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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Rachel Apr 28. 2021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푸르고 질기게

영화 '미나리' 그리고 방송 '유 퀴즈'를 보고




어느 날 유튜브 채널을 돌려보다가 까만 보타이를 멘 자그마한 남자아이가 울먹이며 수상 소감을 말하는 영상을 봤다. 작은 체구에 반해 아이가 전하는 진심은 어른인 내 마음을 툭 쳐서 나도 모르게 아역 배우의 영상을 시작으로 영화 미나리에 관한 내용들을 더 찾아봤다.


영화 '미나리'. 그 남자 아역 배우의 영상이 아니었어도 이 영화를 꼭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저 영화가 감독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것과 얼핏 스티븐 연이 주연으로 나오길래 어떤 내용일까 하고 흥미를 거둘 수 없던 참이었다.

그렇게 2시간가량을 물 흐르듯 본 영화 미나리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배우들의 꾸미지 않은 연기가 전체 흐름에 꼭 큰 한 방이 없더라도 마음속에 잔잔하게 스며드는 충분히 '좋은' 영화였다.

요즘 따라 자극적이고 한 번이라도 더 주목을 받기 위해 쓰여지고 만들어지는 것들이 너무 많은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무언가 날것 그대로의 좋은 것을 흡수한 느낌이라 영화를 본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가족영화라는 특성과 감독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민 세대가 겪었던 거짓 없는 스토리 전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 감독의 천재적 디렉팅 등의 조화가 연령 성별 국적을 떠나 모두의 보편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미나리 영화의 수상과 배우들 그리고 최근 윤여정 배우님의 아카데미 조연상까지 이루는 쾌거를 만들었구나 하고 영화를 보고 난 후 알게 되었다. 늘 많은 이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것들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또한 배우 윤여정 님의 수상과 그 연기 경력과 비례하는 노련한 수상 소감을 보고 감탄을 마지못했다. 그것은 '고상한 체' 하는 영국인들에게 멋쩍은 웃음을 짓게 할 수 있는, 자그마치 55년이라는 긴 연기 경력 안에서 자연스럽게 쌓인 노련미를 가진 배우만이 할 수 있는 연륜과 여유가 가득한 수상소감이었다. 그분의 솔직함과 함께 일흔이 넘은 나이의 아카데미 수상이라니 나이가 무색하리 만치 마치 한 배우의 새로운 인생의 시작의 종소리를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닌 시상식을 본 모두가 함께 응원하는 듯한 세계적 관심과 코멘트들도 참 인상적이었다.


그분의 나이와 경험 그것들에서 우러나오는 연륜을 보면서 한 사람의 성장의 길이와 범위에 관해선 정해진 시기도 멈춰야 할 시기도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이가 들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언제인가 문득 했다.

그것은 시간이 한 개인에게 주는 '농익음'인 것 같다. 커리어,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나이가 든다'라는 시간의 변화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 말이다.





미나리 영화의 배우 윤여정 님의 수상뿐만 아니라, 최근 본 방송 '유 퀴즈'의 아티스트 니키 리 님의 에피소드를 보고도 같은 생각을 했다.

아티스트 니키 리는 이미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이루어 낸 분이지만 지난 10년 간 타인의 기준에서의 외적 성과라 할 수 있는 부분은 꼽아 볼 수 없을지라도 자신 기준의 내적 성장을 이루었다는 방송 인터뷰 내용이 너무나 깊게 와 닿았다. '내적 성장'. 그 단어가 꽤나 오랫동안 뇌리를 맴돌았다. 가끔 나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취하는 모든 것들에 관한 행위 자체에 스스로 의미를 잃을 때가 있다. 그렇게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때를 생각해보면 그 성장의 기준을 타인의 시선에 두었을 때였다. 금방 보이는 외적 성장을 누구나 추구하지만 우리가 더욱 추구해야 할 것은 '내적인 성장'인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짚어보았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성장. 타인이 잘했다 멋있다 해줘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성장한 내 모습에 반할 수 있는, 단거리 달리기로 숨이 넘쳐 차오르는 여정이 아닌 장거리 달리기처럼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걷다 뛰다 하며 끝내 이루어 낼 수 있는 그런 여유 있는 성장.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성장 말이다.


마흔이 넘은 아티스트 니키 리 님과 일흔이 넘은 배우 윤여정 님을 보며 아직 서른 줄에 있는 나는 뼈저리게 배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나이가 들어도 늘 깨어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으면 좋겠다고. 숫자뿐인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나이가 들어도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스스로 신뢰하며 즐겁게 마주 할 수 있는 일과 관계 속에서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내 인생에서 결국은 내적, 외적 성장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 전에는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나 스스로의 큰 노력 없이도 풍부하고 다양한 주변 환경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된 현재 내 삶에서는 좀 더 풍부하고 다양한 것을 나 스스로 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배움을 통해서든 인간관계를 통해서든 늘 멈추지 않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렇게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싶다.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이 해야  것들을  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그렇게 쌓이고 쌓여 타인의 시선이 아닌  기준의 내적 성장을 이룬다면 객관적인 성취의 크기와 무게는 그저 겉으로 보이는 물질적인 것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윤여정 님의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후 같이 노미네이트 된 세계적 배우들을 바라보며 말한 내용이 문득 또 떠오른다.


"나는 경쟁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다른 역할에서 각자의 배역을 연기해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위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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