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약국

2024. 1. 17.

by 고도필

오늘도 오셨네요.

오늘은 어떤 약으로 드릴까요?


지난번에는 천천히 곱씹어 드시라고 저작정으로 만들어 드렸어요. 처방해 드린 위로를 천천히 느끼실 수 있도록 말이죠. 저작정에는 자일리톨 성분도 들어가 있어서 화하면서도 상쾌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좀 괜찮았나요? 제가 평소답지 않게 좀 험한 돌직구 스타일로 만들긴 했었어요. 이제 그 고민은 산뜻하게 다 날려버리신 건가요?


그런데 왜 또 오셨어요. 이번엔 어디가 아프세요? 아이고 저런. 남자친구랑 싸우셔서 헤어질지 말지 고민 중이시구나. 지난 달에 오셨을 때 헤어지라고 말씀드렸었는데..아직 안헤어지셨나 보네요. 아 그 다음날 바로 화해하셨구나. 이번엔 그럼 왜 싸우신 거죠? 아 따지는 게 아니라, 완벽한 약을 처방드리기 위해 묻는 겁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아, 그렇구나. 네네. 남자친구가 3시간 동안이나 연락이 안 됐었다구요. 네네. 개 산책시키느라. 저런. 한마디 정돈 중간에 해줄 수 있었을텐데, 그쵸?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약 처방해 드릴게요.


자, 약 나왔습니다. 지금 좀 많이 열받으신 것 같아서, 오늘은 롤리폽제 형태로 만들었어요. 이건 먹으면 바로 몇분 내로 바로 효과가 나타나구요, 지속시간은 15분 정도 됩니다. 앞으로 싸워서 속에 불날 때마다 바로 이걸 드시면 좀 진정이 될 거예요. 약빨 올려드릴려고, 특별히 욕 세게 넣어드렸어요. 속 시원하실 겁니다. 일주일 치에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아 질문이요? 뭔가요? 아 다른 사람들한텐 어떤 약을 처방하냐구요? 글쎄요..보통 장례식장에는 위로가 빠르게 도는 설하정도 많이 가져가고, 우울이 오랜 시간 지속된 사람들에겐 약효가 오래 지속되는 서방성 정제 형태로 만들어줍니다. 타이레놀 같은 거라고 보시면 돼요. 개인맞춤형으로 처방해드리는 거니 그때그때 다릅니다. 공감만 몇 겹이나 되는 알약을 만들 때도 있고, 이성적인 조언을 조금 섞어줄 때도 있구요.


저 스스로한테도 처방을 해주냐구요? 아니요. 저는 머리가 복잡할 땐 그냥 술 먹고 잡니다.

어쩔 땐 약보다 나아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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