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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링주역 Apr 09. 2021

미신은 어떻게 철학이 되었나?
어쩌면 동북공정의 출발점

<주역 세계관6> 易으로 사유하기의 구조

갑골문 중 거북점복사(갑문) ©중국국가박물관(왼쪽). 갑골문 자체의 발견은 중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문자 중 최초의 문자이며 일정한 계통과 규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 문자발전사에 있어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 갑골문의 발견은 중국이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이미 어느 정도 완전한 문자 계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제이누리(오른쪽) 



*아직 많은 부분 논쟁 중이거나 발굴 초기 단계에 불과한 영역이라 조심스럽지만,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일으킬만한 주제라 생각해서 살펴볼만한 몇 편의 글들을 재구성해 보았다.






“내가 도발적인 질문 좀 해볼까? 철학이 뭐냐? 주재자, 이데아...처럼 세계 작동의 원인이자 목적을 외부에 두는 것을 철학이라 할 수 있을까? 그 경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기도, 고해성사, 반성, 아니면 인식, 더 명철한 인식, 더 디테일한 인식... 밖에 없는데?"

"하나 더! 우리가 왜 자꾸 획일적으로 변하게 될까? 권력을 가지는 자들은 자유롭고 다양한 주장이 남발하는 창조적인 개인들 보다 보편적이고 획일적 가치를 동조해주는 대중을 더 선호하겠지? 그들이 다양성의 싹을 조작해 획일성으로 꽃 피우는 방법이 뭘까?

"..."

"그게 주재자고 초월적 절대 존재고 이데아고 .이데올로기.....야."

"이런 것들이 삶의 롤모델이자 이상이자 목표가 되쟎아? 그 순간 이데아나 절대자를 참칭해서 가짜 이상향을 설계하고 대중을 현혹하는 존재, 이른바 우상이 등장하게 되지. "


"사이비 교주와 신도들 말씀이세요?"

"사이비고 아니고를 떠나, 히틀러든 공산주의 국가든 유토피아든... 인간 삶의 이상을 외부에서 찾는 것 자체를 말하는 거야. 그게 사실 어디서 시작됐냐? 호랑이 담배피며 거북점치던 시절 이야기쟈나. 그 때는 '점'에서 일러준 얘기말고는 어떤 인간 의지도 개입할 수가 없었어. 그게 『주역』이 등장하기 전 상황이야. 그런데, 3-4000년 전에도 이미 외부의 신이 내린 계시에만 맹종하지 않고 '인간의 자유 의지'를 꿈꾸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 발굴됐지. 거북점 시대에서 주역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벌써 말야. "

"... 대관절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자기 안에서 숙성돼가는 것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자꾸 외부의 어떤 것에 동조하려는 자세... 그게 종교든, 이념이든, 정차든, 진영이든, 부족이든, 민족이든 간에... 그런 건 거북점치던 시대에 살던 인류의 자유의지만큼도 못가진 종속적 인간들의 행태라는 거지. 어떤 지도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지지자가 몹시 고마운 존재일테지만, 세상적으로나 그 추종자의 인생으로 보면 그게 건강하고 바람직할 리가 있겠냐고. 그게 설령 신이라 하더라도~. 근데 우리는 너무 오래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살아 왔지."


"떡밥을 좀 더 구체적으로 던져 보심이..."

“이건 뭐, 나랑 주역 공부하는 내내 고민해야할 숙제지만... 일단, 오늘은... 자! 지금부터 정말 잘 듣고, 잘 생각해. 지금 내가 할 얘기들 속에 미신에 불과했던 역은 어쩌다 철학이 됐고, 그래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것인지... 역을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엔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런 것들을 각자 생각할만한 단서들이 나올거니깐.”

“아따! 약 그만 팔고 빨리 시작 좀 하라구!! 현기증 난단 말야~ 이 약장수야!”

주방 앞 쪽마루에 걸터 앉아 쑥이며, 달래며, 냉이며... 봄나물들 손질하느라 우리 얘기는 안중에도 없어 보이던 문수할멈이 느닷없이 버럭! 재촉한다.

