 어린 늑대의 환영을 더듬고 있자니 
나그네의 가슴이 하염없이 설렌다.

-      신영길의 <초원의 바람을 가르다 > 중에서 –

-       



몽골에서 말을 타고 돌아온 지 딱 한 달째 되어가고 있습니다. 엊그제 같은 데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울란 바토르 향 비행기를 탈 때 만해도 설레는 마음이 가득 찼고 말을 탈 때에는 오직 말타기에만 집중하고 초원이 선사하는 평온함에 빠져 지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에는 그 아쉬움이 마음속 곳곳을 가득히 적시고 집으로, 일터로 돌아왔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말타기가 있어서 시원하게 또는 더욱 뜨겁게 보낸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름휴가로 몽골로 간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의아한 표정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인에게는 몽골이라고 하면 특별히 여행지로 떠오르지도 않고 여름 휴가지로도 잘 가지 않는 외국 중의 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 가는 몽골이었지만 오직 ‘말타기’와 ‘하늘의 별’을 기대하고 몽골로 향했습니다. 9박 11간의 몽골 말타기는 저에게는 많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갔다 온 지 한 달 내내 만나는 사람마다 저에게 한 마디씩 합니다. 왜냐하면 검게 탄 제 얼굴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몽골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꼭 갔다 와야 하고 좋은 사람과 꼭 갔다 오라고 말이지요.



좋은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추억


여행은 혼자 가기도 하지만 여럿이 갈 수도 있습니다. 아침편지 여행은 혼자 오시는 분도 있고 가족 단위로 오시기도 하고 부부끼리 오시기도 하고 여러 형태로 오십니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사는 곳도 다양하고, 하시는 일도 전부 다릅니다. 그런 분들이 ‘말타기’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몽골로 가는 여행입니다. 다른 여행처럼 수도인 울란바토르 근처에서 말을 한 두 번 타고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초원의 한 복판 헨티까지 장장 12시간을 가서 말을 타는 것입니다. 여행은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침여행은 자연스럽게 마음이 맞는 분들끼리 모이시는 것 겉아 좋습니다. 나무 결이 같은 것처럼 ‘마음의 결’이 같은 분들이 오셔서 더욱 아름다운 무늬로, 모양으로, 색깔을 입혀가면서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여행이라 생각됩니다. 거기에서 초원 아침의 싱그러운 이슬방울 같은 모습을 만들기도 하고, 노란 야생화와 푸른 풀밭에 수놓은 것 같은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불타는 석양을, 때로는 무엇보다다 밤하늘의 별과 떨어지는 별똥별의 긴 꼬리 같은 풍광을 만들어 냅니다.

칭키스터넛 캠프의 중앙식당과 작은 식당을 오가면서 하루에 세 번씩 같은 식탁에서 만나고, 그리고 세면장에서, 그리고 오논 강 가에서 마주치는 얼굴에는 아름다운 미소가 야생화처럼 예쁘면서도 은은하게 피어 있어 좋았습니다. 여행 내내 서로를 향해 웃어주는 얼굴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들꽃, 야생화였습니다. 그러했기에 더욱 아름다운 추억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서로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 나누려는 모습이 예뻐 보였습니다. 이런 모습의 아침편지 여행의 바탕 화면이었습니다. 


