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ge of worry'

by 고동현

푹 눌러쓴 모자에 삐져나온 덥수룩한 머리, 기타와 연결된 낡은 말가죽 밴드를 어깨에 메고 투박한 마이크와 키스하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노래하는 나를 나는 사랑한다. 그 뒤로 개성 넘쳐 보이는 옷을 입고 각자의 악기에 몰두하는 단원들. 우리는 지금 수만 명이 들어찬 야외 공연장에서 사람 키의 두 배 만한 스피커를 백 개쯤 둘러놓고, 단 한 사람을 위해 노래하듯 초연하게 공연한다.


시작은 동네 친구들과 길거리 공연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실재로는 나의 친구가 아니다. 난 그저 길거리에 있던 한 무리의 건장한 남성들을 나의 친구로 대신했다. 나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걸어가는 모든 행인의 발을 멈춘다. 그곳만 시간이 멈춘 듯하다. 나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보는 위치에 따라 우는 듯 보이기도 하며 열창한다. 그것을 누군가 인터넷에 올렸다.


내가 노래하는 삼분 남짓의 영상이 동영상 플랫폼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큰 이슈가 되었다. 물론 그것은 외국에서부터 유명해진다. 그렇게 나는 미국의 유명 라디오에도 나가고, 유명 가수들과 함께 노래도 만든다. 그것 때문에 한국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나는 한국 최대의 스타가 되고,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길거리를 걷지 못한다. 그러는 와중에 예술에도 식견이 넓은 나는, 대중들은 잘 모르는 그런 진짜배기 화가들과도 친목을 다지며 보다 높은 수준의 무언가를 꿈꾼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뮤직비디오도…


여기까지가 내가 삼분 남짓의 노래를 들으며 하는 생각이다. 그 상상 속에서 부르는 노래도 이 노래와 비슷한 것이다. 다만 훨씬 혁신적인 무언가겠지. 난 그것만은 떠올릴 수 없다.

이것이 나의 고리타분한 취미다. 상상. 그 상상은 대게 위처럼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 혹은 엄청난 불행 속에서 주인공으로써 나름의 멋을 내는 것이다.

버스가 멈춘다. 내가 내릴 차례이다. 버스카드를 찍으면 나는 삐 소리가 나의 상상을 끊는다. 이 경우 대게 난 한순간에 내가 상상 하던 것을 다시 떠올리지 못한다. 난 도대체 어떤 상상을 하고 있었을까. 그 야릇한 재미를 다시 느끼고 싶은 나는 곰곰이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나는 진땀까지 흘리며 그 상상을 찾아 헤맨다.

그렇게 나의 상상들을 반추하여 보아도, 결국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수없이 많이 맛본, 내가 무지막지하게 싸움을 잘하게 되는 상상뿐이다. 어릴 땐 이 상상 속에서 많은 악당을 물리쳤고, 많은 나의 연인들을 구했다. 나의 연애 인생에 많은 여성들이 오고 갔지만 난 그녀들을 하나같이 내 상상 속에서 구했다. 때론 연애에 실패한, 단지 마음에 두던 여성들을 구한 적도 많다.

그러나 나의 나이가 되어서도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은 조금 유치하단 생각이 든다. 다른 상상은 무엇이 다른가 하겠지만, 나에겐 이 음침한 취미만이 삶의 유일한 재미이기에 나는 부끄러움을 외면한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나는 가만히 일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는 내 세계 안에서 무한히 질주하기 때문에, 출근하기 전에 얼른 내가 만들어 놓은 세계 안에 다시 들어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일하는 시간을 조금은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 내가 일해야 하는 건물이 가까워지는 것과 출근 후 동료들과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날 점차 현실로 불러온다. 깊숙이 웅크리고 있던 것이 활짝 핀 기분이다. 당연히 이는 매우 언짢으며, 또 몹시 춥다.





내가 일하는 곳은 고기 공장이다. 거대한 철판을 더덕더덕 붙여 만든 건물 안에 다섯 개의 레일이 있고 한 레일에 4명씩 스무 명의 사람이 같은 간격으로 서서 각자에게 입력된 동작을 반복한다. 그리고 저 앞에 우리의 감독관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좌로 우로 쏘다닌다. 다만 나는 맨 뒷 줄이라 그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그 역시 이곳까지 올 노력이 없다.