“기둘려봐~, 본디 옛날이야기는 쪼는 맛이쟈녀~. 승질하고는...”




1. 갑골이 열어젖힌 문자 문명


갑골문이 발굴되면서 사마천의 『사기』에서조차 찾을 수 없었던 고대사 기록의 빈틈들을 메울 수 있었다. 국가대사에서 통치자의 일상 사생활까지 갑골문의 기록은 광범위했다.  농업, 목축업, 사냥을 포함하여 천문, 역법, 의학, 제사, 화복, 질병 등의 내용을 망라한다. 전쟁의 승부, 질병의 경중, 농작물 수확 정도, 비바람이 일지 않을지, 아들을 낳을지 딸을 낳을지 등 모든 것에 대해 점을 쳤다. 사냥이 순조로울지, 정벌이 성공할지, 경작지에서 노동하는 노예가 도망을 칠지 등의 내용도 있었다. 갑골문의 중요한 기능은 점복이기 때문에 특히, 기상에 대한 기록이 상세했는데,  일식, 월식, 성신과 관련된 기록은 가장 빠른 천문학 자료를 포함하고 있어 세계 천문학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하다.1)


“거북점을 치던 은나라 당시에는 무려 3600구나 되는 송(頌-은나라 당시 점사를 높여 부른 표현)2)이 DB로 보관되어 있었댜. 엄청난 양이지? 상황상황에 맞는 인간의 처신은 무엇일까를 신에게 일일이 물어봤던 거지. 아직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걸 신이 부여해준 특권이 있고 없고로만 구분할 때였으니까.”

“그걸 어떻게 사용해요?”

“갑골에 새겨진 문양에 맞춰서 3600구 頌중의 하나를 찾아내겠지? 글고는 그렇게 나온 점사에 따라 점에 물어본 일의 답을 결정하는 거여. 인간의 판단이나 선택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 점사에 적힌 대로 하는 거야.3)

“‘000를 정벌할까요?’하고 물으며 점을 쳤는데, ‘해라’ 일케 나오면, 무조건 정벌한다고요?”

“그럼. 당시의 신과 인간의 관계를 지금처럼 유도리 있는 관계로 생각하면 안되야. 까라면 까는겨~. 거북아~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먹겠다... 몰라?"

"그건 우리나라 가락국기에 나오쟎아요. 그냥 하늘에 제사 지내는... "

“거북점이든 뼈 점이든 다 제사와 함께 행해졌을 가능성이 높지. 나라의 큰일이니. 거북점과 관련 없다면 구태여 거북아 거북아 불렀을까? '구워먹겠다'는 뜻으로 해석된 끽(喫)자는 아마도 점복에서 불로 지진다는 계(契)자가 와전된 것일거여.4)

“그런데, 갑골은 은(상)나라 것 아닌가요? 여태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4000여년 전에, 그니까 기원전 2000년 무렵 신석기 후기지. 동북아시아는 룽산문화라고 흑도문화권이 지배하던 시절... 아마 은나라가 중원을 넓게 점령하기 전단계 쯤이니 하나라가 있었을 걸로 추측되는 악석문화기 직전 쯤? 쉽게 말하면 '요순시절' 어쩌구하는 그 무렵... 환빠라고 조롱당하는 『한단고기』류에서는 요동을 중심으로 고조선문명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시기... 5)"

"아! 알겠다구요. 그런데요?


