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당신이 내게 책이란 뭣이냐고 묻는다면
목이 타 몸을 뒤로 젖힌다. 뭐라고 답해야 하나.. 미세한 떨림이 컵을 훑고 지나간다. 같은 질문을 들을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군. 소개팅이나 사이가 가까워지려면 으레 묻는 말이지만, 상대가 의도했든 안 했듯 관계 진전에 앞서 통과의례처럼 다가오니 일종의 테스트 같달까.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잇자국이 선명한 빨대를 떼어내고 입을 연다. 책 읽거나 글 쓰려고 펜을 끄적여요. "다른 고정적인 일(?)은 안 하세요?" 넵.. 손에 쥔 컵이 싸늘해진다. 부연 설명도 없고, 따라오는 질문도 잠시 멎는 정적에 숨 막힌다. 요즘 같이 취향 인플레이션 시대에 골프나 테니스를 하는 등 있어 보이는 취미와는 거리가 멀고 각자도생이 디폴트인 현실에서 주식, 부동산, 코인 같은 재테크 공부나 영어, 코딩 같은 자기 계발을 한다고 어필하지 않는다니 상대가 의아해 할 수밖에 없겠지.
티 내진 않지만 쉴 때 책을 읽는다는 건 뭔가 '한가해 보이고 내향적인' 이미지라 다른 취미와는 달리 비교적 만만한 독서시간을 자신에게 할당해 헌신하리라는 착각에 빠지게 하나보다. 책을 파고드는 시간도 우 to the 영 to the 우 같은 재밌는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관에서 마블 영화를 보는 것처럼 격리된 시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왜 모를까? 나에게 독서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에게 오래전에 테니스 동아리 회장까지 했구요~ 7번 아이언을 휘둘러 보니 허리가 아작 날 거 같은데요~라는 말로 이해를 구하려 구구절절 용쓸 바에 이성과의 만남보다 책을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를 남기는 게 여러모로 맘 편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복잡한 심정으로 자리를 지킨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은 어느새 눈부시고, 컵에 담긴 얼음이 하나둘 사라진다. 눅눅해진 공기에 상대의 눈을 쳐다보려니 뒷벽에 영화 <헤어질 결심>이 흐릿하게 상영된다. 난 문장으로 구원받는 사람이에요. 종교와 와인, 예술가를 추종하는 것만이 숭고합니까?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책을 덕질한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후.. 영화에 미쳤다고 말하는 편이 나았으려나. 독서하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말하기가 불편하다. 아니, 매우 불편해! 골쟈스한 나만의 스페셜 리딩&띵킹 세션이라고 브랜딩해야 마침내 리스펙 해주려나. 참 표현하기 고단한 사회다.
좋아하는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영국을 고른다. 정확히는 런던 돌길과 그 위를 누비는 장수풍뎅이 택시, 중후한 중년 남성의 클래식한 패션이 내 취향이다. 해리포터의 한 장면을 상상하면서 런던 Underground 플랫폼에 처음 들어섰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였나.. 독서한다는 이미지는 내게 영국을 떠올리게 하고 뭔가 멋져 보였다. 한동안 영국 발음하는 이성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살았었다. 명예 영국인이냐고? 역사를 떠올려보자. 2005년, 영국인들은 끔찍한 지하철 테러를 당해도 Keep, Calm and Carry on 구호를 외쳤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 폭격부터 이어온 구호는 영국인 특유의 차분함을 나타낸다. 냉철해 보이는 침착성은 그들의 책 읽는 문화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독서가 영국을 상징하는 진짜 헤리티지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영국 드라마 <셜록>에도 이런 대사가 있지. Brain is the new sexy. 증말 영국스럽다. 지구 반대편 섬나라를 추앙하는 사상을 듣고는 누군가 런던 지하철에선 전파가 터지지 않는다는 팩트 폭행을 해 잠시 인지부조화에 빠졌으나 나라별 독서 현황을 찾아보니 현실은 달랐다. 최근 한 칼럼에서 인용된 연평균 독서량 통계에는 우리나라는 8권이고, 영국이 무려 100권으로 클라스 차이만 선명히 느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성인 독서량은 갈수록 줄고 있다. 런던 지하철에 함께 탔던 청년과 노인들의 책 읽는 눈빛은 찐인지라 영국향 북 판타지는 여전히 영롱하다. 가끔씩 런던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마다 연희동에 책바라는 술과 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 말 그대로 Bar이면서도 책 읽기 좋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한동안 퇴근 도장을 찍고 다녔다. 책에서 언급된 술과 칵테일을 직접 조주 하는 주인장의 센스에 하루키가 찬양하는 아일랜드 위스키를 마시며 취중 독서로 그날 쌓인 스트레스를 흩날렸다.
