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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Rachel May 15. 2021

엄마와 베트남 달랏에서 -1

코로나 전 엄마와 베트남 소도시 달랏에서 보낸 여행 기록



언젠가 코끝을 스치는 바람, 어떤 향기, 공간의 감각 등 지구 넘어 반대 공간에 있어도 그것과 비슷한 무언가를 마주하면 끝없이 가슴속 깊숙이 담겨있던 추억을 끌어올려낼 때가 있다. 

요즘처럼 미국 동네에서 가끔 늦은 오후 산책을 나가면 봄과 여름 사이의 기운이 공존하면서 풀들의 진향 향이 코끝을 진하게 칠 때면, 약간의 여름의 기운이 성큼 다가와서 놀라우면서 한편으로 더욱 내가 예전에 갔던 따뜻한 나라의 여행이 기억에 나게 한다. 


무섭게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잠깐 멈추고 돌아봤을 때 어느덧 재작년 11월의 일이다. 


엄마는 나만큼이나 여행을 참 좋아하신다. 내 몸 깊숙이 흐르는 이 역마 기운은 엄마를 통해 얻은 게 분명하다. 때는 11월, 태국은 많이 덥지 않아 바람이 살랑살랑 가는 곳마다 불고 한국은 가을의 초입쯤이었던 것 같다. 언제든 제안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서 여행에 동참하는 엄마는 내가 "엄마 11월 중순쯤 여행 같이 갈까?"라고 하자마자 엄마는 그때부터 대화할 때마다 '달랏'이란 단어를 끄집어내시고는 검색을 멈추지 않으시며 여행 시작도 전에 이미 들떠 계셨다. 


태국에서 베트남 달랏은 저비용항공사로 2시간 남짓이었고 엄마는 딸내미가 지내는 태국에서 또 다른 여행을 할 겸 잠시 머무르다가 방콕에서 같이 가기로 약속을 했다. 엄마는 태국의 향신료 강한 똠얌꿍 같은 것은 너무 싫어하면서 베트남 쌀국수는 너무 좋아하신다. 한국에서도 정갈하게 꽤나 잘 나오는 베트남 음식 체인점에 가면 늘 베트남 음식은 마다하지 않고 드셨다. 그 생각이 나서 둘이서 음식도 즐길 수 있고 조금은 흔하지 않은 여행지를 찾는 중에 알게 된 곳이 달랏이었다. 평소에도 여행 다큐멘터리 영상이나 각종 가지각색 나라별 음식을 탐색하는 방송을 즐겨본다. 한 번은 비행을 하고 돌아와서 본 유튜브 영상에서 달랏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 굉장히 작은 소도시 같으면서도 그 풍경이 너무나 평화롭고 엄마와 내가 좋아하는 야시장 느낌도 물씬 나는 것이 바로 여기다! 하고는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나는 수도 없이 망설이고 결정장애의 면모를 상당히 보여주는데 여행하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이미 한 발짝, 내 마음은 이미 그 여행지에 있다. 끝도 없이 구글 맵을 확대 해 보면서 그곳을 이미 한 번은 다녀온 듯 완벽하게 탐방하기도 한다. 여행의 즐거운 점이 나는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행하는 모든 것들에 의한 설렘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여행을 준비하는 그 과정안에서 나는 이미 그곳을 한 번 다녀왔는지도 모를 만큼 가끔은 그 과정 자체가 좋아서 여행을 멈추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 그렇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클수록 사실 막상 그곳에 가서 기대 만큼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 하더라도 이미 나는 떠나 왔다는 사실로부터 또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2019년 11월 중순 베트남 달랏으로 둘이서 여행을 떠났다. 엄마는 한국에서 태국 들어오는 비행기에서 같이 일하는 크루들과 반갑게 인사하시며 이미 시작된 여행의 즐거움을 일찍이 즐기기 시작했다. 태국 사람들은, 내가 일하던 회사의 태국인 크루들은 참 동료의 가족들에게 다정했다. 그날따라 운이 참 좋았던 엄마는 퍼스트 기종이 있는 참에 비즈니스도 아닌 퍼스트 클래스로 업그레이드되어 천사 같은 사무장님과 기내 매니저님의 천사 같은 미소 아래 아빠가 배 아파할 만한 부러운 대접을 단단히 받으면서 5시간 비행시간 내내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딸내미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ㅋ 한편으로는 그런 엄마가 너무 귀엽고 이 일을 해서 가장 보람되고 기쁜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호화스러운 대접을 받고 엄마는 방콕에서 하루를 머물고 같이 저비용 항공사를 타고 달랏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밟는 다기엔 너무나 작은 부스와 한국의 마치 1970년 같은 복장의 공항 직원 복장을 보고 나오니 아! 내가 또 다른 곳으로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오자 달큼한 달랏의 11월의 맑은 공기가 느껴졌다. 워낙 소도시라 여행자들이 가는 방향은 모두가 같았기에 비행기에서 내린 이들 중 우리 포함 몇몇은 공항 앞에 정차되어있는 작은 버스를 다 같이 타고 같이 달렸다. 


