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글쓰기
당신의 10살은 안녕했나요?
나는 그리 화목하지 않은 대가족 안에서 자랐다. 그날도 A와 B가 멱살을 잡고 욕하며 싸웠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다 같이 밥을 먹을 때 내가 동생에게 물을 뺏어 먹지 말라며 째려봤고, B가 내 성격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했다. 나는 자주 듣는 말이었지만, 가끔 듣던 A는 그날따라 마음이 아팠나 보다. 가슴에 늘 활화산을 품고 다녔던 A가 B의 화살을 받자마자 폭발했다.
성격이 이상한 애로 불리던 나. 어딘가 모르게 많이 뒤틀려있던 10살. 음침한 기운을 내뿜는 애. 나 때문에 맨날 싸움이 벌어지는 것 같았고, 모든 게 내 탓 같았던 시절.
“도대체 왜 그러니 왜. 내가 너 때문에 못 살겠다. 나가서 같이 죽을래?”
나는 A의 말을 듣고 흔쾌히 죽겠다고 했다. 쌩쌩 지나가는 차 사이에 깔리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나 따위 필요 없지 않은가 싶었다. 납작해져서 땅에 붙어있고 싶었다. 정말이지 사라지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뛰어나갔다. 그런 나를 A는 붙잡았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신이 지금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색의 물감을 쥐어 줄 것인가요?
나의 어린 시절은 회색이었다. 물론 학창 시절 몇 순간은 파스텔 색조의 그림이었지만, 집에 들어가면 그림 위에 회색 물감을 뿌리기 바빴다. 나는 그것이 우울인 줄 몰랐다. 그냥 늘 들었던 것처럼 내 성격이 여전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마음속 그림들을 하나씩 회색으로 칠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자. 성인이 된 나에게 남은 건 빼곡히 회색으로 뒤덮인 도화지 한 장이었다. 거기다 무엇을 그리든 배경은 잿빛이었다. 많은 것이 지옥 같았고 허무했고, 허망했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혔고,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티 나게 미워했다. 나와 가까울수록 더 미워했다. 그건 바로 가족과 나였다.
당신이 깊은 물 속으로 침잠할 때, 숨을 쉬게 해 준 것은 무엇인가요?
내가 누군지 매일매일 까먹고 있었다. 이러한 내가 아주 조금씩 회색 도화지에 흰색을 칠하게 된 계기가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고양이고 하나가 글쓰기다. 26살 때 책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며 모닝 페이지를 접했고, 반 년 간 새벽마다 일어나서 글을 썼다. 무의식의 글을. 효과는 정말 극적이었다. 내 마음을 드디어 내가 들어주었다. 그것도 아무 편견 없이.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꼈다. 그렇게 달팽이가 기어가듯 천천히 나와 화해 하고 있었다. 그런 내 옆을 묵묵히 지켜봐 준 친구가 바로 고양이다. 우주를 담은 눈으로 아무런 선입견 없이 바라봐주던 고양이. 우리 감자. 나는 내가 길 잃은 새끼 고양이를 거둬들인 줄 알았지만, 사실 감자가 방황하는 나를 거둬들인 것이었다.
죽어있던 어린 시절에 장례를 치르고 나는 그렇게 두 번째 생을 살게 됐다. 옆에서 나를 사랑으로 지켜준 고양이들과 글쓰기. 그렇기에 나는 고양이를 먼저 얘기할 수밖에 없다. 죽어있던 마음을 살릴 때 곁에 있어 준 이가 고양이었기에, 새벽에 나를 지켜준 나의 단짝이기에. 이렇게 고양이 이야기를 쓰고 나서야 내 이야기를 조금씩 달팽이처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