난 위생적으로 보이게 해주는 흰 옷들을 입고 내 앞에 놓이는 소의 다리에서 살만 분리해 내면 된다. 투박한 고음을 내는 전기톱을 내 앞에 세로로 세워 두고 고기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잘라낸다. 이 톱을 사용하다 손가락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곳에 처음 온 날 들었다.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손가락을 잃은 그 이야기가 우리의 안전장치였다. 해서 그 손가락의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우리는 점점 더 안전 해진다.

이는 나 역시 일하는 도중엔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뇌를 조종할 수 없다. 뇌, 나를 상상하게 하는 그 덩어리가 나의 마음 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의 뇌는 내가 일하는 도중에도 짧은 호흡의 상상을 계속해서 시도한다. 앞 허벅지 살을 자르며, 시장선거에 나간 내가 티브이 토론에서 엄청난 말솜씨로 대중들을 감격시켰다. 옆 허벅지 살을 때며, 복싱 선수가 된 내가 웅장한 음악과 함께 링에 올랐다. 난 계속해서 고기와 뼈를 분리한다. 고기는 인간이 먹고 뼈는 갈아서 다시 동물을 먹인다. 내가 일하는 공장의 고기는 그리 좋은 품질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기에선 코를 찌르는 퀴퀴한 냄새가 난다. 물론 이것이 마트에 오를 땐 각종 약품으로 냄새를 없앤다. 난 그런 복잡한 일을 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흐르지 않는 것 같던 시간이 흘렀나 보다. 공장의 모든 기계가 철컥 소리를 끝으로 멈춘다. 우리에게 30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싸 온 도시락을 먹고 담배를 피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일체의 대화 없이, 각자 뿔뿔이 흩어져서 진행된다. 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어느샌가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서 나 역시 아무 방해 없이 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나의 자리는 고기를 포장하는데 쓰이는 비닐을 보관하는 창고의 한 구석이다. 이 값진 시간을 난 여전히 상상 속에서 지낸다. 배구, 난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배구에 미쳐있었다. 선수가 되기에 한참 모자란 키에도 하루 종일 배구만 했고 배구만 생각했다. 지역별 고등부 대회 8강 경기, 마지막 세트 듀스 상황, 우리 팀의 에이스인 나는 지금까지 혼자서 거의 모든 득점을 했다. 이제 단 두 점만 더 따면 우리는 승리의 세리머니를 할 수 있다. 관중석에서 연규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내가 중학교 때부터 짝사랑하던 여자애이다. 그녀는 우리 팀을 응원한다. 아니다 도도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난 그녀가 날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또 다른 많은 여자들, 아니다 내 플레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설명해 줄 누군가가 있다. 그게 더 낫겠다. 나의 득점으로 그녀는 나를 흐뭇하게 쳐다본다. 나는 그 미소에 부흥하듯 집중하는 듯한 제스처를 몇 번 취하고 필사적으로 뛰어올라 팔을 휘두른다. 펑하는 소리가 체육관을 울린다. 내 스파이크로 처박힌 공이 천장까지 올라갔다 힘없이 떨어진다. 우리 팀은 나에게로 달려오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뻐한다.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의 웃음을 관장하는 광대와 함께 추락한다. 그제야 내가 어느새 웃음 짓고 있었음을 알았다. 누구든 창고 구석에 앉아 실실 웃고 있는 나를 봤다면 몹시 불쾌했을 것이다.





이 역시 상상이길 바랐다. 그 순간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내 바로 앞 라인에서 일을 하던 최 씨의 팔이 절단기에 끼었다. 얼어 있는 고기를, 뼈를, 회 뜨듯 자르는 그 우락부락한 쇳덩이 앞에 그의 팔은 너무 연약했다. 그의 팔은 레일을 타고 옆 사람 김 씨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비명은 김 씨가 질렀다. 그 뒤 잘린 팔을 잠시 마주 보던 그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나의 표현으로는 상상하듯이 서있다가 끝까지 아무 비명도 지르지 못했고 픽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제야 소장이 기계를 멈췄다. 그러고 나서야 레일과 절단기에 묻은 그의 새빨간 피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이곳에선 볼 수 없는 살아있는 피었기 때문에 그 근방을 뻘겋게 물들여 갔고 뻘겋게 뚝뚝 흘렀다. 떨어지는 피가 쿵 하고 튀었다.