마음속의 점, 인생의 점


저도 몽골 말타기를 오려고 몇 년간 기회를 보다가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 과감하게 신청했습니다. 그 결과로 마음속의 점을 또 하나 찍을 수 있었습니다. 3년 전 산티아고에서 찍은 점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고 몽골 말타기는 다시금 힘을 실어주고 또 다른 점을 찍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도원 님이 강연하실 때마다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의 점’, ‘북극성’을 찍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인생의 점을 찍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습니다. 지금 60대라고 해서 지금 10대라고 해서, 지금 애를 한참 키우고 일을 해야 하는 청장년의 때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인생의 점이 제대로 찍어야 방향을 잡을 수 있고 그다음 점을 찍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인생의 점을 찍다가 보면 그것이 선이 되고 아름다운 작품이 된다고 합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제가 하고 싶었는데 가슴속에 잠자고 있던 것을 깨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까마득하게 잊고 살다가 그것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고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가슴이 다시 기쁨으로 차기도 하고 깊은 에너지를 모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들 가슴속에 하나의 점을 찍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다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으로 인해 인생의 하나의 점을 찍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우리 삶에 있어 의미 있는 사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특히 10, 20대 청년들에게 큰 점을 하나씩 찍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젊고 어렸을 때 세계 최대의 지도를 그린 나라, 칭기즈칸을 만나기 위해 몽골에 말을 타러 왔다는 그 자체만으로 앞으로의 인생에서 큰 변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하나의 점에 불과할 수 있지만 언제가 나중에 이 점이 커다랗게 다시 부각되어 큰 점으로 연결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40대 이상 분들에게는 몽골에서 한 점이 중간 체크 포인트로 삼아서 지난 온 점과 앞으로의 점을 연결하여 지금쯤 어디에 와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점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연과의 온전한 대화


몽골, 특히 헨티의 칭키스너텃에서의 일주일은 나에게, 우리에게 온전한 자연 속의 삶이었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오두막에서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자연 속에서 온전하게 살았습니다. 게르에서의 일주일은 어느 오성급 호텔보다 더욱 우리에게 편하게 다가왔습니다. 깔끔하게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쁘게 화장을 하지 않고 생얼로 만나도 부담 없습니다. 아침에는 에어컨 바람보다 더 신선한 초원의 바람이 우리를 깨워주고, 게르 밖에는 아침 우유보다 신선한 아침이슬이 풀밭에 영롱하게 맺혀 있는 것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런 풀밭을 거쳐 자그마한 언덕까지의 산책은 초원이 주는 아침 선물이었습니다. 낮에 내리쬐는 태양빛은 꿉꿉한 게르 천막과 우리 빨래를 뽀송뽀송하게 말리는 자연 건조기였습니다. 


오논 강의 물살은 말타기로 지친 우리 몸에서 땀과 피로를 깔끔히 씻어주는 노천탕이었습니다. 오논 강의 물살은 우리를 물에 몸을 맡기는 기분도 느끼게 해 주었고 거기서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시원하게 씻어내는 마을의 냇가였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했고 순수해질 수 있었습니다. 옛날 칭기즈칸 때 불었던 오후의 시원한 바람은 우리에게 조용히 눈을 감고 오수를 즐길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눈을 감고 편안한 상태로 빠져들 수 있도록 명상음악 같은 역할도 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석양은 어디에서 본 것보다 붉게, 빨갛게 불타올라 한동안 끊임없이 보게 만들었으며 우리 가슴을 붉게 물들여 아름답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밤하늘의 별은 어디에서 본 것보다 바로 우리 머리 위에 떠 있어 바라보는 우리를 순수하게 만들었고 가끔씩 떨어지는 별똥별에 우리의 소망을 하나씩 띄어 보내기도 했습니다. 가끔씩 밤사이 게르 지붕 위로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은 작은북을 두들기는 것처럼 어디서 느낄 수 없는 박자와 리듬을 들려주는 듯했습니다. 일주일간 콘크리트로 된 건물을 마주하지 않고 오직 자연이 주는 환경 속에서 지내는 것은 참 특이한 경험, 선물을 선사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자연으로만 갖추어진 휴양지는 꽤 드물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시작, 새로운 출발


