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이른바 '좀 후벼 판다는' 사람의 역량이나 관심도에 따라 그 괘를 보는 방식이나 해석도 다양하다. 물론 깊이나 폭과 이른바 '영빨'의 수준도 다양하다. 좀 교양있게 평가하면 그렇다는 것이고, 살짝 싼티나게 평가하면 '지 꼴리는대로'의 해석 세계란 얘기다. 이 얼마나 신나고 멋진 신세계인가! 나는 공중 높이 붕 떠 있던 그 '신성한 비결'들이 '땅 위에서도 이뤄지도록' 비천하디 비천한 『주역』의 새로운 길을 여는데 되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길 바란다. 본디, 비밀과 비기... 이런 것들의 매력은 누설과 전파, 확산과정에서 본격적으로 활짝 꽃 피는 법이다. 『주역』의 화양연화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 주옵소서.
때론 지루한 아침 시간을 함께 놀아 주는 화장실 친구로, 때론 라면국물자욱 쩔은 만화책 같은 천덕꾸러기로 이집구석 저집구석 뒹굴거리다보면, 어쩌면 이 신비의 '지혜서' 또는 '위안서'는 더 다양한 해석으로, 더 짭짤한 쓰임새로 진짜 우리 생활 속에 살아 있는 '콘텐츠 요술방망이'가 되어 줄지 모른다. 고로 나도 이제부터 이 고대에서 온 금단의 성역 '비기'에서 근엄함과 중량감을 확~덜어내어 좀 더 가볍고, 좀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볼 요량이다. 그런 길을 열기에는 눈꼽만큼 알면서 꽤 아는 척 뻥튀기하는 잔재주를 가진 천방지축 선무당만한 적임자가 없기 때문이다. ㅎㅎㅎ
나의 이 뻔뻔하고도 무모한 도전에 기대어 많은 선남선녀들이 이 '주역과의 놀이' 길에 동참하길... 그 길 끝에 <해리포터> 내지는 <미야자키하야오>, <반지의 제왕>, <유튜브버전 타로>를 넘어서는 콘텐츠크리에이터들이 탄생하길 소망하며. 사실 수확적 확률로 봐도, 근엄진 학자님들이나 '특별하신' 분들 손에서보다 저렇게 라면받침대로 굴러다니다가 '천기'가 '누설'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어쨌거나 지금부터의 내 썰은 그런 맥락에서 전혀 뒷감당할 생각 없는 나만의 '믿거나 말거나' 아무말 해석일 뿐임을 못박아둔다.
우선, <역>이 <역경>이 되고 <역경>옆에 <역전>이 달린 경위부터 간단히 말한다면 이렇다.
기본서
기본서는 <역易>이다. 혹은 <역경易經>이다. <역>은 하夏나라의 연산역, 상商나라의 귀장역, 주周나라의 주역 세 가지가 있고 현재까지 전하는 <주역>은 이 세 가지를 체계적으로 종합 정리한 것이라는 통설이 있다.
내 생각엔 비단 세 개였으랴 싶다. 아마도 부족마다 소국마다 각자 방식의 '점법'이 있었거나 큰 나라의 것을 변형-발전시킨 '점법'들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소국들의 노래를 모아 취사선택하여 정리한 <시경>처럼, 아마 <주역>도 그렇게 채집된 모든 점법들을 막강해진 주 제국의 아카데미에서 집대성하여 편찬한 것일 터.
상나라든, 하나라든, 주나라든 일단 소국들을 다 장악한 '제국'이니, 집권 이후의 과제는 전 제후국들의 통합과 문명의 진보다. 그러려면 당연히 '표준화'와 '평준화' 과정이 진행돼야 했을 것이다. 도량형도 통일하고, 언어도 통합하고... 그 과정에서 구전돼오던 시도 모으고, 역사도 모으고, 당연히 당시 종교이자 최첨단 과학이었던 점법과 점사들도 채록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집대성된 것에 <역> 또는 <주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공자쌤의 '위편삼절'이 회자되면서 경(經)으로 격상되었다. 이른바 <역경(易經)> 느님이 된 것이다.
이 <역경>의 기본 구성은 [괘사]64개와 각 괘의 [효사]6개씩 384개의 효사, 이게 전부다. 그 얘기는 나머지는 다 '주석'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이름이 뭐든.
주석서
누군가 비슷한 말을 했지만, 사실 지식의 역사란 레퍼런스의 역사이고 주석의 역사다. '원전'은 주석을 낳고, '주석'은 또 주석을 낳고, 그러다 주석이 원전과 섞여버리기도 하고... 그 결과, '내편' '외편' 심지어 '잡편'이란 구분도 생겨나고.
그러니, '주석'과 '레퍼런스'의 역사야말로 '지식'이 개인 영웅의 산물이 아니라 집단 지성의 축적된 결과물임을 강력하게 입증하는 증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은 원전대로 주석은 주석대로 고유한 자기 몫의 소명으로 인간의 지혜를 축적시켜왔고, 시대의 흔적을 기록해왔다. 어느 것인들 가치 있지 않으랴.
