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집

한 달 만에 지은 우리 집

by 가희

나의 고향은 18평, 방 두 칸짜리의 낡고 작은 아파트였다.


가난한 부부였던 엄마 아빠의 신혼생활은 아빠의 가게 뒤편에 있는 작은 방 한 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엔 어린 나와 언니의 손을 잡고 셋방을 전전했고, 내가 네 살 무렵에 시가지 가장 위쪽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 한 칸을 사서 이사를 갔었다.


나의 기억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그곳에서 말을 배웠고 젓가락질을 배웠고 친구들도 사귀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어서 집을 떠났고, 시간은 흘러 훌쩍 삼십대가 되었다. 10년을 넘게 타지에서 지내왔음에도 그곳은 여전히 나의 유일한 집이었으며, 고향이었다.



내 엄마는 그 집이 정말 지긋지긋하다 했다. 엄마의 오랜 소원은 딱 두 가지, 그건 바로 깨끗한 베란다를 가져보는 것, 그리고 뽀송하게 빨래를 말려보는 것이었다. 좁고 낡은 아파트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골에 집을 짓기로 했다.


문경 시내에서 20분 떨어진 시골에 과수원이 있는데, 그 바로 옆에 농가주택을 짓기로 결정을 하자마자 아빠는 서둘러 시청에 의뢰해 비포장도로였던 그곳에 길을 닦았다. 비탈진 오르막길을 조금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높은 지대인 만큼 경치가 정말 좋아서 우리는 모두 흡족해했다.


그런데, 이제 막 터를 잡고 시멘트 작업을 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아빠가 쓰러졌다. 우리 가족이 병원에서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도, 공사는 계속됐고 집은 올라가고 있었다. 퇴원을 하고 아직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도 아빠는 매일 아침마다 시골로 가서 집이 올라가는 것을 확인했다. 소일거리를 찾아 돕기도 했고, 사고를 치기도 했다. ‘섬망’의 증세와 스트레스까지 심해져서 그런지, 집을 짓는 기간 동안 아빠의 화는 극에 달했다. 아빠의 머릿속에서도 어떠한 집이 지어졌다, 또 허물어졌다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보고 수군거렸다. ‘집터를 잘못 잡아서 박 사장이 갑자기 아픈 거야’ 내지는, 고사를 안 지내서 그런 거라며 큰엄마들이 우리가 없는 사이 집터를 찾아 막걸리를 붓고 그릇을 깨는 등의 일들을 했다고도 했다. 무성한 소문들 속에서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집을 지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눈앞에 거짓말처럼 집 한 채가 지어졌다.


30평짜리의 아담하고 소박한 농가주택. 남들이 상상하는 만큼 화려한 2층 전원주택도 아니었고, 그 안에서 써 내려갈 우리 가족의 이야기도- 유유자적 시골 생활을 즐기는 누군가들과는 다르게, 아빠의 병마와 싸워나가야 할 치열한 이야기일 테지만, 평생을 좁은 집에서 내내 힘들게 살았던 아빠와 엄마는 정말이지 기뻐했다.


그리고 이사를 하던 날,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함께 울고 웃고 다퉈가면서 우리 네 사람이 살을 부대끼며 살았던 나의 고향. 그 작은 아파트를 떠나면서, 나는 앞으로 더욱더 행복해지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우리는 모두, 내일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저마다의 집을 짓는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에게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나의 자아를 형성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그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이제는 혼자만의 또 다른 집을 짓기 위해 날마다 노력했다.


‘일’이라는 집. 그것은 브랜드만으로도 모두가 믿고 매매하는 고퀄리티의 아파트였으면 좋겠고, ‘인간관계’라는 집. 그것은 참으로 아늑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꾸며진, 언제나 좋은 음악이 흐르는 나지막하고 예쁜 빌라였으면 좋겠다.


‘완성’은 아주 먼 훗날이어도 좋으니, 미래를 보며 무언가를 설계하고 있다는 것- 그것 자체로도 아주 괜찮은 하루하루가 아닐까.


나의 엄마 아빠의 집은 그곳에 있고, 나의 집은 여기에 있다. 행복이 가득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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