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은
나를 침체시킨다.
그것도 무섭도록 은밀하게...
당장 도드라지게 보이는 건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번아웃, 권태로움, 우울감 등등
침체기를 맞이하게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내가 견디지 못하는 것,
내가 견딜 수 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할 수록
나의 삶은 싫어하는 걸 견디는 환경에도
그게 당연한 삶인 것 마냥
수긍하고 산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든 정신이든 어느쪽에서든
폭발하고 만다.
그럴 때 오는게
공황, 불안, 우울, 번아웃 등등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증상이
동반되곤 하는데, 이걸 단순히 약으로만
억누른다고 치료가 되는 게 아니다.
분명 나는 꾸역꾸역 참고
열심히 살고 있는 거 같은데
내 삶은 더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도리어 더 침체되어 가는 이유가 여기있다.
삶이란 견디고 참기만 한다고
누군가가 박수쳐주지 않는다.
물론, 결과가 좋으면 박수쳐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어딘가에서 해소되지
않은 강한 스트레스를 묵인할수록
보상심리와 불합리함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든, 가사노동을 하든
연애를 하든 뭔가 항상 공허함을 느낀다.
남들이 다 하는 결혼이고,
때 되면 해야 할 것 같고,
안하면 좀 내가 뒤쳐진 사람처럼 보여서
적당히 타이밍에 맞춰서 결혼을 했다고 쳐보자.
본인이 결혼이란 생활에 대해
어떤 것인지 알아봤을까?
그냥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한 이불 덮고 일어나서 서로 차 한잔 하면서
노래 듣는 삶이 결혼일까?
결혼은 2명의 팀전이다.
때론 격정적이게 싸울 때도 있고,
어느 날은 지루함의 연속이 된다.
그 외의 또 다른 가족들이 여럿 생기는데
미혼 시절에 신경쓰지 못했던
어버이날, 명절, 신년 등에
어르신들을 위한 선물이나 용돈도
생각해내야 한다.
거기에 아이까지 생기면 또 다른 삶이
눈 앞에 펼쳐진다.
물론, 편하게만 살 수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모두가 한다고 해서 그 것이
나에게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과업은 아니란 것이다.
회사를 매일 성실히 다니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충 시간을 떼우고
내가 더 발전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뭔가 열심히 해보려고 해도
그냥 귀찮을 뿐이다.
내가 일하는 분야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얻고자 하는 열정도
어느날부턴가 식어버렸다.
회사의 문제일까?
나의 문제일까?
일의 문제일까?
'어찌됐든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니까
이렇게 살다보면 언젠간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타성에 젖어간다.
연애를 2년정도 했다고 치자.
분명 싸우지도 않고,
사이가 나쁘지 않다.
그런데 같이 있어도
뭔가 그냥 집에 가고 싶고,
데이트 코스도 평소에 하던걸로
대충 떼우는 식이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결혼 적령기는 오는데
막상 헤어지자니 그동안의 정이 있다.
하지만 막상 그 사람과 평생하자니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이
충족된 거 같은데도
그 사람과 나 사이에는
뭔가 2%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위의 예시들은 현대인이라면
한 번 이상은 느낀 감정들일 것이다.
단순히 권태로움, 번아웃 수준이 아닌
내가 뭘 원하고,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모른채
그저 흘러가는 삶과 상황에 안주하여
살아가는 삶일 수 있다.
'원래 그런게 삶이야'라고 누가 정의했는가?
그건 아마도 나 스스로 정의내렸을 것이다.
당장 뭔가를 바꾸자니 두렵고,
이대로 안주하자니 삶이 무료하다.
잘 모르는 천국보다
익숙한 지옥이 낫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지금 이 상태가
지옥같아도 그걸 견디는 게
새로운 천국으로의 개척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이런 침체기를 어떻게하면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방법은 간단하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내가 뭘 할 때 즐거운지,
뭘 할 때 괴로운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행복한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즐거운지,
얼마나 견딜 줄 아는지 등등
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들을
정리해서 나라는 사람의 지도를
그려보는 게 좋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리고 타인과 대화할 때,
어떤 사람 앞에서는 감정과 단어를 정제하여 말하고,
깊은 관계의 사람 앞에서는 속깊은 이야기도 해본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해주는
다양한 충고와 의견들을 되새겨본다.
그 중에 쓸모없는 충고들도 있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표면적인 관계에서
해준 이야기들이나
본인이 나에 대해 너무 잘안다고
재단하고 해준 충고들.
이런걸 제외하고
진짜 객관적으로 해주는 말들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사람은 타인으로 인하여 발전하기도 하고,
타인으로 인하여 침체하기도 한다.
나를 침체시키는 관계는
사실 정리하는 게 최선이긴 하다.
나를 발전시키는 관계는
때로는 쓴 약 같아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한 발전은
질투나 시기로 인해 우위에 서고 싶은
부정적 감정에서 기반한 원동력은 제외한다.
그건 결국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서적, 능력적으로
나를 발전시키는 관계는 분명 존재하며,
꼭 인간관계가 아니어도
어떤 활동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독서나 음악 감상,
영화감상, 운동 등이 있다.
나를 몰라서 생기는
은밀한 침체기는 당장 눈에 띄지 않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나를 잡아먹곤 한다.
그건 사실 나를 모르는 무지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