최 씨는 김 씨의 부축으로 급히 병원으로 갔다. 소장은 소란을 정리하고 인부들을 하나씩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우리는 소장 방 앞에 한 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아까의 일로 수군거렸고, 그중 나이가 제일 많은 고씨는 누가 어쨌네 하며 난 알지도 못하는 윗사람들 이름을 입에 담았다.

난 그 줄에 서서 기다리는 와중에, 기자가 됐다. 국민들의 성금으로 운영되는 그나마 정의로운 언론, 난 그곳의 열정 넘치는 신입 기자다. 나는 내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항상 약자의 편에 섰고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정확한 사실을 취재해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속속들이 알리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산업재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난 그곳에서 안전장치의 부재, 노동자들의 혹사, 관리자의 미흡 등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사로 써내려 했다. 그 순간, 소장이 나를 붙잡고 돈가방을 쥐어 준다. 하지만 난 그것을 단박에 거절하며, 분노한다. 열렬히 분노한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며, 노동 인권을 운운한다. 또 이 돈이면 진작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었으며, 내 신념은 고작 이 정도 가치가 아니라는 그럴싸한 말들을 하며, 예정대로 기사를 올린다.

철컥하는 소리와 소장의 여비서가 내 이름을 부른다. 그 소리를 듣고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소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처음 보는 친절하고 따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금 전 일을 코 앞에서 본, 그리고 그런 일을 당할지 모르는 우리에겐 당장은 하기 힘든 표정이었다. 그는 내 두 손을 부여잡으며, 힘든 일은 없냐 느니, 회사에 요청할 건 없냐 느니, 또 아까 일을 본 것이 정신에 어떠한 충격을 준건 아닌지 계속 물었다. 그리고 병원으로부터 최 씨의 수술이 잘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런 사고를 미리 예방하지 못해서 자신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위로금 차원이라며 서랍에서 봉투를 하나 건넸다. 그 안에는 딱 내 한 달 봉급만큼 이 들어 있었다.

그러고는 몇몇 처음 들어보는 집단의 이름을 말했다. 그들에게 내가 본 것 대로 최 씨는 매일 술을 달고 살았으며 오늘도 분명 술을 마시고 출근해 실수를 했을 것이라고 말하라 했다. 그것이 날 이곳에서 계속 일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나는 타당한 그의 말 대로 했고, 운 좋게도 다음날 바로 다시 일을 할 수 있었다.






산뜻한 바람은 대게 앞에서 불어온다. 난 바람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무척이나 맑은 날씨다. 왜 좋은 날씨를 맑은 날씨라 하는지 알 것 같다. 나와 저 하늘 사이에 어떠한 방해물도 없다. 투명한 대기가 하늘의 진짜 색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곳을 새와 비행기가 자유롭게 헤엄친다.

한 번은 꿈에서 하늘을 날았다. 산봉우리와 봉우리를 뛰어넘어 다니며 나의 동내를 조감했다. 그렇게 난 숲을, 강을, 끝없는 바다를 낮게, 또 높게 떠다녔다. 아주 어릴 때였는데, 난 그 기분을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다. 그 후로 매일 밤, 하늘을 나는 꿈을 기대하며 잠들었지만, 기대를 시작한 밤부터 다시는 날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아주 잠깐 날았지만 이내 쿵 하며 떨어졌었다. 해서 나는 그 자유를 쫓아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난 공항을 걷는다. 내 옆에는 청초하게 화장을 하고 머리를 꽉 묶어 올린, 군살 하나 없는 몸매의 승무원들이 어디를 가나 함께 한다. 그녀들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조종사 정복(正服) 때문인지, 사람들의 부러움의 시선이 느껴진다. 몇몇 남자아이들은 나를 보며 꿈을 가지고, 그런 아이의 부모들이 와서 자신의 자녀와 사진을 한 장 찍어 주길 부탁한다. 나는 가슴 주머니에 있던 선글라스를 쓰고 아이를 한 손에 들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래, 난 분명히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 왜 그것이 되지 못했을까. 그것이 내 꿈이었다면 난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를 했어야 했을까. 무엇을 해야 했을까. 코 끝에 찬 물방울을 맞았다. 그것은 이제 미지근해져 기분 나쁘게 내 얼굴을 흐른다. 비가 오려나 보다. 역시나 우산은 없다. 비는 쏟아 붙기 전에 항상 일정한 뜸을 가진다. 하지만 그것은 우산을 미리 준비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다.