이번 여행은 2018년 중반을 넘어선 여름휴가 시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여름휴가를 반년 동안 쉬지 못한 것을 쉬기 위해서 조용한 곳이나 아니면 관광지로 떠나곤 합니다. 아침편지 여행 가족이 택한 몽골 말타기 여행은 또 하나의 시작이었고 출발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말을 타기 위해서 도심에서 12시간 동안 차를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길이 없는 곳을 길을 찾아서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타기 여행은 그런 것을 다 넘어서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멈추고 끝내는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잘 몰랐던 몽골, 때로는 몽고라는 나라로만 알고 있던 나라를 제대로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고, 역사상의 인물로만 생각했던 800년 전의 어린 테무친과 세계 최고 지도를 그린 칭기즈칸을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칭기즈칸이 이제는 우리에게 살아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조건에 대해서 생각만 하거나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찾던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가슴 한 편에 접어 두었던 꿈을 꺼내서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금 펼치고 그 꿈을 생각하게 하고 다시 꿈의 노트에 자신의 삶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감정들을 직접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 오논 강가에서 불어오는 새벽바람과 시원한 공기 속에서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마주하고 ‘용서’하고 ‘화해’함으로 우리를 아프게 했던 작은 가시를 빼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를 짓누르고 생채기 냈던 작고 큰 돌을 옮길 수 있어 우리 감정과 마음이 치료받을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상처 난 감정과 마음에 사랑의 빨간 약을 바르고 사랑의 반창고와 붕대를 감을 수 있어서 너무도 좋았습니다. 거기에 ‘감사’라는 무한한 에너지를 충전함으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하늘로 비상할 수 있는 로켓 추진 엔진을 부착할 수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자신 안에 용서와 화해로 마음을 씻어내고, 사랑과 감사로 충전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지금 새로운 출발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런 용서, 화해, 사랑, 감사라는 4박자 멜로디를 우리를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새롭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더위 탈출


이번 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 대부분 이번 여름처럼 더운 여름은 없었다고 말하실 정도입니다. 그런 여름의 한 복판에 우리는 몽골로 향했습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빗줄기는 한낮의 소나기와 같았습니다. 한국이 39도 40도를 오르락내리락할 때 우리는 선선한 가을 날씨 같은 아침 바람을 쐬기도 하고 저녁 이후에는 가벼운 니트나 점퍼를 걸칠 정도로 선선한 날씨 속에서 생활했습니다. 정말로 더운 곳을 피해 가는 진정한 피서를 우리는 하고 왔습니다. 몽골에서의 일주일 동안 덥다고 느낄 때의 기억은 별로 없는 걸로 기억합니다. 한낮에 말을 탈 때도 말 위에서는 말을 타는 흥분감과 짜릿함으로 더위를 느끼지 못했고, 땀이 흐르더라도 공기가 습하지 않아 더위를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덥다’라는 말보다는 ‘좋다’라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라면 욕실에서, 또는 해수욕장에서 물에 수없이 들어갔다 나왔다 했을 겁니다. 하지만 몽골에서는 일주일간 물과 별로 친하지 못했습니다. 더워서 물과 친하기보다는 최소한의 물로 우리의 외관을 꾸미기 위해 물을 사용했지요. 다만 오논 강에서는 예외였습니다. 말을 타고 캠프가 조용해지는 낮잠 시간에도 게르 안은 시원했고 에어컨이 별도로 필요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주일간 우리가 에어컨이 없이 보낸 것을 보면 정말로 피서다운 피서를 보낸 것은 틀림없지요. 아마도 이런 것은 초원이라는 거대한 그늘 한가운데 우리가 생활했기 때문이지 모릅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무더운 여름을 보내기 위해 피서지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서슴없이 ‘몽골’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몽골 초원에 가면 전혀 덥지 않고 바닷가나 계곡보다 더 시원한 피서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가을 아침과 여름 낮과 초겨울의 밤을 다 느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살아있는 동물과의 교감, 말타기


아침마다 우리를 태우기 위해 말 조교분들이 말을 타고 끌고 온다. 이분들의 이동 수단은 초원에서는 말, 그 자체다. 도시로 이동할 때는 오토바이도 타고 차량도 이용하겠지만 웬만한 거리는 말로 이동할 것이다. 일주일간의 말 타는 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라는 이동수단을 이용했다. 물론 편하다. 쿠션도 있고 에어컨도 있고 창문도 있다. 하지만 살아 숨 쉬는 그 무엇이 없었다. 


