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우정
지금까지 손절한 친구가 정말 많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친구가 줄어든다.
마음을 나눌 친구는 거의 2명 정도?
그 외에도 간간히 연락하는 친구 5명 정도.
그 외에는 거의 연락이 끊겼다.
학창시절 친구나
교회를 다니면서 친하게 지낸 친구,
일하면서 친해진 동료 등등
그 시절에 둘도 없이 친했다가
어느덧 각자의 생활과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레 멀어진 친구들.
어쩌면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거 같다.
그런데 사실 나는 몇년 전 까지만해도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아도 꾸역꾸역 잘 지내려고 노력했었다.
한 번 친구는 웬만하면 끝까지 가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거 같다.
그래서 때론 나에게 선을 넘기도 하고,
서로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거나
간혹 불쾌한 얘기를 당당하게 하는 걸 들어주기도 했다.
만나고 와서 기가 빨리거나
오히려 기분이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친구라는 게 서로 좋기만 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는 모두와 잘지내려고 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깨달았다.
게다가 나랑 맞지 않는 관계에 맞추기 위해서
나를 우겨 넣는 행위도 결국 누구를 위한 일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같은 환경에 의해 필연적으로 친해질 수 있던 것과
나와 잘 맞아서 친하게 지내는 건 엄밀히 따지면
다른 부분인 것 같다.
결국 지금까지 연락하는 친구들은
상황과 환경을 떠나서도 서로 결이 잘 맞아서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특히나 내가 여태까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의 특징은
거의 대부분 비슷했다.
서로 오래 알고 지내는 사이라 할지라도
절대 서로의 선을 넘지 않고, 존중하며 배려한다.
친하니까 무례를 범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친할수록 서로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중대한 일일수록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의견만 더할 뿐이다.
나는 서로를 침범하는 관계보다는
존중과 배려가 기본으로 깔리면서도
평소에는 장난과 유머를 나누면서
때로는 깊숙한 얘기도 피하지 않는
깊숙한 관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또한 내 가치관과 상대의 가치관이 달라도
함부로 가르치려들지 않고,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그런 관계를 좋아한다.
여태 나의 곁에 남은 친구들과 지인들은
이런 성향이 많았고,
현재 각자의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고 해도
가끔씩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내가 손절당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들에게 내가 안부를 물었을 때,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
한다거나 더이상 나에게 연락을 먼저 하지 않을 때는
'아.. 이제 우리의 인연이 다했나보구나' 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그 관계를 놓아준다.
물론 1%도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엄청 속상하다거나 슬픈 적은 없다.
그 또한 그 사람이 선택한 관계이기에
존중해주고 싶다.
친구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삶과 가치관에
영향을 많이 준다.
또한 분명히 나에게 맞는 친구들이 존재하고,
그들로 인하여 나는 더욱 발전하기도 한다.
나에게 맞는 친구를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간관계에 놓여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내가 누구랑 맞고 안맞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인연을 놓아주는 것과 나를 떠나가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당장 한 친구를 잃었다고 해서
영원히 외로울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곤 하지만,
그렇게 비워지면 그 자리가 또 채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과정을 겪다보면
나에 대해서도, 내가 어떤 걸 편안하게 받아들이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모두와 친해질 필요도, 한 번 친구가 영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 그 시절과 그 상황에 맞는 인연은 생겼다가도 없어지고,
그 와중에도 내 곁에 끝까지 남는 인연은
오래도록 함께 해나가기도 한다.
손절을 적절히 한 지금의 인간관계가 나는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