해서 난 다시 나의 꿈이 뭐였는지나 생각해보려 한다. 비행기 조종사, 그게 내 꿈이었을까.

아니다. 이것은 내 꿈이 아니다. 나의 꿈, 나는 사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정말 그랬나? 그것 역시 도피가 아니었던가. 아니 한때는, 그러니까, 도피처였던 시가 정말로 내 순수한 꿈이 되었던 적이 있다. 아니면 과학자가 되기에는 성적이 나빠서, 괜히 처음부터 시 따위나 쓰며 살고 싶다고 했을까. 나는 정말 시를,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었나. 그것이 단지 상상이었는지, 현실적인 나의 목표였는지, 아니면 그 두 개가 같은 것이던지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시인, 참 폼 나는 인생이다. 돈이나 권력과는 한걸음 떨어져서, 세상과도 한걸음 떨어져서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 그런 여유로운 시각을 가지고 싶었다.


모두가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나 혼자만 온갖 공포에 휩싸여 까치발 서 있다. 왜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일까. 나는 그것들을 시로 써낸다. 구구절절 틀린 말들을 엮어 말이 되게 써낸 시는 그해 신춘문예에 당당히 최우수작으로 입상한다. 시와 달리 고리타분한 내용의 평론에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시인의 등장을 예찬하는 글자들이 가득 차 있다. 나는 그 일로 많은 방송에도 나가고 꾸준히 시집도 출판하여 말년에는 명문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어 사랑과 평화에 대한 시들을 써낸다.

결말을 조금 바꾸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시인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등단과 동시에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나의 등단작은 입소문을 타고 금세 유명해진다. 더욱이 가장 의욕이 불탔어야 할 시기에 사라졌다는 시인에 대한 소문은 시에 관심이 없던 대중들도 나의 시에 주목하게 했다. 그런 것들과 별개로, 나는 산속의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며 세상을 한 걸음 뒤에서 관조(觀照) 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나의 예술에 대한 기준은 너무 높아서, 난 한 줄의 글도 만족하며 쓰지 못한다. 그런 이상적인 고민 속에서 담배를 천 개비쯤 태웠을 무렵,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눈을 가지고, 어려운 이름의 프랑스 시인들처럼 난 나 하나만의 시학(詩學)을 찾는다.

그러고는 나의 다른 우상들처럼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이 튀듯 갈등한다. 그러다 결국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과 세상의 악취를 견디지 못해 마지막 한 편의 시를 남기고 스스로 삶을 내려놓는다.


그런 처절한 한 폭의 삶이 나의 꿈이었다. 그래서 내가 없는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싶었다. 오래오래.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가 올 일이 거의 없는 내게 나의 벨소리는 긴장을 준다. 또 이 불안은 전화를 받고 하는 나의 첫인사에 떨림을 준다. 해서 그러한 목소리에 대한 대답은 대게 안 좋은 소식이다. 벨 소리가 두 번쯤 울리고 전화기를 주머니에서 꺼내 전화를 받아 “안녕하세요”라고 하기까지, 나는, 실직, 어머니의 위독, 그리고 나의 유일한 친구 J의 사고 등을 떠올렸다. 다행히 이번 전화는, 휴일인 내일 추가 업무를 나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수락했다.

나에게 휴일은 아무 의미 없기 때문이다. 지루한 시간을 가지는 것마저 아는 게 많은 사람이 유리하다. 생각할 거리가 없는 사람에게 남는 시간이란 것은 지옥 그 자체이다.






이어폰을 꽂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몽환적인 그녀의 노래들은 언제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 가에 빠져들게 한다.

약속은 오후 세시였지만, 나와 그녀는 두시 반에 먼저와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나의 아내가 될 그녀가 나의 어머니와 처음 만나는 날이다. 그녀는 나의 조언대로 청순하고 수수한 치마와 화장을 했다. 나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녀의 이런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긴장한 그녀에게, 나의 어머니는 그리 깐깐한 분이 아니라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적으로 좋아해 주실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어머니가 도착하자 내 예상과 다르게 그녀는 나의 어머니와 금세 친해져, 나에 대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운다. 집에 오자 어머니는 그녀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잔뜩 부풀어 계신다. 그 후로는 나 없이도 둘이서 쇼핑도 하고, 밥도 먹으러 다니며 내가 엄두도 못 내었던 것들을 척척 해간다. 나의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그녀의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또 그녀는 어머니에 대한 나의 집착적인 마음을 내가 자라온 이야기에 비추어 이해해 준다.