말타기는 참으로 근사한 경험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살아있는 생물, 말의 등위에 올라타서 말과 함께 이동하는 것이다. 첫날에 등자에 발을 걸고 말 등위에 올라탔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처음에는 안장에 앉아서 잘 몰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말이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천천히 산책하는 것처럼 걸을 때는 잘 몰랐지만 하루, 이틀 지나고 말과 함께 달리고 나서 말갈기 주변을 손을 대보면 말이 흘린 땀을 느낄 수 있었고 말이 숨 가쁘게 숨 쉬는 것을 손바닥으로 느낄 수 있었죠. 이 경험은 차를 타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차를 타고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 것과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은 비슷할지는 몰라도 말을 타는 것은 말과 내가 몸으로 마음으로 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말과 나와의 대화는 고삐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이것은 차의 핸들과 같다고나 할까요. 말과의 진정한 대화는 말의 등과 나의 허벅지 안쪽으로 하는 것 같았습니다. 피부와 피부가 닿아서 서로의 근육으로 서로에게 의사를 느끼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말하는 것은 서로가 닿아서 느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느꼈습니다.


첫날 이후로 말을 탈 때마다 말의 갈기 부분을 쓰다듬어 주거나 토닥거려 주면서 말을 건넵니다.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한다. 오늘 잘해보자.’ 그렇게 하는 말(言)을 말(馬)이 알아듣는지는 잘 몰라도 일주일간 사고 없이 잘 지낸 것 같습니다. 말을 탈 때는 나도 불편함이 없어야 하겠지만 내가 잘못 타서 말에게 힘을 가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특히 ‘셕셔레’하면서 달리기 시작하면 안장에서 엉덩이를 들고 기마자세로 허벅지를 말 등에 붙이면서 말과 하나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말이 잘 달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말의 달리는 진동이 제 상체에게 잔잔하게 전해져 옴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800년 전 몽골 기병들은 한 병사당 마을 서너 마리를 같이 데리고 다니면서 말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 50-100km마다 역참을 두어 말에게 무리를 주지 않고 말과 잘 호흡했기에 말을 이용한 스피드로 세계 최대 지도를 그리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편안한 고급차를 타고 달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살과 살을 맞대면서 평지나 언덕이나, 강을 건널 수 있는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꼭 한 번씩은 해봐야 하는 경험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저뿐만 아니라 이번 여행, 아니 말타기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은 지금도 아는 지인들에게 권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을 안 타봤으면 말도 하지 마”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이 보는 것이 휴대폰일 것입니다. 항상 편하게 갖고 다니라고 해서 휴대폰인데 휴대폰이라 아니라 ‘휴대폰님’으로 변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가지고 가지 않으면 불안하게 느끼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주머니에 가만히 있는데도 진동을 느끼는 ‘상상 진동’까지 느낄 정도가 되었습니다. 말타기 여행은 그런 잘못된 습관을 과감하게 털어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더 많이 선물한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말타기 여행은 휴대폰을 그냥 사진기로 전락시키거나 계기가 되었습니다. 데이터 로밍을 해오더라도 몽골에서의 핸드폰은 사진을 찍을 수 있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그 이상의 기계는 되지 못했습니다. 몽골 초원의 광활함은 휴대폰이 가진 약점을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무엇을 검색하더라도 잘 되지 않으니 여행 가족들이 잘 꺼내지 않습니다. 예쁜 야생화나 멋진 풍경이 아니면 휴대폰은 주인 얼굴 구경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들여다보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무심코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거나 무언가를 검색하거나 읽으려고 하는 행동에서, 몽골에서는 곰곰이 자신에 대해서, 앞날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동안 휴대폰이 방해했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다시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한쪽으로 밀어두었던 생각의 고리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이리 생각하고 저리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내듯이 조용히 앉아서 바빠서 정리 못했던 머릿속의 생각과 마음속의 감정을 하나씩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더러워져서 빨아야 할 생각과 감정은 이쪽으로 정리하지 못한 것들은 깔끔하게 정리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니 우리에게는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고 그동안 놓쳤던 우리들의 중요한 숙제들을 한꺼번에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삶에 속도에 밀려서, 휴대폰을 보면서 낭비했던 시간에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때에 따라 피는 야생화의 아름다운 자태와 살아있는 동물의 멋짐, 바람이 빗어내는 온갖 자연의 조화를 보았습니다. 특히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과 파란 하늘과 갖가지 모양의 구름을 보면서 우리 자신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동안 보지 못해서 기억 속에서 사라진 우리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고 더불어 내면의 우리도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이면 앞에 보이는 동산을 조용히 오르시는 분도 있었고, 부부 두 분이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아침저녁으로 산책하시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정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조용히 푸른 풀밭을 거닐다 보면,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면 우리 마음은 차분해지고 내면으로 자신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시작된 ‘몽골 앓이’


