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슈라이버, 『어느 애주가의 고백』를 읽고
-술은 거대한 나르시시즘의 엔진이다.
-세상에 대한 절망감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것도 술 밖에 없는 현실이다.
-술이 적셔준 뇌 회로들은 자신을 위대한 사람으로 탈바꿈시키거나, 세상 누구보다 불쌍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그것도 취하도록 마시는 걸 말이죠.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퇴근하고 나면 어머니께서 술상을 펴고 같이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학생인 저는 호기심에 못 이겨 딱 한잔만 달라고 졸랐습니다. '이걸 왜 달다고 하는 거지?' 혓바닥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면서 술과의 첫 인연은 기침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온실 속 화초이던 어린 저에게는 고된 노동 후에 술을 달게 마시는 어른들의 세계는 소주가 채워서 찰랑거리는 잔처럼 영롱해 보였습니다.
음주음전 처벌 강화를 목적으로 여야가 합심해서 입법한 윤창호 법이 위헌이란 판결을 받았습니다. 고주망태로 마시고 운전대를 잡아도 국민 행복권이란 명목 아래 과음으로 인한 잠재적 살인은 든든하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MZ라 세대라 불리는 나이대 사람들과 이전 세대의 큰 차이점은 아마도 '술'에 관한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일전 대학시절에만 해도 부어라, 비워라, 마셔라 했지만 요즘 술자리에서는 맹목적으로 술을 마시진 않더군요. 취업난이나 뭐다 경제 환경도 어려운 것도 있지만 취하려고 마시기보다 다양하게 즐기려는 문화로 바뀌었습니다. 회식문화도 저녁에서 점심으로 바뀌고 래퍼 박재범이 출신 한 증류수 '원소주'를 3시간 기다려서 사거나 맥주를 직접 담그기도 하니깐요. 그치만 술에 영혼을 불태워 끝내 길거리에 파전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역시나 사회에서 알코올이 차지하는 역할은 여전히 굳건합니다.
저자는 알코올 의존중, 정확히는 중독자임을 스스로 인정합니다. 술이 주는 좋은 기능(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거나 자리를 즐겁게 하는)이 있지만 과하게 마시는 빈도가 잦았고 결국 일상이 깨져 인생에 악영향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자율학습을 밤 11시까지 하던 고된 3년 수험생활이 끝낸 뒤 대학에 들어가 마신 술은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였습니다. 고생 끝에 보상받았다는 느낌이었고 세상이 제 것만 같았죠. 스포츠 동아리를 들면서 선배들, 동기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늘면서 고주망태가 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체력이 좋을 땐 술자린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과 감정 소모에 지쳐 자연스레 술을 '달게' 마신다는 뜻도 알았습니다. 저자도 업무 스트레스에 못 이겨서 계속 와인병에 손이 뻗습니다. '자아의 판타지를 유지하게 해 주고 그 판타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현실을 숨기고 감추는 데 도움을 준다.' 저자는 압박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놀랍도록 일과 음주 사이에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말하죠.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기기만이 '딱 한잔만 더'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합니다.
술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술이 발명되고 역사상으로 사라지지 않은 게 그 증거죠. 금주령이 내려져도 신부님도 신의 물방울이라는 칭송으로 직접 포도주를 담글 정도니깐요. 우리는 술을 알게 모르게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즐거우나 슬프나 그 자리 옆에 자리 잡은 술을 우리는 통제 잘할 거라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요? 영화 「어나더 라운드」를 보면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잠재력을 발휘하는 수치죠. 적당히 취하면 이익을 취할 거라는 논리입니다. 소싯적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인정받았던 엘리트이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자신들은 술을 실험에 맞게 잘 조절할 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죠. 파일럿 테스트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일상이 180도 달라졌거든요. 잊혔던 자신감도 되찾아 수업에서 열정 있는 강사로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주인공들은 이내 실험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술 없이는 이전과 같이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없었거든요. 가족이 없는 한 실험 참가자가 회의시간에 술에 취해 들어오는 걸 보고 정말 패배했다는 걸 인정했습니다. 이 영화의 결론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술은 현실을 대체하지 못합니다. 몸에 피가 아닌 알코올이 돈다면 심장은 제대로 작동할까요?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케아벨리의 말처럼 알코올이라는 수단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군주가 될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술을 마시는 한 나는 내가 찾는 것이 무언인지 알아도 절대로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자는 냉정을 되찾았습니다. 자조 모임에 가서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시간을 가지고 술과는 거리를 두었죠. Just For Today! 딴 한잔 더에서 물러나라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길 강조합니다. 이 책을 읽고 예전보다 혼술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생각이 나면 편의점을 기웃거립니다만 전 애주가였던지라 앞으로도 조금씩 거리두기를 하려고 합니다. 술이 머리는 적셔도 마음을 채워주지 않네요. '술에 약한가?'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다면, 그리고 술이 아닌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힌트를 찾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 권합니다.
한줄평 : 읽다가 야 너두? 야 나두..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