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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Rachel Jul 22. 2024

엄마가 될 준비를 한다는 것은

엄마가 되어도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기를 - 미국에서의 출산과 육아




뜨거운 태양이 걷는 걸음마다 발등과 손등을 녹이는 듯한 달 7월. 여름이 왔다. 

낮 기온이 화씨 95도(섭씨 35도)를 훌쩍 웃도는 요즘은 바깥으로 한 발자국 내딛기가 무섭게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어느덧 두 달 전이 된 , 5월의 아름다운 계절에 내 첫 아이는 태어났다. 

문득 오늘 아침 남편과 아기 침대 옆 탁상 캘린더에 보이는 '53 days'라는 숫자를 보고는, 남편은 "아직 50일밖에 안 됐어? 오 마이갓.." 

그러게! 임신, 출산 그리고 이제는 육아까지 미국이란 이곳에서 가족의 도움 없이 오롯이 둘이서 우왕좌왕해내온 50일 남짓한 그 시간이 정말 총알같이 흘렀다.


미국은 출산하자마자 자연분만이라면 최대 이틀 정도만 병원에서 머문 뒤 3일 차에는 퇴원을 시킨다.

한국처럼 조리원의 개념도 없는 이곳에서 나와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지 4일 차부터 집에 돌아온 뒤 육아에 돌입했다. 생전 이렇게 가까이서 신생아의 울음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던 남편은 아기가 울어 재낄 때마다 큰 헤드폰을 끼고 기저귀를 갈고, 나는 예상보다 더 돌덩이만큼 무거운 신생아의 머리 무게에 손목과 어깨가 바들바들 거리는 매일을 반복하며 어느새 3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낮밤의 구분이 어려운 그 흐릿하고 몽롱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문득, 어느덧 엄마가 되어 있는 나 자신에 대한 현실감과 내 뱃속에서 꿈틀거리기만 하던 존재가 내 눈앞에 이제 현실로 존재하는 이 존재의 무게감과 그로 인해 갑작스레 밀려오는 책임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유퀴즈에서 이하늬 씨가 나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녀는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세상에서 인간인 내가 유일하게 완벽하게 해냈다고 느낀 것이 아이를 가지고 출산한 것"이라고 했다.

왜인지 모르게 그때는 아이를 가진 상태도 아니었는데 임신 후에 그리고 출산이 가까워지며 그 말이 꽤 자주 생각났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 순간 꽤 골똘히 생각했던 것 같다. 비로소 내가 이제 엄마가 되니 어느 날 새벽녘 눈떠 내 아이의 눈 코 그리고 오물대는 아이의 입과 꿈틀대는 팔다리를 보며 나는 이렇게 아직도 불완전한 인간이고 늘 이유 없이 여전히 불안하고 조급한데, 이런 불완전 한 내가 한 인간이라는 아주 완전한 존재를 만들어 내는 참으로도 놀라운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불완전하고 매일을 불확실함 안에서 사는 인간이지만 이제 이 생명체를 온전히 키워내고 가르치는 임무를 가짐으로써 내가 비로소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아이를 가지고 기른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나의 모든 것을  내어 주는 일이었다. 

우주의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  지금껏 나 스스로 태양이 되어 내 인생에 존재했다면 이제 내 인생에서 내 아이가 나의 태양이 되어 나는 하나의 행성으로서 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며 살아가고, 나 또한 무수히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이 모습의 아이도 언젠가는 상처받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도 슬픔인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오묘한 감정이 솟구쳤다. 


또한 매일을 나의 시간 나의 체력을 내어주며, 나는 나 자신일 수 있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함을 느낀다. 

이제는 의식하지 않으면 물 흐르듯 흐르는 시간과, 눈뜨면 너무나 커 있어 버려 두려울 것 같은 아이의 성장을 앞두고 두려움과 행복의 공존 아래에서, 나는 끊임없이 나를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비로소 아이를 낳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노력하여 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내 시간을 온전히 내어주는 이 삶을 맛보고 나서야 느낀다. 

나는 나의 아이를 사랑하듯 나 또한 매일 사랑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처럼, 정말 내가 행복해야만 내 아이의 행복도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하루하루가 서툴고 조급하고 어색하지만 노력해 보기로 하자.

완벽히 준비된 때는 없기에 나를 믿고 한 발짝 씩 나아가 보자.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내일도 매일 완벽하지 않지만 엄마가 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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