"중국의 갑골 연구자들 말로는 벌써 그 시기에 동방(동이문명권을 말함)지구의 점복 문화가 중원지구에 비해  한 단계 더 수준 높은 걸로 보인다더라고... 특히, 동쪽에서는 거북점과 뼈 점 흔적이 같이 나왔다쟈나. 이게 뭔말이야? 대부분 아는 것처럼 은나라 사람들이 혁신적으로 갑자기 거북점을 발명해낸 게 아니란 거지.6) 그리고  발해사를 전공한 이형구 교수도 갑골문화의 분포지가 발해연안, 즉 동이족의 영역에 집중되고 있다고 하고. 그래서 갑골문화가 동이족의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까지 하쟎어.  사실  부여·고구려의 점복에 대해서는 삼국지 위지나 후한서, 진서(晋書)... 여러 중국사서에 차고 넘쳐. 또, 신라에... 그 혁거세 아들 남해왕을  차차웅(次次雄)이라고 불렀쟈나? 방언으로 ‘무(巫)’라는 뜻이여. 근데, 중국어 발음이 차차웅(츠츠슝)이나 자충(慈充-츠충)이 점복에서 말하는  ‘길흉(吉凶·지슝)’과도 비슷하지?7)

“그런데 왜 한반도에는 갑골이 없어요?"

"왜 없어? 80년대 ‘김해 부원동’에서 기원전 1~3세기에 갑골문화를 찾았지. 그 이후로 봇물 터졌지. 사천, 해남, 경산, 군산... 기원전 1~3세기가 언제야? 주몽, 박혁거세, 석탈해, 김수로 이런 양반들이 느닷없이 한반도역사에 등장하고... 막 이런 시기쟎아? 그러니까 중국에서 동방 지역이라고 부르는 고조선문명이 본격적으로 남하하기 시작한 시기일 거라고 그때가.8)"


"그러니까, 동방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갑골문화가 한편으로는 서쪽 중원으로 흘러가고, 또 한편으로는 동쪽과 한반도로 흘러간 거다?"

"쨔샤, 역사적 과정을 좀... 수학문제 풀듯이 하지 말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생각해봐. 그냥 어느 날 자! 서쪽으로도 동쪽으로도 가! 이랬겠냐? 여러 종족들 사이에 온갖 영화같은 흥망성쇠가 파노라마처럼 쫘악 그려지지 않냐? 정벌, 전쟁, 유민, 이주, 서진, 동진, 남하... 무려 2000여년에 걸친 갑골문화 전파 과정 얘긴데. 그런 과정에서 갑골문화를 들고 일부는 서진해서 하나라, 상나라를 세웠을 것이고, 또 세월이 흘러가는 중에 일부는 동진남하하며 부여로, 고구려로, 신라로 들고 이동했겄제."

"한나라가 세워져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한반도로 고조선 유민들과 함께 들어왔을 거다?"

"복잡한 이야기니 나중에 또 자세히 해주께. 너도 혼자 공부 좀 하고~. 암튼, 일단 은이 갑골을 들고 중원을 평정하면서 이 점복이 급격하게 제도화되고 세련되어진 거지. 왜냐하면 은나라는 상당한 국가의 틀을 갖추고 중원에 등장한 거의 첫 나라였을테니까. 그때부터 잘라내고, 깎고, 톱질하고, 자르고, 가는 정교한 다듬기 기술에다 거북껍질이나 뼈에 드러나는 문양을 조절하기 위해 찬이니 조니 하는 기술적 처리도 하고... 그렇게 국가적으로 점사 DB를 쌓아 관리했던거지."

"그게 3600구가 넘는다는 거군요."

"그러다가 은이 망했어. 주나라의 ‘역 아카데미’ 전문가9)들이 뭘 했겄어? 새로운 왕조가 섰으니 뭐라도 좀 달라지고 나아져야 될 거 아냐. 그래서 점사 3600구 를 추리고 재가공했겄제? 그리고는 64괘ㆍ384효사로 된 『주역』 DB를 편성한거여. 확~ 줄었쟈? 그렇지만 더 체계적으로 바꿨지. 이게 중요해, 줄었다는 거. 암튼, 요는 갑골문 점사 DB가 『주역』 의 원(原)DB였다는 거여.”