단, 그 과정이 항상 순리적이지만은 않았다. 시대 이데올로기나 특정 집단의 이해에 따라 '원전'자체를 훼손하거나 왜곡하고 은폐시켜 버리려는 눈먼 자들의 비행의 결과물들도 필연적으로 함께 축적됐다.
내가 나름 '원전'에 천착하고 최선을 다해 '원전'을 추적하는 까닭은, 다만 그게 전부다.
다시 주역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럼 공자쌤의 역할은 무엇인가?공식적으로는 <주역>의 열 개의 날개라 하는 '십익'을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사전, 문언전, 단전, 상전, 서괘전 등... 이 '십익'은 무엇인가? 이것이 공식적으로 전해지고 승인된 첫 번째 <역경>의 주석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이 '십익'을 유학자들이 공자쌤의 편찬이라고 이름하여 경전의 수준으로 격상시켜 놓은 것이 이른바 <역전(易傳)>.
사실 '십익'의 모든 것이 공자님의 작품인지에 대한 의문도 많지만 일단은 그렇다고 하기로 약속들 한듯. 그런데, 사실 노자(이 분도 실존 인물인지 사실 확인 불가)가 재직했다는 주나라의 도서관이나 제나라의 거대한 직하 아카데미나 <회남자>나 <여씨춘추> 제작팀이 보여주는 집단 창작의 역량을 보건대, 공자든 노자든 그 이름이 붙은 저작물을 굳이 1인의 창작물인 것으로 확정지어 버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글쎄, 그들을 신적인 존재로 추앙할 근거를 제공하는 것일 뿐이지 않을까? 예나 지금이나 '집단지성'이 만들어가는 창조의 바다보다 '영웅1인'이 누비는 권력과 게임의 전장을 더 사랑하는 이상한 인간 심리의 발현 아닐까?
어쨌거나, 다시 주역.
이렇게 형성된 <역경 +역전>을 합본해서 <주역>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자체로 [경전]느님이 되었다. 그 이후부터는 그저 [주석]의 범주로 잡는다. [왕필주注] [정이천주注][주자주注]....이런 식으로.
그런 대표적인 주석서 중 하나가 왕필주인 <주역정의>다. <주역정의>는 공영달 선생과 몇 분이 편찬한 책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왕필 선생의 [주注]에 또 공영달 선생 밴드의 주석이 달린다. 그건 [소疏]라고 한다. 왕필주를 부연 설명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한 경우에 붙이는 나름 '겸손한' 이름이다. 큰 개념으로 보면 <역전>부터는 전부 [주석서]들인 셈이다.
고대의 '위대한 원전'의 연대기는 대충 이런 식의 계보로 흘러간다. 이해하기 쉽도록, 내 글에서 주로 인용할 자료ㅡ주석들의 층위를 표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역사적 과정은 대개 외침으로 인한 전란이든, 혁명이나 봉기, 전염병 등으로 인한 내란이든 크게는 유사한 패턴이 반복된다. 극심한 혼란을 겪은 후 과도기를 거쳐 안정기로 이행한 다음, 안정이 가져다 주는 안이함과 느슨함으로 인해 새로운 부작용과 균열이 시작되고... 다시 전쟁에 준하는 비상적인 혼란상태, 이후 복구과정, 그 이후 안정기... 이런 식으로 순환하며 진행된다. 긴장▶이완▶긴장▶이완이라는 구간 반복의 패턴으로. 협소하게는 개인사가 그러하고, 넓게는 인류사, 문명사, 자연사로 까지 확장 가능하다.
'긴장▶이완'까지를 하나의 구간이라고 설정한다면, 그 하나의 구간을 형성하는 '사건'이나 '상황'은 단일한 갈등 구조나 스토리 구조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매 구간 다른 등장인물, 다른 내용들로 이뤄지고, 그에 따라 한 구간의 역사적 성격이 확정된다. 예컨대, 봉건시대, 절대군주시대, 민주공화국... 또는 고려왕조, 조선왕조, 대한민국... 더 좁게는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이런 식으로. 우리가 마주하는 '역사적 국면 또는 장면'이란 그렇게 한 구간이 진행되면서, '한 세계'에서 '다른 한 세계'로 이행하는 연속적인 과정의 절단면인 셈이다.
『주역』에는 이런 경과과정이 은유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주역』은 64괘卦로 구성되어 있다. 64괘의 각 1괘는 6개의 효爻로 구성되지만, 원래 1괘는 3줄의 효를 가진 8괘가 기본이다. 태극기에 그려져 있는 건태리진손감간곤. 64괘는 이 3효짜리 8괘들을 모든 경우의 수에 따라 아래 위로 포개 놓은 것이다. 이 때 <아래ㅡ위>는 각각 인생을 단위로 볼 때에는 <청장년층ㅡ중장년층>, 조직이나 국가를 단위로 볼 때에는 <하층ㅡ상층> 또는 <성장기ㅡ쇠퇴기>로, 장소적으로는 <안ㅡ밖>으로 보기도 한다.