여행 다녀온 지 이제 한 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행 갔다 온 후 일상생활을 하다가 뭔가 허전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직 생활에 잘 적응을 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몽골에서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몸이 익숙해져서 그런 느낌이 몸이 느끼지 못하고 감정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건 저만 겪는 몽골 말타기 후유증이 아니었습니다. 가깝게는 아침편지가족에서 말타기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이며 한 번씩은 다 겪고 있었고 몽골에서 말을 타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겪는 공통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몽골에서 말타기 여행은 다른 해와 여행과 조건상 별반 나을 게 없는 여행입니다. 온수가 잘 나오는 호텔에서 숙식하는 것도 아니고 멋스러운 건축물이나 예술 작품을 구경하는 여행도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몽골 초원에서 말을 타고 온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좀 날 때면 휴대폰을 열고 몽골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거기에서 본 푸른 초원과 예쁜 꽃, 그리고 파한 하늘을 자주 열어봅니다.


만나는 사람에게는 몽골 말타기 여행을 전하는 전도사가 된 듯한 기분입니다. 이야기하면서 무엇이 좋냐고 물으면 ‘그냥 좋다, 다 좋다’고 말합니다. 무조건 푸른 초원에 가서 말을 타고 달려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저는 몽골 말타기 여행을 왜 두 번, 세 번씩 오는지는 갔다 이제야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대에 와다가 30대에 온 이유를 2년 전에 왔다가 성적 잘 받아서 다시 온 고등학생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3번씩이나 오는 이유를 이제야 할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증상의 해결책은 다시 한번 몽골에 가서 말타기를 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짧게는 내년, 아니면 그 후에라도 이 증상이 치유될 때까지 말을 타야 되지 않겠습니까? 16년째 ‘말타기’ 중병을 앓고 계시는 고도원 님이 그 증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1년 후의 나를 향하여


아침편지 여행에서 준비한 노란색 편지지 2장과 노란색 봉투 1장. 오랜만에 써보는 편지였다. 특히 노란색은 더욱 맘에 든다. 아침지기들이 입는 노란색 점퍼와 목에 두르는 스카프도 눈에 띄어 푸른 초원에서 아침지기님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아침지기의 고유한 색상이 된 듯한 노란색이 너무나 마음에 든 적이 처음이다. 돌아와서 봄, 가을에 입을 바람막이 옷을 살 기회가 있어 마음먹고 노란색 점퍼를 하나 샀다. 시간이 되면 나도 입고 다니려고 말이다.


앞으로 1년 후인 2018년 8월에 몽골에서 배달되는 편지를 쓰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몽골 말타기 여행을 하면서 변화된 마음의 상태에서 ‘나에게 쓰는 편지’는 그래서 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편지지를 받아 들고 캠프에서 쓰지 못해 울란바토르로 돌아와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편지가 도달하는 2019년에는 올해 여름처럼 ‘가슴이 막 뛰는 상태’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래서 편지 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1년 후의 나의 살아가는 모습이 크게는 변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에 느꼈던 많은 생각과 뛰는 가슴, 황홀한 감동은 내년에도 계속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11일간의 느낌을 글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을 잊지 않고 말을 탄 내 모습을, 푸른 초원, 파란 하늘을 생각하면서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내가 자주 꺼내 볼 수 있고 잊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아마도 이곳에 느꼈던 많은 감동대로 살기만 한다면 나를 포함해서 여행 가족들의 삶이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빛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삶의 염려와 고단함으로 잠시 힘들 수는 있겠지만 그 감동을 유지하면서 늘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우리가 1년 후에 노란 편지봉투를 받았을 때 자신 있게 열었으면 합니다. 그 편지를 읽을 때 성장하고 꿈에 더욱 다가간 모습으로 살았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것까지 디자인한 것이 아침편지 여행의 속 깊은 배려가 아닐까 합니다. 오늘도 자신이 있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2018년 말타기 여행 가족들을 사랑하고 응원합니다.