그녀의 노래가 끝나갈 때,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손수건을 건네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처다 보는 외국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갈 길을 잘 간다. 내 앞에 서있는 그의 표정엔 어딘가 모를 불쾌함이 섞여 있었다. 나의 입고리는 서서히 내려간다. 나는 웃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눈고리가 시리다. 난 그가 준 손수건을 잡았지만 그것으로 눈을 닦지는 않았다. 눈물이 나는지 몰랐다. 그저 멈출 때가 된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달렸다.

무작정 달렸다. 그러나 내가 부끄러운 것은 이 도시의 가장 낮은 이방인이 나에게 연민을 느껴서도, 내가 이런 회색 빛 짙은 삶을 아무 의미 없이 연명해서도 아니다. 내가 그 순간 하던 상상이 역겨울 정도로 날 부끄럽게 한다. 가장 평범한 상상, 그것이 날 가장 깊이 추락시킨다. 이런 일이 많던 나는 무작정 달리는 길이 정해져 있다. 바다. 나의 이러한 도망의 도착지는 항상 그곳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어부였다. 그리 대단한 어부는 아니었기에 그의 배는 어린 나의 걸음으로 선수부터 선미까지 열 걸음이면 갈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배에 그물을 가득 채우고선 하룻밤, 혹은 이틀 밤을 바다에서 지내셨다. 내가 수영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아버지는 가끔 날이 좋으면 나를 태우고 바다에 가셨다.

처음에는 정해진 길을 가는 차 따위 랑은 다르게 어느 방향이든 갈 수 있는 그것이 너무나 좋았다. 배 위에서 만큼은 내 눈에 보이는 모든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넓은 바다가 다 내 것 같았다. 또, 내 키보다 큰 파도에 당당히 맞서는 작은 배의 대담한 뱃머리와 등 위로 내리는 따가운 햇살은 우리의 작은 배에 아늑함 마저 들게 했다. 그렇게 배에 누워 아버지가 그물을 던지고 끌어올리기를 반복하는 걸 보며, 나도 크면 어련히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나도 모르는 사이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인가 아버지가 바다에 나가지 않는다. 그가 죽고 나서 알게 된 것인데, 당시 마을 유지와 시장이 손을 잡고 그 일대를 김 양식장으로 개발했고, 이 때문에 주민들은 배를 띄울 때마다 돈을 내야 했다는 것이다. 당신 몸 만한 배를 가지고 하루하루 먹고살 만큼 생선을 잡아오던 아버지의 배는 바다에 나갈 때마다 오히려 빚을 지게 되었다. 해서 아버지는 한동안 주에 한번 바다로 나가 가능한 많은 생선을 잡아 오셨지만, 이마저 얼마 못 가 그만두셨다.

그러고는 점점 술을 찾으셨다. 처음에는 방 안에서 혼자 몇 잔씩 하시며 한숨을 푹 쉬셨고, 나는 그를 진정으로 응원했다. 나의 영웅이 시련을 딛고 다시 날아오르리라 믿었다. 나는 열한 살이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외출이 잦아지더니, 매일 취한 몸으로 저 오십 미터 밖에서 소리를 깩깩 지르며 마을을 빙그르르 돌아 문에 쾅하고 부딪히며 들어왔다. 그리고 나와 어머니를 팼다. 정말 죽이려고 팼다. 술 취한 그는 집안의 모든 걸 때려 부수었고 그래도 분이 안 풀려 우리 모자를 깨웠다. 다만 우리는 거실에서 들리는 쿵, 쾅 등의 소리에 한참 전부터 깨서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해서 그때부터 나는 밤마다 술에 취한 그에게 맞거나, 운 좋게 지나간 다음 날은 실신한 어머니와 깨진 티브이 같은 것들과 아침을 맞았다. 때로는 그런 아침이 더 시리었다.

신기한 것은, 다음날 늦은 오후 잠에서 깬 그는 지난밤의 일을 하얗게 잊고, 배 위에서의 아버지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랬을 리 없다며 엄마와 나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려 했다. 심지어 자신이 술을 끊도록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믿는 듯했다.

