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는 만큼 해방된다
가족은 나와 피가 섞였으니
남이 아니다.
가족이 나의 생각을 대변할 수도 없고,
나 또한 가족을 대변할 수 없다.
각자의 인격이 존재하고,
각자의 가치관이 다르다.
그게 남이다.
우리는 때론 가족이라는 이유로
연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라는 이유로 선을 넘는다.
그 사람이 '남'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기 때문.
'나라면 그렇게 안했을텐데'
라고 말하며 답답해하거나
조언하고 강요한다.
근데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의 모든 진리에
정답으로 존재하는가?
그건 아니다.
누구나 틀릴 수 있고,
때론 맞기도 하며,
때론 실수하며,
때론 허무맹랑하기도 하다.
그게 인간이고 삶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라면'이라는 전제가 항상 깔린다.
그냥 너와 나는 다른 남이고,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은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나즈막히 말해준다.
'나였으면 이랬을텐데,
너가 그랬다면,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좋다.
나 또한
타인에게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가까울수록
상대가 나와 다른 사람임을 인정해주는
그 태도에서부터
더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늘도 나는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하는 만큼
오히려 내가 더 편안해진다.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해서도
관대해질 수 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