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는 건 없다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다.
이렇게 지루한 여정일까?
아니면 내가 지루한 여정을
인생이라고 여기며 사는 걸까.
어느날 문득
내 인생에 있어서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내가 내린 결정을 스스로 책임진 경험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봤다.
어릴때부터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이탈없이 그렇게 남들 눈에 뛰지 않게
무난하게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학교를 다닐 때도
'취업하기 전까지는 연애 금지' 조항에 맞춰 살았다.
물론 몰래 한 번 하긴 했다.
부모님의 권유로
교회를 매주 다니기도 했는데,
보통 교회에서는
'-하라' 보다는
'-하지 말라'가 더 많다.
매일 잘못한 일을 끄집어내서
그걸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는게 미덕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죄를 안짓도록 늘 긴장하며
사는 편이었다.
만약 한 주라도 교회를 안간다고 하면
그땐 전쟁이었다.
일정한 패턴 속에서
늘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았다.
남들과 다르고 튀는 행동이나 생각은
나에게 허용되지 않는 영역이었다.
그렇게 정적으로 살다보니
사람을 많이 만나기보다는
나 혼자만의 세상에 가둬진 경우가 많았다.
물론 연애도 거의 안해봤다.
(그렇다고 모솔은 아니다;;)
가끔 회사 상사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연애도 해야돼' 라는 말이
Dog소리로 들렸는데
그런 말을 왜 한지 이제야 알 거 같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알게 되는 일인 것 같다.
나를 알게 될수록 나에게 맞는 사람도 알게 된다.
그리고 나의 찐따미도 깨달을 수 있다.
부모님이나 어른들은 '주변에 다들 결혼한다던데'
'이제 이쯤되면 시집가서 애 낳을 나이 아니니?'
'뭐든지 다 때가 있는 법' 등등
삶의 타임라인에 맞춰서 살아가길 바라는
목소리가 제법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이런 말을 신경 안쓴다고 해도
은근히 압박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나와 가까워진 사람들은
어느덧 나에게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라는 규율을 늘려줬다.
(친구라도 예외가 없었다)
그리고 난 그 규율이 편했다.
뭔가 내가 결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책임도 덜지는 기분이고, 남탓할 수 있어서?
그렇게 누군가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도 별로 없다.
(학창시절에 그 흔한 사춘기도 별로 안심했다고 한다)
인생의 패턴과 타임라인은
어느정도 남들과 비슷하게 흘려보냈다.
지금은 같은 직장에 다닌지 8년차.
어느덧 같은 것을 매주 반복하고,
같은 대화를 하고, 같은 일을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연달아 몇번씩 반복해서 먹어도
꽤 맛있게 먹는 편이다.
무언가 하고자 마음먹으면
계속 꾸준히 해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요즘 들어서 너무 지루하다.
사실 지루함은 좋은 것일 수 있다.
그만큼 평안하고 별 탈 없는 하루하루가 모여
걱정거리도 없이 지내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이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은
오롯이 내 스스로 삶을 제대로 개척해나가는
느낌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파도에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나무판자 같은 느낌이다.
나는 원래 디자이너 출신이었으나
어느덧 회사의 인력을 대체하다보니
마케팅, CS, 택배배송까지
잡다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근무중인 회사에서 6년차쯤에
팀원들이 퇴사하면서, 나에게
마케터가 되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는데,
그 때 나는 원래 내가 해오던 것처럼 순응했다.
(당연히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그렇게 지금은 마케터 디자이너로서 혼종이 되어있다.
그럼 회사업무말고도,
그동안 자아실현을 위해 무엇을 해왔냐고
반문할 수 있다.
부업에 도전해보기 위해서 유튜브 영상도 만들어보고,
나름 재테크를 하겠다고 주식을 공부해서
여러가지 투자도 해봤다.
물론 글쓰는 걸 좋아해서
네이버 블로그도 운영하다가
피드메이커에 당선되기도 했다.
겁이 많아서 절대 못할것 같았던 운전도
이제서야 운전면허를 따서
실제로 혼자 차를 몰고 다닌다.
티스토리도 해보고,
브런치 작가에도 몇번 도전해서 겨우 합격하기도 했다.
작년 초에 나의 목표는 단순했다.
'서울 아파트에 입주하기' 라는 생각으로
돈 모으기에 집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돈은 모이지만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공허함과 지루함이 찾아왔다.
이런걸 매너리즘이라고 하는건가?
아니면 슬럼프일까?
아니면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나에게 더 이상 큰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인가?
사실 저 목표는
그저 남들이 좋다니까,
요새 그래야한다니까,
그래서 가진 목표가 아닐까?
결국 궁극적인 의구심에 빠져버린것이다.
나는 왜 회사에서 이 일을 하고,
이 물건을 팔고 있으며,
퇴근하고도 지친 눈으로 휴대폰 속 차트를 보고,
황금같은 주말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타자를 치고 있는지.
정말 내가 남들이 좋다는 서울 아파트에 살면,
내가 돈을 평균이상 벌고,
남들처럼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면,
나의 삶은 다채롭고 즐겁고 흥미로울것인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나는 위에 언급한 목적들을 위해
과정 따위는 흥미롭지 않고 괴롭고 지루해도
참아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건가?
생각해보면 그동안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물론, 다들 원하는대로만 살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결정을 해서 그에 따른 책임과
결과를 받아들이고, 거대한 파도 앞에서도
버틸 수 있는 배를 만들려는 시도는 해볼법 하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정말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 행복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해야 되지 않을까싶다.
선장이 있는 배는 편하다.
그러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수 있고,
내가 원하는대로 가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당장 내가 배 조정대를 쥐는 것은
막연하고 무섭고 시행착오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려는
시도는 할 수 있다.
나의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은 어쩌면
몇십년간 운전대를 내가 직접 쥐어보지 못하여 느끼는
매너리즘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