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10.
(맨발로) 걸으며 남겨진 것들
요즘 맨발 걷기가 유행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72세의 미옥 할머니 또래들 사이에서만 맨발 걷기가 유행이다. 미옥과 미옥의 친구들이 즐겨 보는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사람들은 혼자 걷는 건 창피하니 삼삼오오 모여 함께 집 앞 공원에 있는 잔디밭에서 걷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렇게 걷는 모임이 한둘이 아니었다. 곧 잔디가 속수무책으로 훼손되고, 보다 못한 구청에서 따로 세금을 들여 맨발 황톳길을 만들었다. 얌전히 황톳길에서만 맨발로 걸으라는 지자체의 깊은 뜻이 담겨 있어다.
하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체력은 약해져도 고집은 더 강해진다. 황톳길만 걷는 건 재미가 없다고 말하며, 사람들은 청개구리마냥 동네 여기저기를 맨발로 걸어 다녔다. 걷기만 하면 다행이였다. 사람들 발에 이물질이 박히고, 왜 길을 관리 안 하냐는 민원이 증가했다. 다친 미옥을 보고 자식들은 대체 왜 멀쩡한 길을 맨발로 걷다가 다치냐며 성을 냈다. 미옥의 친구들도 각자의 아들딸들에게 혼이 났다. 하지만 침울해지는 건 그때 뿐이었다. 자식들의 잔소리를 원동력으로 삼아 미옥, 그리고 전국에서 미옥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은 전국맨발걷기연합을 결성했다. 창립식에는 경북 구미 소속 의원이 와서 축하말을 건네였다. 다음에 본인이 구미 시장으로 당선되면 구미에 있는 갯벌 곳곳에 맨발 걷기 길을 조성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누구도 미옥과 동료들을 말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이 하나 둘 쓰러지고 죽기 전까진. 겨울에도 맨발로 걷다가 동상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미옥의 친구 석용을 필두로, 병원이나 장례식장에 가게 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미옥은 슬슬 겁이 났다. 정부에서도 맨발로 걷는 노인들의 사망률 증가가 신경 쓰였는지,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뒷돈을 넣어 맨발 걷기는 건강에 안 좋다는 소식을 전하도록 했다. TV에 자주 나왔던 40대 중반의 남의사가 나와, 사실 맨발 걷기보다 더 몸에 좋은 건 따뜻한 실내에서 하루 10분 물구나무 서기라고 했다. 물구나무 서기는 치매 예방과 혈액순환, 노폐물 제거, 그리고 허리 근육 강화에 탁월하다고 설명했다. 미옥은 결심했다. 친구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서로서로 물구나무 서는 걸 도와주었다. 물구나무를 서서 건강도 좋아지고, 더이상 자식들한테도 안 혼나고, 추운 날엔 실내에 있을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결국 맨발로 걸으며 남겨진 건 먼저 떠난 친구들의 무덤, 이제는 아무도 걷지 않는 황톳길, 공무원이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민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