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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Jun 14. 2020

수박 잘 자르는 방법

스타트업에서 프로잡일러로 살아남는 방법_수박 자를 때

바야흐로 날씨가 찌뿌둥하고 뜨거운 햇빛이 하루를 깨우는 여름이 왔다. 올해 여름은 코로나와 함께 맞이해서 인지 봄은 뛰어넘고 일찍 맞이한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필자는 여름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가볍게 옷을 입을 수 있는 점,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쓸 수 있는 여름휴가가 있는 점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수박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 사시사철 수박을 맛볼 수 있지만 어렸을 때 먹던 설탕 수박을 맛볼 수 있는 계절은 단연코 여름이다.


우리는 수박을 좋아해서 여름에 오면 거의 매주 수박을 사곤 한다. 수박이 무거워 1-2천 원 더 비싸도 동네 야채가게 보다도 동네 마켓을 이용하곤 한다. 이렇게 집에도 도착하기 전에 배달된 수박을 보면 다음 일주일을 준비하는 마음이 든든해진다.

수박 자르는 방법


어렸을 적, 부모님은 수박을 자르는 방법을 두고 자주 다투곤 하셨다. 아버지는 수박을 가로로 반을 나눈 뒤 먹을 때마다 스테이크(아버지는 이러한 형태를 수박 스테이크라고 명명하셨다) 모양으로 잘라 부채골 형태로 서로 나눠 먹는 걸 선호하시고 그렇게 하려 하셨다. 반면, 어머니는 그럼 먹을 때마다 수박 껍데기가 나와 불편하다며 사 오는 즉시 큐브 모양으로 잘라 락앤락에 보관하는 것을 선호하셨다. 이게 냉장고 보관에도 용이하다며 이 방법을 두고 아버지 어머니가 종종 다투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다툼이 지금은 별거 아니여 보여도 그때는 서로의 자존심을 거실 정도로(?!) 꽤나 심각했다. 이제는 두 분 다 연세가 많이 드셔서 어머니의 방법을 아버지가 전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보통 사 오자마자 어머니의 방법으로 락앤락에 보관하곤 한다. 이게 한 번 할 때 주방이 수박 물로 흥건해지긴 해도 향후 수박을 먹을 때 편하다. 더운 여름 하루 종일 고생하고 퇴근하자마자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수박을 꺼내 먹을 때의 그 기분은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 하루의 노고를 시원한 수박으로 보상받는 기분이다. 그 기분을 느끼고자 수박을 자르는 과정은 조금 고돼도 할만하다.


하지만, 이 큐브 모양을 어떻게 만드냐에 있어서도 방법이 분분하다. 언제는 수박을 가로로 다 토막(?!) 낸 다음, 껍질을 칼로 제거하는 방법으로 했다가 언제는 수박을 마치 조그마한 참외 껍질 벗기듯 먼저 껍질을 모두 제거하고 작게 소분을 하기도 한다. 또 어느 때는 수박을 반으로 가른 뒤, 반은 일자로 가늘게 잘라 끝에 껍데기만 제거한 채로 락앤락에 넣고, 나머지 반에 대한 소분은 그다음 주 나에게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수박자르는 도구(@이마트)

수박을 쉽게 소분하고 싶은 심리를 잘 파악한 사람들은 쉽게 수박을 자를 수 있는 각종 도구들과 수박 모양으로 된 보관용기를 빠르게 만들어 수박 코너 옆에 전시해둔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수박을 자르는 방법에 대해 열정적으로 고민할까? 과연, 어떤 방법이 베스트일까?


그렇담 질문을 바꿔서, 우리가 이렇게 치열한 고민을 하고 과연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는 무엇인가?


결국, 우리는 달콤한 수박을 가장 편안하게 맛보고자 하는 것이다.


달콤한 수박을 맛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하지만 이를 가장 편안하게 맛보기 위해서는 가장 효율적으로 수박 자르는 방법을 통해 수박을 잘라야 한다. 결국, 수박 자르기도 일종의 문제 해결 방법으로 접근하면 단순해진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두고 서로의 방법이 맞다고 주장하며, 서로의 감정을 상하기보다는 가장 효율적으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다. 어떤 방법으로 자르던 결국 달콤한 수박을 먹는 것임은 변하지 않지 않는가? 수박은 이렇게 먹으나 저렇게 먹으나 모두 변함없이 달콤할 것이며, 결국 나의 노고가 얼마나 들어가느냐에 따라 내 심리적 미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다면, 이를 자르는 방법보다는 맛있게 먹는 방법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수 있다.


치열한 하루의 끝에 집에 오자마자 수박을 꺼내어 와그작 먹는 것이던, 산속 계곡 앞에서 수박을 떠억 깨어서 와그작 먹는 것이던 사이다와 후르츠 칵테일과 함께 수박껍데기 그릇에 화채를 만들어 먹는 것이던 수박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하다 보면 수박을 해체하는 방법은 맛있게 먹기 위한 목적에 맞춰 쉽게 결정된다.


우리는 많은 상황에서 방법을 먼저 고민한다. 대게 이런 방법에 고민들  많은 부분이 문제와 내가 원하는 결론을 정의하고 나면 쉽게 결정된다.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보다는 그래서 얻고자 하는 것에 처점을 두고 고민하는 것이 당장의 방법을 고민하는 것보다 얻고자 하는 것에 깊게 고민하다 보면 의외로 그 방법은 쉽게 따라올 때가 많다.



수박을 잘 자르는 방법보다는 수박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수박을 자를 방법이 함께 오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는 내일 퇴근하고 꿀맛 같은 수박을 맛보기 위해 오늘 도착한 수박을 큐브 모양으로 잘라 냉장고에 잘 보관해뒀다.


낼 보자! 나의 사랑 수박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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