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코드2> 시간 · 모순 · 변화
©素山 안흥찬ㅣ사람들은 '과도한' 것들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거나 위험 회피 본능이 생겨난다. 본능적으로 안정감과 매력을 느끼는 미감은 이런 식이다. 높으나 나즈막하고, 존귀하나 겸양하며, 가득 차면 빈 듯한.
주나라의 주공은 "역(易)에 단 하나의 도를 꼽으라면, 크게는 족히 천하를 지킬 수 있고 적게는 족히 나라를 지킬 수 있으며 가까이는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겸(謙)이다. 귀한 천자의 신분과 천하를 소유하는 부(富)도 이 덕을 온전히 체득해야 비로소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주공은 왜 역(易)기본 중의 기본 덕목으로 겸(謙)을 꼽았을까?
<겸괘 괘사>1)는
'제사를 모시며 하늘과 땅과 귀신과 사람의 도를 소통시켜야, 군자(리더)는 아름다운 끝을 볼 수 있다'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또는 '웰다잉'하려면, '천지에 조응하며(우주 생멸의 법칙에 맞춰) 순리대로(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라'는 것이다. '천지에 조응하고 순리에 따르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일까?
공자의 해설로 알려진 <단전>2)은 설명하기를,
하늘의 도는 그 운행함이 가득찬 것을 덜어내어 겸손한 것에 보태준다.
땅의 도는 그 형세로 말미암아 가득찬 것을 변화시켜 겸손한 곳으로 흐르게 한다
귀신은 가득찬 것을 해치고 겸손한 것에 복을 준다
사람의 도는 가득찬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노자』에 나오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을 말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과 귀신과 타인들... 나를 둘러싼 우주-천지는 불인한 존재다. 어질지 않다. 니편내편이 없다. 오로지 이 거대한 우주를 지속적으로 순환하게 할 '균형_밸런스'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해서, 물리학의 <에너지 보존 법칙>처럼, 죽어가는 게 있으면 생겨나는 것을 만들어 총량은 보존시키고, 한 쪽으로 너무 쏠려 있으면 다른 쪽을 북돋우며 평형을 유지할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잘되니까 어느 순간 갑자기 친구가 적이 되어 나를 깎아내리는 것은 그 친구의 인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애초에 인간이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천지를 구성하는 1/n에 불과하니까. (그러니까, 애먼 친구의 인성 탓하지 말지어다. 아마 그 친구는 내가 궁지에 몰리면 측은지심이 생길지도 모르니까,ㅎㅎ. 그러나 내가 잘 나갈 때는 나한테 잘하고, 내가 궁지에 몰릴 때는 나를 서운하게 하는 친구라면 빨리 버릴지어다. 왜? 오로지 자신만 위할 뿐 천지의 운행에는 역행하는 자이니.ㅎ)
온 우주의 천성이 이러하니, 시쳇말로 '다치지 않으려면 내가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거다. 따라서 높은 곳을 비행할 때는 추락할 때를 미리 준비하고, 나락에 떨어져서는 낮은 포복으로 딛고 도약할 단단한 땅을 마련하라, 이것이 바로 <겸>괘의 때를 만난 인간의 실천 덕목이다. 모든 것은 변해 왔고, 변하고 있고, 변할 것이므로.
이런 <겸>의 덕을 잊지말라고 일상에서 각인시켜주는 말들도 있다.
영원한 제국은 없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해는 중천에 뜨면 기울어지고, 달도 가득 차면 이지러진다.
물이 가득 차면 흘러넘쳐 흩어진다.
어떤 이는『노자』의 "복(福)이 화(禍)의 근원임을 알기에 영광의 순간에도 놀란 듯 깨어 있고, '이 또한 지나갈 것임'을 알기에 욕된 순간에도 피하지 않고 응전하라(총욕약경寵辱若驚)_"도 생각날 것이다.
이 모든 표현들을 관통하는 KEY WORD는 '순환'과 '반복'이다.
순환과 반복
순환하고 반복하는 것은 생명력의 조건이니 당연한 것 같은데, 역(易)에서는 독특하게 그 안에 생멸을 말하더라구요. 사물이나 형세는 고정불변인 것이 아니라 흥망성쇠를 반복하게 마련이라고...
"역(易)의 기본 구조는 <시간>, 그 시간의 전개에 따라 발생하는 <모순>, 모순의 결과 필연적으로 닥치는 <변화>. 이 세 개의 개념에 의해서 짜여간다고. 이걸 철학적인 개념으로 <시중(時中)> <상반상성(相反相成)>,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해. 뇌 용량이 허용하면 암기해둬. 폼 나잖아. "
시중은 '타이밍' 말씀이죠? 하나씩 좀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시중(時中)>은 때에 맞게 모든 것을 수시변통한다는 것이지.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상반상성(相反相成)>은 대립되는 한 쌍은 그냥 반-반 쌍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둘 사이 모순의 힘으로 서로를 존재하게 하기도 하고 성장시키기도 한다는 거야. 남녀를 생각하면 아주 딱이지. 부부나. "With or Without you, I can't live" 쟈나. 주거니받거니 커졌다작아졌다 돌고도는 태극의 음양도 마찬가지고.
<물극필반(物極必反)>은 모든 사물은 그 발전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는 거여. 성함이 극에 다다르면 망으로 전환 되고, 망함이 극에 다다르면 성으로 전환하는 거지. 인생사 새옹지마3) 같다는 얘기."