이 64개의 괘卦는 거북점을 치며 갑골문을 사용하던 상나라의 역사적 경험들을 주나라의 문왕대에 확정지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그 때까지 일어난 체험 또는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추체험된 숱한 경우의 수의 '사건'들을 추상적으로 압축하고 일반화해서 64개의 대표적인 국면으로 일단 확정지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큼직한 64개의 역사적인 국면 각각에는 6개의 짧은 단계 또는 전개과정이 함축되어져 있다. 인간사를 64卦*6爻=372爻, 총 372가지 경우의 수로 설정하고 그 경우의 수들이 얽히고 설키는 복잡계의 패턴을 함축한 일종의 추상화이다. 바둑판처럼 내공에 따라 다양한 층위의 수를 읽어낼 수 있고, 다양한 수를 전개할 수 있는.
이 얼마나 명징하고도 재미있는 논리와 수학의 세계인가! 원래 추상화의 결정판이 '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리학자들에게도 이 주역의 세계를 강추한다.) 우리는 이렇게 추상화된 단면들을 개인사든, 국가사든 필요에 따라 상황에 맞는 '개념'과 '필터'에 걸러 응용하고 활용하면 된다. 주역 해석 방법은 이 단계에서 일종의 은유 - 메타포 기법으로 전환되고, 무궁무진한 예술의 세계로 확장될 여지를 가지게 된다.
앞에서 말한대로 다양한 해석 방법이 있지만, 일단 여기서는 그 64괘의 국면을 2개씩 세트로 묶어 총 32개의 구간으로 설정한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겠다. 2개를 한 세트로 묶는다는 것은 하나의 괘를 아래위로 뒤집어서 나온 괘와 짝을 맞추는 방식이다. 이렇게 ䷆+䷇.
내가 2개 국면을 한 구간 세트로 살펴 보는 경우는 주로 인생이나 국가의 큰 국면을 살펴봐야 할 때이다. 내게는 소위 '신빨'이란 것이 부족해 콕 집어 정확한 한 시점을 '점'쳐줄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선무당치고는 겸손하기까지 하다ㅎ).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어느 한 사건이나 상황이 벌어지는 구조와 그 일이 흘러가는 전개과정을 펼쳐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다음 점을 보는 사람, 즉 질문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펼쳐 놓은 상황 속에서 자신의 주소를 파악하면 된다. 이른바, 점치는 자와 점 보는 자 사이의 상호작용이고 협치다.
구질구질하게 자기의 상황을 구태여 나에게 또는 점쟁이에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본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스스로 가장 잘 아니까, 스스로를 점검하고 되돌아보며 자신의 주소와 시간대를 가늠해 보면 된다. '정貞'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지금 몇 시인가?" 이러면서... 그 다음에는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 전개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처신할 지를 살펴 보면 된다. 그 방법은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말하겠다.
* 일종의 '일러두기'
말 나온 김에 『주역』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 몇 가지를 잠깐 살펴 보고 가자. '정貞', '중中', '정正' . 나는 이 정貞과 더불어 중中, 정正이라는 표현을 해석하는 데에서 늘 애를 많이 먹는 편인데, 나름 지금까지 터득한 내 방식은 이렇다.
① '정貞'이라는 표현은 상나라 갑골문에 기록된 '점을 치다'라는 의미에서 '성찰한다', '겨울에 잠시 멈춰 일년을 정산한다'는 의미로 확장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유교적' 필터에 더 세게 걸러지면 '올바르다'라고 윤리적인 의미로 협소하게 해석하게 된다. 성리학이 대세였던 학풍이 많이 남아 있어서인지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주석서가 그러한데, 특히 유가儒家 쪽의 고대 주석인 〈단전彖傳〉의 해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유교>의 도덕으로 필터링된 책들에서는 사실 이 세 표현은 크게 구분없이 '바른/올바른'으로 해석되어진다. 그러나 나는 <유교> 이전의 갑골문 시대에서부터 '역易'이 있어 왔음을 고려해서 정貞은 '점을 칠만큼 중요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할 사안'을 의미하거나, '그런 사안에 점을 쳐서 나온 적정한 방법 또는 상태'의 의미로 해석하기로 한다.
그런데 주역에서 점을 친다는 것의 가장 핵심은 '시時 - 때'를 보는 것이다. "때에 맞는 처신인가?". 결국 정貞의 바르다는 의미는 윤리적인 바름이 아니라 시時에 적정한 바름일 것이다. 이것을 중용中庸, 특히 시중時中이라 한다.
② '중中'은 그런 맥락에서 '시중時中-때에 적정함' 또는 '위중位中-지위에 적합함'이란 의미의 '바름'으로 해석한다.
③ '정正'은 흔히 아는 대로 '올바름' '반듯함'이라는 윤리적 의미로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