또 하나의 가족, 꿈의 가족


몽골 말타기 여행을 갔다 왔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땠어?’, ‘경비는 얼마 정도 들어?’ 두 가지로 압축된다. 두 번째 질문에 사람들은 약간은 비싸다고 하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나는 산티아고 걷기 여행 때도 그랬고 절대 비싸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갔다 오시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아침편지 여행은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경제성을 따지는 경비나 효율성면을 이야기하면 그냥 여행을 갔다 오면 됩니다. 하지만 아침편지 여행은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드는 여행입니다. 또 하나의 친구를 만나는 여행이고 여행을 통해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냥 공항에서 한 번 얼굴 보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헤어지는 여행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반 패키지여행에서 느끼는 못하는 ‘조별 모임’도 있고 조별 장기자랑도 있어서 하나가 될 수 있는 여행입니다. 처음에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서 여행 후에는 자주 보고 싶은 사이가 되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아침 편지 여행은 서로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내어주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싸 가지고 온 귀한 것을 서로에게 내어 주려고 하고 대접하려고 하고 서로 양보하려는 여행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얻어먹은 것이 먹는 것만 따져도 너무 많다. 식사 때는 귀한 밑반찬과 식사 후에는 향내가 좋은 커피, 그리고 출출할 때 먹을 수 있는 간식 등을 서로에게 귀하게 대접한다. 여행 중에 우리는 서로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또한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아침편지 여행은 자신의 이야기보따리,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누가 먼저 이야기하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 “me story”를 하면서 자신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들어주고 위로하고 격려해줍니다. 처음 만나자마자 하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사감포옹’이 있어서일까?  여행을 끝낼 때쯤 되면 오랜 친구처럼 살아온 서로의 스토리를 알게 됩니다. 그것을 통해 인생을 배워 갑니다. 삶의 지혜를 배우는 되는 소중한 기회가 됩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을 기획한 또 하나의 가족, 고도원 님을 비롯한 아침지기님들이 있어서 좋습니다. 그들의 헌신과 노력, 세심한 배려와 준비로 인해 여행이 쾌적하고 즐겁고 의미가 깊어집니다. 해결할 문제가 있으면 노란색을 입고 나타나는 그들이 있어 더욱 행복해진다. 그리고 한결같이 행복이 넘치는 멋있는 미소를 소유한 멋쟁이들이시다. 아침편지 여행을 하면서 아침지기님들을 보면서 나도 그러한 미소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미소가 내 얼굴에 편안하게 자리 잡을 때까지 말이다.


무엇보다도 더욱 좋은 것은 아침편지 여행은 우리가 잊었던,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불러내고 찾아내게 한다. 그러면서 여행을 하면서 꿈을 꾸게 되고 자연스럽게 ‘꿈꾸는 자’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하나의 가족, 꿈의 가족이 된다. 식구는 ‘밥을 같이 먹는 사이’라고 하지요. 꿈의 가족은 ‘꿈을 같이 꾸고 꿈을 같이 노력하고 서로가 꿈꿀 수 있는 사이’가 아닐까 한다. 누군가는 칭기즈칸이 꿈꾸었던 그 기상을, 누군가는 어렸을 때의 꿈을, 누군가는 다른 이의 모습에서, 서로의 모습에서 꿈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꿈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런 가족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2018년의 몽골 말타기 여행이 한 여름밤의 꿈처럼 짧게 지나갔지만 그 시간이 우리에게는 많은 의미를 남겨 주었고 깊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하나의 점이 되어 살아서 점점 크고 점점 짙게 마음과 머릿속에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칭기즈칸이 숨쉬었던 공간에서 같이 숨 쉬고, 밥 먹고, 말을 탔던 그 순간들이 멋있는 장면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 의미가 살아 숨 쉬게 되면 우리는 정말로 하나의 가족, 꿈의 가족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지루하고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년 몽골 말타기 가족 파이팅!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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