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 『유행의 시대』를 읽고
몇 년전 평창 올림픽 롱패딩 열풍이 불었다. 단돈 10만 원에 열풍인 롱패딩을 사려고 사람들이 백화점에 몰려들었다. 나로서는 저렴한 옷을 사려는 열정 정도로 바라봐 새벽부터 줄 사려는 수고스러움을 납득하지 못했다. 옷은 가장 유행에 민감한 아이템이다. 어릴 적 떡볶이 코트부터 노스페이스까지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한 마리 철새처럼 유행에 적응하고 식으면 다시 떠나간다. 순전히 유행과 더불어 저렴한 가격이 한몫을 했지만, 줄을 서는 큰 노력을 지불할 만큼 의미를 부여하지는 의문이었다. 이 책 유행의 시대는 문화는 결국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완성되어 가고 암묵적 동의하에 구성된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사회 유지라는 측면에서 문화가 이제는 소비시켜야 고객이 있고, 그들이 채우지 못한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서 기능한다.
유행은 '사냥'에 비유가 된다. 끊임없이 사냥감을 던져주어 쾌감을 쫓아 삶의 원동력을 제공한다는 내용에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났다. 우리가 매일 보는 신문, 뉴스, 인터넷 등에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비하고, 감정을 소모할 떡밥을 던져준다. 이전에 있었던 지역적 갈등에서 이제는 오픈된 환경에서 고차원적인 남/여 갈등, 세대갈등 등으로 진화하여 사냥을 할 구실을 던져준다.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끊임없이 자극할 콘텐츠를 찾는 내 모습에서 이제는 스톱 버튼을 누를 때가 왔다. 스스로가 지킬 의지와 판단을 강조한 이 책에 감사하다.
잠에 취했던 휴일에 이불을 박차게 했다. 유행은 분명 달콤하다. 따라가기만 하면 최소한의 소속감을 주어 사람 구실을 하는듯한 존중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SNS 스타가 등장하고 아프리카 TV와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우리는 B급 문화라 치부하지만 스스로 독립하여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이 시대의 또 다른 선교자의 모습이 아닐까? 기존 기득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능력자들은 여러 채널을 통해 스스로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알리고 팬덤을 일으킨다. 앞으로 한 채널에서 강요받는 유행에서 다양한 매체로 유행을 선도한다는 건 여러 가지 문화가 형성된다고 좋아해야 할 일일까? 유행을 알고자 했지만 결국 자의식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던 소중한 책이다.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평창 올림픽 패딩 품절 사태는 결국 사회 흐름에 편승되고,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이루어낸 작품이 아닐까? 이 흐름과 이면에서 벌어지는 이해관계를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한줄평 : 유행은 쫓아갈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