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야 우산이 고장났음을 깨닫는다.

나중에야 깨닫는 것들

by 고도띠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튼튼해보이고

색깔도 이쁘고,

모양도 꽤 잘 빠진 우산.


한 번도 비가 내린 적 없을 때

이 우산은 '우산'으로 불릴 수 있다.


가끔 해가 너무 강렬할 때,

이 우산을 쓰면

오히려 양산 역할도 된다며,

좋아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날,

내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뜻밖의 공간에서

비가 내리기도 한다.


호기롭게 내가 들고 있는

우산을 썼을 때,

사실 그 우산은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처음 한 두 방울은

이 우산을 통해 막을 수 있다.

아니, 내 손으로 비가 새는 곳을

막아볼 수도 있다.

이 때까지만해도 자신만만하다.


그러나 비가 폭우처럼 바뀌면,

결국 우산에 여러 구멍들이

비를 막아주지 못함을 깨닫는다.


그렇게 나는 비에 젖어버린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닫는다.


'아 이건 진짜 우산이 아니라,

장식용 우산인가?'


남들이 볼 때,

정말 부러워할만한 멋진 우산인데

결국 비가 내리면 나는 그대로 젖어버린다.


비를 가득 머금어서

무거워진 옷과 머리카락이

찝찝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바로 털어버릴 수도 없게

온 몸 곳곳에 스며들어버렸다.


비를 맞아도 우산을 쓰고 있는게 맞을까?

이렇게 예쁘고 기깔나는 우산 모양이

또 있을까?

장식용으로라도 가지고 있을까?

눈은 막아주지 않을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동안에

비는 나를 더 적신다.

이제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그렇게 나는 자책한다.


우산이 있어도 우비라도 입을걸,

방수되는 옷을 입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니 내가 비가 오는 곳을 오지 말걸,

아니 내가 비가 내리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피해갈걸.


등등 비에 맞아버린 나를

질책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비가 와도 걱정 안 할 우산

있다면, 상관없었을텐데.


비가 어디서 어떻게 내릴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일부러 비가 오는 곳을

찾아가지 않는 이상.


결국 비가 와야 비로소

내 우산이 고장났음을 깨닫는다.


인생에 있어서

내가 자만하는 것은

그 상황이 아직 닥치지 않아서다.


누군가가 비에 젖었을 때,

나는 비에 젖은 사람을 보고

'그러게 왜 비가 오는 곳을 갔대?'

라고 질책하거나


'우산 좀 제대로 확인하지?'

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았다.

비는 언제 어디서든 내릴 수 있고,

그 양 또한 내가 알 수 없음을.


그렇기에 내가 가진 우산이

튼튼하고 좋다고 자만할 수 없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