작은 베트남 달랏 공항
버스 안에서 보이는 달랏 풍경

동남아에서 왔는데 또 다른 느낌의 동남아였다. 하늘은 동남아가 그렇듯이 파랗고 맑았지만 방콕과 또 다르게 인상적인 부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달랏의 평화로움이었다. 작은 체구를 가진 소박한 복장과 이미지의 베트남 달랏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버스 안 창밖으로 끊임없이 바라보면서 그들의 조용한 일상에 우리가 해가 되지 않게 머물다가 가야 할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베트남이란 나라에는 이미 여행객들에게 많이 알려진 매력적인 도시가 많지만 달랏은 그중에서도 아직 덜 다듬어진 보석의 원석처럼 숨어 있는 곳이었다. 해발 고도가 꽤 높아 버스가 꽤 오랫동안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달랏의 첫인상은 내게 그 어떤 다른 베트남 도시보다 그런 생각을 갖게 해주는 마치 '보존' 해주고 싶은 도시의 느낌이었다. 


처음 도착해 가본 베트남 음식점
자연적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넘어 점심시간을 넘긴 우리는 찾아놓은 베트남 음식점에 가서 베트남 쌀국수 하나와 직원이 추천한 돼지고기 볶음을 시켰다. 방콕에 워낙 오래 지내던 나는 동남아의 입맛에 길들여졌고 2시간 남짓 날아온 이 곳에서 또 다른 진짜 동남아 음식을 즐기는 그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나 만큼이나 엄마도 태국 음식과는 달리 별 탈 없이 너무나 맛있게 드셨다. 둘이서 셀카를 찍으며 그 순간을 남기려 하던 우리에게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곤 우리와 같이 사진을 남긴 베트남 음식점 직원의 선명한 함박웃음이 내 핸드폰에 고이 남아있다. 그 기억과 추억과 사진을 보며 다시 느껴지는 달랏의 첫 모습과 인상이 1년을 훌쩍 넘겨 다시 살펴보는 지금이 감회가 참 새롭다. 


진짜 베트남 쌀국수! 와 직원이 추천한 돼지고기 조림


엄마와 그렇게 든든하고 맛있는 베트남에서의 첫끼를 마치고는 작지만 깔끔하고 정겨운 조식이 나오던 호텔에서의 숙박을 시작으로 배터리 충전 가득한 핸드폰과 카메라를 들고 또다시 진짜 시작될 여행 채비를 마치고 그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기로 했다. 흐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11월 어느 날, 그렇게 베트남의 달랏이라는 작은 소도시에서 딸과 엄마는 그렇게 둘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언덕 위에 있던 작지만 깨끗했던 베트남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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