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약과 파란약

깨달음을 얻는건 축복인가 저주인가

by 고도띠

'모르는게 약이다'


이 말이 왜 나왔는지

절실히 공감된다.


때론 깨달음을 얻는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색깔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차라리 모르면 행복했을수도 있다.


나를 알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를 감싼 환경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마냥 파스텔 빛으로 보이던 세상이

어느덧 회색으로 변해갔다.


매트릭스 세상에서도 주인공이 세상의 실체를

모를 때까지는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빨간약을 먹는 순간 각성한다.

'아 내가 알던 세상이 진짜가 아니었구나!'


나를 알아가는 과정도 이와 유사한 것 같다.

사실 나에 대해 탐구하면서 내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긴 통제, 규칙, 가치관들이 뒤틀려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예전에 모르고 지낼 때는

'좋은 게 좋은거지~ 아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때 왜 몰랐을까.. 이제야 다시 보인다.

이제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고통스럽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성한다는 것은 3가지 뜻이 존재한다.

첫번째로 깨어 정신을 차림. 두번째로 깨달아 앎.

세번째로 정신을 차리고 주의 깊게 살피어 경계하는 태도.


결국 요약하자면,

빨간약을 먹는 순간은 나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이고,

이로 인해 주변 환경과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주의 깊게 살피면서 경계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무난했던 삶의 패턴이

어느 순간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하면서

끊임없는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이 반복되면 뇌도 힘들고 체력도 떨어진다.


내가 받던 것이 알고보니 통제의 일부분이었고,

내가 하던 것이 알고보니 타인의 시선에 의한 것이고,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이 타인의 취향에 휩쓸린 것.

진정으로 나로 살고자 한 적이 지금껏 있긴 했을까?


그저 누군가에게 항상 의지하고 기대면서

편의를 기대한 삶이 아니었을까?

물론 사람은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맞지만

근본적으로 삶의 방향성과 선택은 스스로 해야하는 게 맞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가 대신 선택해주는 것에

편승하는 편이었다.

더 웃긴 것은 그게 내 선택이라고 착각하며 산 것이다.

그러니 표면적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인 삶이지만

어딘가 내면적으로 계속 공허해졌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빨간약을 먹는 게 그리 괴롭다면, 그냥 파란약으로

살아가면 되잖아?그렇게 나라는 존재를 깨달아가면서

고통받을 바에는 그냥 좋은대로 사는 게 낫지 않아?'


물론 나도 이 생각을 안한 건 아니다.

그냥 굳이 각성할 필요도 없다.

삶이란 어차피 완벽하게 살기도 어려울 뿐더러

흘러가는 대로 나에게 다가오는 운명에 최선을 다하며

살다가 끝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속은 썩어가는데도 인지하지 않고

그냥 파란약을 먹어가면서 그저 행복, 기쁨, 평안만

외친다해서 나의 마음 속 깊은 공허, 불안은 절대로

해소되지 않는다.


빨간약을 먹는 건 괴로울 수 있다.

하지만 깨닫는 순간 이런 생각부터 든다.

'아, 이걸 몰랐으면 아마 더 먼 미래에는 돌이킬 수 없었겠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빨리 각성해야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겠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난 빨간약을 먹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빨간약을 먹는 건 뭘까?

그건 앞전에 서술했던대로 '나'에 대해 알아가고

깨닫고 분석하면서 내 애착유형과 성향, 취약점 등등을

파악해가는 일이다.


그리고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에 대해

의문을 던지면서 의심하기도 해야 한다.

정말 이 가치관이 내가 만든 것인지,

타인에 의해 형성된건지 말이다.


물론 가치관이라는 것은 살아가다보면

환경과 사람에 영향을 안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내가 원해서 만든 가치관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권유나 통제로 생긴 가치관인지에 따라

삶의 방향이 많이 바뀐다.


예를 들어,

나는 사실 미술을 좋아하지만

부모님은 나에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이

나에게 더 어울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해줬다면

나는 어느덧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고

착각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 조언을 듣고 관심이 생길 수 있지만,

교탁앞에 서 있는 것보다 이젤 앞에 앉아있는 걸

더 원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주변 친구들이 모두 결혼을 하고,

나에게 결혼이 행복하다며 추천해준다고 치자.

그사람들에겐 그 결혼생활과 배우자가 정말 잘 맞아서

그렇게 권유했을 수 있지만, 정작 나에겐 그 삶이

괴로울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모두 결혼했고,

결혼 안 한 나를 뭔가 부족해서 못한것처럼 말하거나 바라본다면, 나도 모르게

결혼이라는 것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요새 유튜브만 봐도

'30대 여자 이러면 결혼 못한다'

'40대 미혼남이 늦게라도 결혼할 수 있는 방법'

'결혼 못하는 사람의 특징'

등등 뭐 이런 내용들이 많긴 하다.


우선 들어가보면 대다수는 결혼정보회사 또는

연애 강의팔이(혹은 연애책)가 많다.

그들은 결혼시장이 활발해야만 살아남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제목도 자극적이게 뽑아내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결혼을 해야만 하고, 못하면 도태된다는

위기감을 조성해야만 할 의무가 있다.


특히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어그로성 글이 많은데

사실 정작 결혼을 하든 안하든 잘 먹고 잘 지내는 사람들은

굳이 그 곳에 글을 작성하지 않는다.

(물론 평범한 소통 글은 제외다)


행복하다거나 평범하고 무난한 삶에 대해 올리는 글은

주목을 받기 어렵다보니 그런 글이 자주 올라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혹시 이미 저질러진 상태인가?


이미 그 직업을 가졌다거나

이미 결혼을 했다거나

이미 출산을 했다면


빨간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을까?

아니다. 이 빨간약은 언제라도 먹어야 되며,

그것이 하루라도 빠르면 좋지만

삶이 남아있는 한, 언젠간 먹어야 한다.


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알아가고, 환경을 개선하고,

그로 인해 약간의 진통을 이겨내며

더 나은 삶과 사랑, 그리고 성숙한 가치관을 얻어갈 수 있다.


물론 각성 직후는 차라리 파란약을 먹고 살고 싶을 정도로

괴로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어야만 했다고

생각하는 날이 온다.

아니 오히려 안 먹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성경에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나서야

수치심, 선, 악, 희노애락 이라는 감정을 깨닫게 된다.

에덴동산에서의 무감각보다는

지구에서의 고통과 슬픔을 깨닫고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게 더 나은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빨간약을 먹은 직후에는

스트레스성 위염과 감정기복 등등의

고통이 수반됐지만 다시 돌아간다해도

나는 빨간약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파란약을 먹고 산 그 때와는 다르게

나 자신과 더 친해져있으며,

환경 또한 개선이 되어가고 있다.


'모르는게 약이 아니라

아는 것이 힘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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