그래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단 한 방울도 슬프지도 않았다. 술에 취한 채, 길 한가운데서 발을 헛디딘 그는 자기 무릎에 오는 논에 빠져 죽었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엄마도 언젠가 그리 될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피가 말라간다는 표현을 이해하기 시작한 무렵부터, 나는 그를 정말로 죽이고 싶었다. 그가 잠들면 몰래, 혹은 뒤에서 몰래, 그를 죽이는 수만 가지 방법을 상상했고, 그러다 잠들면 어쩔 땐 내가 이미 그를 죽였다고 착각했다. 다만 그런 상상에도 나는 이유 모를 죄책감을 가졌다.

그의 장래가 끝나고 그의 배는 옆집 유아저씨 내 창고에 넣어뒀다. 그리고 왜 인지 나는 그 배를 향해 지금 달리고 있는 것이다.






유아저씨 네 집에는 불이 다 꺼져 있었다. 난 조용히 담을 넘어 그 집 뒤로 난 창고로 향했다. 한참을 달린 후라 숨을 죽이기 괴로웠다. 해서 난 중간중간 입을 틀어막고 한 번씩 숨을 몰아 쉬길 반복했다. 심장이 내는 굉음이 그 밖의 모든 소리를 덮는다. 이렇게 요란한 침입이 또 있을까. 나는 더 이상 조용히 이 짓을 하기를 그만뒀다. 도둑보다는 강도의 심정으로 창고를 열고 배를 꺼냈다.

늦은 밤이지만 이 작은 배를 띄우는 것은 다 커버린 나의 몸으로 너무 쉬웠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내달렸다. 내가 달려온 만큼, 내가 숨찬 만큼 배는 계속 나갔다. 힘쓰는 건 배였지만, 나 역시 숨이 벅찼다. 벗어나고 싶다. 나를 막아온 것들, 나를 나에게 집중하게 한 것들. 내 눈을 멀게 한 것들. 지금 당장은 내 앞길을 막는 저 양식용 김 발대. 나는 그것을 향해 배를 몰았다. 이 작은 배가 견딜 수 있을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긴장한 나의 손은 땀과 바닷물로 얼음을 쥔 듯 미끄러웠다. 난 죽을힘을 다해 핸들을 꽉 잡았다. 무색하게도 김 발대들은 이 작은 배가 스치기만 해도 휙휙 쓰러졌다. 그럴 때마다 튄 바닷물이 내 얼굴을 덮었다.


이제 와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를 따지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다. 나를 마침내 이곳에 서게 한 나의 망상이 온전히 나의 것인지. 어딘가에서 흘러 흘러 온 것인지. 만일 나에게 책임질 것이 없고, 또 이 세상이 온통 못난이들 뿐이어서 내가 아무런 불안을 느끼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이 세상에 나 혼자였다면 어땠을까.


늦은 밤, 회사를 마치고 집에 왔다. 문을 열자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사회에서 온종일 굳어 있던 나를 녹인다. 잦은 야근이든 상사의 비아냥이든 뭐든 나를 버티게 하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다는 말을 이해하게 해 준 나의 아들이 내게 안긴다. 나를 안아 주기 위해 이 시간까지 기다려 준 것이 마냥 귀엽기만 하지만, 키 크려면 얼른 자야 한다는 말을 하며 아이를 한 팔로 안고 침대에 눕힌다.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리며, 너의 꿈이 무엇이든, 무엇을 하고 싶던, 또 무엇을 배우고 싶던, 내가 그것을 온 힘으로 돕겠다는 다짐을 입으로도, 마음으로도 한다. 아이는 고요히 잠이 들고, 난 그의 이마에 키스를 남기고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온다.

나의 아이, 무엇을 하고 싶을까. 무엇을 하게 될까. 난 전부터 어린아이들의 조그마한 뒤통수에서 꿈과 희망 같은 것들을 느꼈다.





배가 털털 소리를 내며 멈췄다. 기름이 떨어졌다. 배에 달린 랜턴의 배터리는 처음부터 없었다. 멈춘 배에 물이 차오른다. 선미의 한 구석이 부서져 있다. 이 작고 오래된 배가 가라앉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난 그것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다.