『주역』의 괘·효사 중 많은 표현들이 갑골문의 복사와 겹친다. 예컨대  옛 주석에 오래토록 '곧을 정正'으로 해석해온 『주역』 의 ‘정貞'자는 갑골문 연구를 통해 '점을 쳐 길흉을 묻는다'는 뜻임이 밝혀졌다. 또,  『주역』 중의 ‘길함’ ‘허물없음’ ‘큰 내를 건넘이 이로움(利涉大川)’ ‘나아감이 불리함(不利有使往)’ 등도 갑골문의 복사와 거의 일치했다. 

주나라 당시만해도, 거북점의 역사가 더 오래되고 그 형식이 시초점에 비해 더 신비롭게 여겨졌다는 것을 뜻한다. 시초점은 일종의 새로운 점 형식으로서 거북점에 대해 보완적 장치로 여겼고, 주나라 사람들은 거북점을 더 영험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주역』 점사占辭가 <갑골문> 복사卜辭에서 나왔거나 복사를 모방한 것임을 알 수 있다.10)

"국가에 대사大事가 있으면 먼저 시초점을 치고 난 뒤에 거북점을 행하였다" "거북점이 따른 것은 거북 껍질에 보이는 조짐 문양(兆조)이고, 시초점이 따른 것은 괘 형상(象상)이었다. 거북점의 조짐에는 송, 즉 복사가 붙어 있고, 『주역』의 괘상에는 괘·효사가 붙어 있어 양자는 역시 서로 통한다."『주례_춘관』

“서는 그 역사가 짧고, 귀龜는 그 역사가 길다. 역사가 긴 것을 따르는 것이 좋다"『좌전_희공公 4년』 






2. 유목사회에서 농경사회로 ㅡ 미신에서 철학으로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들을 종합하면, 갑골문화는 글자 없는 갑골 즉 무자갑골 단계 ㅡ 유자갑골(有字甲骨) 단계 ㅡ 『주역』 괘·효사의 과정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 과정은 곧 인류 여명기 '신의 계시'에 복종하던 단계에서 점차 인간의 조작과 개입을 확장시켜가는 방향이었다. 이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가야할 문제의식을 정리해본다.


인류 사상의 발전은 일정한 사회적 역사적 조건의 제약을 받는다. 은나라 사람들의 거북점으로부터 주나라 사람들의 시초점에 이르는 과정은 중국 노예제 시기 사회의 생산과 생활의 발전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은나라 부족의 조상들은 장기간 어업과 목축업의 생산에 종사하였기에 그 통치자들은 거북 껍질과 짐승 뼈를 천신을 향해 길흉을 점치는 도구로 삼았다. 그러나 주나라 부족은 농업생산으로 번창했기 때문에 시초를 신봉하였는데, 이는 사실상 농작물에 대한 숭배에서 나온 것이다. 주나라 부족은 농업생산력을 증가시켰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며, 주 통치자들은 은-주 교체기의 사회적 정치적 변혁 가운데에서 사람의 역할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점복을 신봉하는 데서 '귀신의 피하고' '사람의 꾀함을 추구'하였음을 반영한 것이다. 종교 미신을 포함하여 한 시대의 의식형태의 발전은 결국 그 시대의 역사적 산물이다.『역학철학사(易學哲學史)_주백곤』


그러나 인위적인 개입, 즉 '사람의 꾀함'은 주 문명의 시초점 이전 갑골문의 단계에서 이미 그 조짐이 시작되고 있었다.