이런 은밀한 독서 취향을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후회했다. "술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고?!" 외계 생명체를 본 듯한 그의 말투와 비아냥 거리는 반응에 나는 취함의 미학에서 느껴지는 갬성이 있다고 열심히 항변했다. 부질없는 짓인줄 그땐 왜 몰랐을까? 차이를 서열화시키는 게 익숙한 시대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아닌 이단자는 무시받아 마땅하다고 치부한다는 걸. 더군다나 그는 부동산 경매로 한몫을 단단히 챙긴 사람이라 삶의 우선순위와 가치관이 나와 더 멀어졌고, 마침내 일찍 손절하지 못한 게 아쉬운 관계가 되었다. 결이 다른 사람을 만나려면 다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부질없는 싸움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리지 않게 다른 주제로 대화를 덧붙이지만, 그 후에는 무슨 말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내 안으로 튄 작은 불티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만 갔다.
물론 그의 논리가 맞는 부분도 있다. 책으로 현실을 다 담을 수 없다. 술 마시며 책 읽을 시간에 세상을 보라 같은 의견에 공감하는 바이나, 그가 성취한 기준으로 내 삶의 방식을 까내리며 스스럼없이 품평하는 태도는 일찍 성공을 맛본 '젊은 꼰대' 다웠다. 베트남에서 2주간 비를 맞아가며 집을 짓는 봉사활동을 같이 했던 그를 향해 돈이라는 수단에 온 몸이 잡아먹혀 이해심과 이타심마저 사라진 괴물로 변했냐며 속으로 경멸했지만 고개를 돌리고 씁쓸히 소주잔을 비웠다. 우린 과거처럼 지낼 수 없겠지. 어쩌면 뜨거웠던 그때의 추억에 갇혀 미련했던 걸지도 모르겠어. 현실감각이 흘러넘치는 그를 아득한 기억 저편으로 밀봉하는 일은 쉬울 리가 없었다. 한동안 지독히 울리던 그의 전화도, 서로가 그렸던 꿈을 추억팔이하는 문자도 더 이상 받지 않는다. 문득 궁금하네. 악어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다 다친 사람은 몇 명일까?
쉬는 날 계획은 그날 마음 신호등에 따라 갈린다. 영감을 떠올리기 좋을 땐 글쓰기, 보통의 나날엔 책 읽기, 폭주하는 생각에 막힐 땐 달리기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랄까. 한때 역마살이 껴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따고, 격투기도 배우고, 요리 공부도 하는 여러 취미생활을 찍먹 해오다가 결국 저 3가지로 정착했다. 그중 나를 키운 건 8할이 책이다. 크고 작은 시련의 파고가 있으면 독서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머리가 복잡하거나 답답할 땐 가방에 책을 넣고 집을 훌쩍 떠났다. 맛있는 음식만큼이나 책을 탐한다. 판타지 소설에 빠진 중2병 시절과 취업에 정신없던 때를 합쳐 견주어도 최근 몇 년간 독서량이 인생 고점을 찍고 있다. 난 아직 배고프다.
알고픈 주제가 떠오르면 도서 앱 장바구니에 책을 한가득 채우다가 아차 싶어 전자책 구독 서비스인 밀리의 서재 앱을 누른다. e북도 없고 텅장이 바닥을 긁는다? 그럼 따릉이를 타고 도서관으로 질주한다. (도세권에 살고 싶어!) 우연히 들린 서점에서 좋은 책을 만나면 필연의 운명으로 느끼고 남들이 채갈까 봐 서둘러 챙겨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마냥 선점의 깃발을 카드결제기에 꽂는다. 여기까지는 남들처럼 소소하게 덕질한다 치자. 옷 살 때보다 절판된 책이 배송된다는 문자에 더 설렌다면 사람들이 믿어줄까? 아직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해주지 않을까 싶어 용기 내어 남긴다. 독서에 이렇게 진심인 건 마냥 현명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유튜브 같이 화려한 이펙트로 떡칠한 영상과 트렌디한 인플러언서의 귀에 쏙쏙 꽂히는 멘트와 재밌는 자막들이 지식 습득에는 가성비가 확실히 좋다. 타임라인이 어느새 끝에 다다르면 불쑥 튀어나오는 관련 영상에 혹해 손이 가도 가슴 한켠에 무언가가 아련히 남아있다.
정확히 말하기 어려운 뭔가를 스탠드 불빛만 켜놓은 조용한 방에서 페이지를 넘기며 채운다. 답을 찾지 않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매번 똑같이 마주하는 질문에 새롭고도 참신한 설명을 바라는 걸까? 이 순간을 왜 좋아하는지 Why형 주석으로 주렁주렁 달기에는 여백이 부족해 논문을 따로 써야만 할 거 같다. 연구 주제는 「조도가 독서 집중도에 미치는 영향과 외부 자극 effect 정도에 따른 문해력 향상」으로 점찍어둔다. 잠깐만, 잠깐만. 내 인생에 열정을 쏟아낸 선택들에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지금은 그저 책 읽는 나 자신이 좋다. 아직도 읽을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이사 때마다 골머리를 썩히지만 이 고통마저 사랑이리라. 나 너 때문에 고생 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책이여, 너를 향한 애정은 여전히 뜨겁다오. 그러니 활자중독자와 헤어질 결심은 저 바다에 버려요. 더 깊고 깊은 바다에 버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