내 인생에 계획 같은 건 없었다. 즉, 남들이 하기 때문에 한 것과 내가 해야만 해서 한 것, 이 두 가지를 합친 것이 나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나침반 없이 앞선 배를 따라간 배가 목적지를 고민할 수 없듯이, 내 인생의 도착지는 나를 앞서가던 배와 같을 것이고 그것보다 조금 늦을 것이다. 다만 나의 배에는 미지의 목적지에 대한 불안이 타고 있으며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연료나 식량이 있는지 조차 모른다.

그 순간 나의 인생은 온전히 운과 운명에 바쳐져 앞의 배가 만들어낸 파도에 나를 곧이곧대로 내던지는 수밖에 없다. 해서 나는 하나의 파도를 넘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하나의 목적지를 가정한다. 그곳이 내가 안주할 수 있는 곳인가 하는 고민이 무심하게, 거처 넘어온 파도는 그곳이 내가 실제로 갈 수 있었던 곳이든 아니든 항상 나를 더 깊은 바다로 내밀었다. 그렇게 울렁인 배는 다시는 뒤로, 정말 다시는 갈 수 없었다.

밤바다를 본 적이 있는가, 이제는 그것을 상상할 수 있다. 육지에서 보이는 암흑과, 암흑 속에서 마주한 암흑은 비교할 수 없다. 그 한가운데 빠진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배가 지금까지 온 곳을 향한다면 분명히 육지는 있을 것이다. 죽어라 헤엄치면 육지에 닿을 수도 있다. 다만 나에게는 이제야 동서남북의. 아니 동서남북 구십 도씩의 각을 반 씩 나눠서 여덟 개의, 또 그것을 반 씩 나눠서 열여섯 개의 (…) 나는 그것을 반복해 내 정수리를 축으로 하는 원의 부피를 다 채울 만큼의 무수한 길을 알고 있다.





나는 처음 마주하는 무수한 길 앞에 미칠 듯한 전율을 느낀다. 나는 어떤 길로 가야 할까. 내가 만을 이미 벗어났을까. 이곳은 어디일까. 잔잔한 밤바다 위에서 나는 내 시야가 뚜렷해짐을 느낀다. 칡흑 같은 좌우가 하늘을 보게 한다. 내가 별을 보자 그제야 별들이 바다에 비춘다. 아, 나는 우주 한가운데에 떠있다. 사방이 손가락 한마디의 틈도 없이 작고 또렷한 별들로 가득하다. 별들은 가득 차고도 남아서 점점 내게 향하고 또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떠오른다.

한 번만 더 살고 싶다. 아니 살기보다는 하나만 더 상상해보고 싶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무엇이 되고 싶었을지 궁금해는 했을까. 아니, 나는 나의 그것을 궁금해나 했나. 무엇이 되고 싶었나. 나는 어떤 길로 가야 했을까. 그 길로 갔으면 살았을까. 이곳에 오지 않았을까. 또 지금의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관성, 물리학 수업 강의실에서나 쓰일 법한 단어이지만, 모두의 인생도 저마다의 관성을 가진다. 그리고 그 관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더 강해진다. 가로막히고 망설이던 나의 인생은 그렇게 가속이 붙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어느 시점에서도 나는 분명히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거대해진 관성은 이제 두려움이 되어 이곳에서 나에게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게 한다. 해서 나는 이제야 후회와 망설임으로 이루어진 나의 관성을 끊어내고 싶은 강한 열망을 느낀다.

다만 나의 마지막 후회는 그 열망을 역시 상상하는 데에 있다. 나는 이제야 정말로 그 관성을 끊어내는지 모른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되고 싶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숨쉬기 위해 발버둥 치는 와중에, 목숨을 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되어서야, 나의 상상들의 무게를 느낀다. 그것은 꽤나 무거웠고 꽤나 불쌍했다. 그 무게가 공중에 떠있던 날 잡아당기는 것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숨 쉴 힘도 남기지 않고 헤엄친다. 헤엄치고 또 헤엄친다. 해서 나는 희미해져 가는 나의 정신만을 느낄 수 있다. 몽롱해진 정신, 차오르는 숨, 그리고 내 모든 구멍으로 흘러들어와 나를 가득 채운 바닷물은 내가 어떠한 방향도 헤아릴 수 없게 한다. 이제는 내가 정말 헤엄을 치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쿵, 하고 나의 발이 마침내 무언가에 닿았다. 그리고 이제서야 나는 고백한다. 나의 망상, 그것은 진정 내가 목숨을 걸고 헤엄칠 방향을 선택하는 것과 별 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쿵,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