임의적이고 맹목적이라는 갑골점복의 속성을 극복하기 위해, 매우 일찍부터 갑골의 다듬기와 가공과 찬착의 시행방법 등과 같은 과정을 통해 조가 나타나기 쉽게 하고 가능한한 인위적으로 통제하고자 했다. 이는 생활의 경험과 자신들의 적극적인 요구를 갑골 점복의 조(兆象)의 해석이라는 면에 의식적으로 시행한 결과였다. 이러한 점은 의식형태 영역의 사상 변천에 속하는 것으로, 동방지구의 악석문화시기(하나라 시기 추정)에는 이미 일상적인 습속이 되었으나, 중원 지구에서는 이보다 늦어 상나라에 들어서야 보편적으로 유행하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예컨대 하북성 자현 하칠원 유적지의 경우, 이리두 문화층에서는 다듬지 않은 상태에서 불로 지진 양의 어깻죽지 뼈와 같은 것만 출토되었지만, 상나라의 초 중기 문화층에서는 거북점과 뼈 점의 동시 시행이 갑자기 증가하며, 갑골의 다듬기 기술과 찬, 조, 착(불로 지지는 법)을 함께 시행하는 점복법이 단숨에 동방지역과 같은 수준으로 올라갔다. 이는 상나라의 대외교류를 통해 동방문호의 요소가 대량으로 중원지역으로들어갔다는 것을 말해 준다. 『갑골학 일백년 6장_왕우신 양승남 외』


이 두 편의 글을 통해서, 무려 4000여년 전 아주 오래 전 고대사라 할지라도 자연 신 인간 국가 전쟁 정벌 경제 기후 역병 자연환경 이동 유입 전파... 등 다양한 문화 변동 요소들을 가늠하며, 동적이고 입체적으로 시공간을 상상하면서 추적하기 바란다.



“3600구로 낱개로 존재하던 점사가 64개 괘사에 384개 효사로 정리됐으니 엄청 줄긴 했네요. 왜요?”

“그게 핵심이야! 줄어들었다는 게 뭐겠어? 분명 세상은 은나라 당시보다 더 진보해서 더 복잡해졌을 텐데, 왜 세상사를 반영하는 괘사-효사는 줄었을까?”

“뭐... 여기서 易의 상징, 은유... 이런 게 등장하나요?”

“어쭈, 서당개보단 낫구나? 마이 똑똑해졌네. '추상화'가 시작된 거지. 생각해봐. 인간사가 자꾸 복잡해지는 거여. 그 경우의 수들을 다 담으려니 점사 쪼가리가 3600구에서 5000구... 7000구 자꾸 늘어났겄제? 감당이 되겠어? 그러니까, 이 전문가들이 드디어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거여. 분류라는 걸 시도한 거지. 근데, 분류를 하려면 뭐부터 해야돼? 같은 상징체계를 묶어 줘야쟌어. 그럴려면 난잡한 개별 사안들을 대표적인 의미로 추상화시켜야겠제? 잘 기억해 둬. 이 '추상화'가 바로 '사유'와 연결되는 핵심 통로야.”


“그런 과정 자체가 어마어마했겠네요. 거대한 생각 공장이 하나 돌아갔을 것 같아요.ㅎㅎ”

“그렇지. 첨엔, 8괘의 범주로... 그걸로도 다 담을 수 없어지니까 8괘를 포개서 64괘로 분류할 범주를 늘이기까지 하면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저렇게 수천 년동안 여러 사람들이 무슨 마법서 다루듯 가지고 놀 만큼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구조물을 완성시켜 놓은 거야. 그러니,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짱구를 굴렸겠냐고~.”

“그런 과정에서 종교적 미신이 '사유'를 매개로 본격적으로 철학의 길을 걸었다... 이런 말씀인가요?”

"애초에 거북점이나 『주역』이나 길흉과 운명을 예측하는 ‘점술占術’로 둘 다 미신인건 마찬가지야. 그런데, 다른 미신과는 좀 다른 특징이 있었지.  조작 과정에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거야. 거북점보다 융통성이 크고 해석의 여지도 훨씬 커져서... 인간이 짱구를 굴릴 여지가 생겼다는 거지. 이게 뭐다? 생각하기! 사유하기! "

"어떻게요?"

"『주역』의 사유방식은 여러 가지지. 생각해봐. 인간들 머리 굵어지고 난 이래 지금까지 4천여 년 축적된 결과니...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사유 방식들이 녹아있다고 봐야지. 그 가운데 최고는 세계를 관찰하는 변증적 사유고."11)



"근데, 변증법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부터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까지 서양 철학에서 더 발전하지 않았나요?"