대립적인 두 쌍(음-양, 낮-밤)은 실제로는 적대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시중에 맞춰 변화의 와중에 드러난 한 면일 뿐이라는 거죠? 다른 면은 또 다음 때에 드러나는 거고. 그래서 둘 다 사실은 '하나'의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는. 우리가 낮이면 반대편은 밤이겠지만, 아침이 되면 또 우리 앞으로 해가 떠오르고... 이런거요?
"그래서『어린 왕자』에는 작은 별에서 일몰을 보겠다고 의자 방향을 돌려가며 석양을 쫓는 모습이 나오쟈나. 한 쪽 면에서는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태양이 사실은 다른 쪽에서, 또 다른 쪽에서 계속 보이니까. 우리가 고정된 어느 한 시점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거대한 산 하나(一)의 순간적인 '단면'에 불과한 거지. 빙산의 일각. 그러나 그 시선 너머로 아니면 수면 아래로 산과 빙하는 시시각각 움직이며 변화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렇게 계속 움직이는 까닭이 바로 상반상성하는 모순적인 작용때문이라는 거지."
'천지만물의 운행은 음양의 작용이다'라는 말이 이런 걸 의미하는 거군요.
"역易에 관한 고대 버전의 철학적 해설서인「계사전(繫辭傳)」에 이런 말이 있어.
은미해서 드러나지 않는 세계와 밝게 드러나는 세계의 뿌리를 안다면,
시작의 근원을 살펴 반추해보면 그 끝도 짐작할 수 있다.(원시반종原始反終)
고로 죽음과 삶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원시반종'이 여기서 나오는 군요. 좀 어려운데요.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이 한 뿌리이므로, 그 시작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면 끝이 어떻게 올지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죽음과 삶, 흥망성쇠의 모든 순환과정의 이유와 전개과정을 미루어 짐작하고 대처할 수 있다... 이런 말이겠지. 앞에서 다 한 얘기쟈나."
易에서 겸괘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알겠네요. 겸덕이 어떤 것인지도 알겠고요. 그런데, 이걸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뭘까요? 그냥 겸손해야지...라는 건 참 막연해서, 현실적으로는 처신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공손하면 되는 건가? 싶었는데 비굴해진다든가, 어떤 무례함에 대해서도 인내하게만 된다든가...
"괘상(卦象)에 딱! 나오쟈나. '땅속에 산이 있는' 이라고. 지+산=겸, 땅이 상괘고 산이 하괘쟈나. 반대로 산이 위에 있으면 뭐야? <산지박(山地剝)괘>가 되지? 박(剝)은 ‘깎을, 벗길, 떨어뜨릴’이란 뜻으로 해체한다는 거여. 그러니까 순환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치는 '마지막 잎새' 같은 국면의 괘야. 봄-여름-가을을 거쳐 수확을 마친 뒤에 마지막 남은 잎새들마저 떨어져 거름이 되면, 그 영양분으로 인해 저 아래에서부터 새로운 싹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기존에 지배적인 지위에 있던 '낡은 것'들이 다 벗겨지고 여린 '새로운 것'들로 대체되기 직전의 단계군요. 영광의 시절 다 끝나 추락하기 직전인 상태요.
"그런데 겸괘는 어때? 아직 땅 속에 산이 숨어 있으니... 한편으로는 아직은 때가 아니니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하는 거고, 한편으로는 양효가 하괘 산의 맨 위에 있으니 어찌보면, 출세가 목전인거여. 이제 시작이다! 아직 기회가 많다! 이런 의미일수도 있는 거지... 물론 하기 나름이지만."
하기 나름이요?
"한 가지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거야. 본괘의 아래 위를 바꿔서 나온 괘를 살펴보는 걸 '역위한다'고 하는데, 보통 일의 속도를 서두르게 될 경우 그 결과가 어찌될 지 보는 방법이야. 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산지박>이 역위괘니 좋을 게 없겠쟈?
그 다음은, 易이 늘 그렇듯이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통과해야 할 3가지 조건을 걸어놨다고. 겸덕을 실천하는 처세법 말여. ①지중유산(地中有山) ②中庸과 적정성 ③재성보상(裁成輔相). 이 세 가지 개념을 익히면 어떻게 처신하는 게 겸덕을 실천하는 것인지 감이 좀 잡힐겨."
아...! <코로나> 국면이 왜 겸덕을 요구 하는지도 대충 감이 오네요. 코로나 때문에 제일 염려스러운 건 '양극화'가 심해지는 걸테니까요.
"그래, 암튼... '귀신은 가득찬 것을 해치고 겸손한 것에 복을 준다' 이 말만 기억하면 돼. 코로나 때문에 지 혼자 독식한 놈이 나와도 안될 것이고, 지나치게 억울한 사람이 나와도 안 될 것이니께.
세 가지 방법에 대해서는 점심 먹고 할까요?
"그래, 너~무 떠들었더니 진이 다 빠져부렀어야. 공부도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지켜가며 해야 번아웃이 안 오제!"
1) 괘사(卦辭) : 謙은 亨 하니 君子有終이니라
亨을 '국민통합용' 제사로 보아 '謙亨'은 '제사를 모시며 하늘과 땅과 귀심과 사람의 도를 소통시켜야'로 해석한다.
2) 단전(彖傳) : 天道 虧盈而益謙, 地道 變盈而流謙, 鬼神은 害盈而福謙, 人道 惡盈而好謙.
3) 새옹지마
- 세상만사(世上萬事)는 변화(變化)가 많아 어느 것이 화(禍)가 되고, 어느 것이 복(福)이 될지 예측(豫測)하기 어려워 재앙(災殃)도 슬퍼할 게 못되고 복도 기뻐할 것이 아님을 이르는 말.
- 인생(人生)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늘 바뀌어 변화(變化)가 많음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