"동아시아의  변증적 사유는 역사도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상당히 풍부하거덩. 일종의 통섭적이고 융합적 사유방식이니. 흔히 동양사상은 유-불-선 세 가지 사상의 종합이라고 하쟎냐. 그게 4대 유파라고도 하는데,『주역』계통, 병가兵家와 『손자孫子」 계통, 노장철학 계통, 불학 계통이여. 이렇게 4계통이 융합되다보니 자연현상과 사회역사의 변화를 파악하는 데 대체로 부합하는 거지. 그러니까 오래동안 사람들의 실제 삶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거고."

"그래서 "역이 점서, 심리학, 종교학, 철학, 정치학, 우주발생론 등에서 '헛소리'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필요로 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을 만큼 풍성한 콘텐츠를 담게 됐군요."

"맞아.『주역』 괘·효사를 보면, 거북점의 점사하고는 다르게 역경을 벗어나려는 '우환의식'이나 좀 더 나아지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거덩? '예-아니오' 식의 '길함-흉함'에 대한 판단이 중심인 거북점과 달리 후회-부끄러움-위태로움... 등 인간의 행동에서 비롯됐을 지점을 지적하고 돌아보게 하는 표현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거지. 신이나 이상, 미지의 완전체... 같은 것 말고도 ‘사람'이 전면에 등장한다는 거야. ‘세계와 사람의 관계’ ‘사람의 의지’... 같은 거 말야."


예컨대, 이런 식이다.11)

① 자연현상의 변화로 인간세상人事의 변화를 비유하는 것. “마른 버드나무가 꽃을 피우듯이 늙은 부인이 젊은 남편을 얻는 것이니 허물도 없으나 명예도 없다." 같은 것이다.

② 인사의 득실을 설명하는 것. “말을 탔으나 나아가지 않음이니 혼인할 상대를 구하면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나 “되돌아옴에 미혹하여 흉하고 재앙이 있다. 군대를 동원하면 마침내 대패하고, 그 나라의 군주도 흉하여 10년에 이르도록 능히 나아가지 못한다” 등이다.

③ 길흉을 판단하는 말, 즉 점사占辭.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라든가 “허물 있음” “허물 없음” “위태로움” “후회함” “후회 없음” “부끄러움” 등이다.


위 세 가지는 <갑골문> 점사에서 추출해  『주역』 괘·효사로 전환시킨 DB가 대체로 분류되는 방식이다. 붉은 글씨는 거북점으로부터 시초점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위적 요소가 어떻게 끼어들었는지 보여준다. 시초점에서는 괘상과 효상의 변화를 읽는 과정에서 모종의 논리적인 연역과 이성적 분석의 요소가 들어가게 되므로, 결코 거북점처럼 기구나 신령의 계시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아래와 같아 점치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거북 껍질이 갈라지면서 생긴 문양은 자연적으로 생긴 문양임에 반하여, 괘상은 손으로 시초의 수를 헤아리되 정해진 서법에 따라 그 절차가 진행된다. 전자는 '자연으로부터', 후자는 '인위적인 추산에 의해' 나온 결과이다. 

거북점에서 생긴 문양(龜象)은 일단 형성되고 나면 바꿀 수 없고 ▶ 점치는 이는 그 문양을 살펴 길흉을 단정할 뿐이다(YES or NO). 

이에 비해, 시초점에서 생긴 상(卦象)은 시초점의 결과로 상이 결정된 뒤에도 ▶ 여러 가지 분석과 해석의 여지가 있고, 심지어는 논리적 추론을 거친 뒤라야 비로소 길흉의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인위적 요소들이 자꾸 발전하고 추가되면서 점차 사람들 언행의 규범을 만들어주고 생활을 지도하게 되고, 문제적 상황을 마주쳤을 때, 그걸 관찰하고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준'도 만들어 주게 된거지. 수 천년간 누저돼 온... 일종의 '다중지성'의 힘으로. 그러다가 '역에 능한 자는 점치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 거여."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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