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가희 Sep 20. 2019

아빠의 뒷모습이 말을 걸던 어느 밤

20대 초반, 오랜만에 친구와 약속이 있었던 나는 지하철역 앞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툭툭 어깨를 치는 손길에 뒤를 돌아보니 반가운 친구의 얼굴이 대뜸 있었는데, 어쩐지 조금 뚱해 보이는 그 입에서 흘러나온 첫인사는 "너, 밥은 먹고 다니니?"였다. 아무것도 아닌 그 말에 괜스레 민망해져 양볼을 비벼댔다.

나는 전문대도 졸업하기 전,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취업을 했다. 멋모르고 뛰어든 사회는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은 것이었고, 막내작가의 업무량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하루 한 끼 김밥 한 줄 먹을 시간 없이 쪽잠을 자며 일해야 했던 시절. 당시 친구들은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겨울방학을 보내는 중이었다.

어쩐지 포동포동 살이 좀 오른 것도 같은 친구는 내게 말했다.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는데, 내 뒷모습은 아주 지쳐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헛소리 말라고 웃어넘긴 나는 그 뒤로도 뒷모습의 표정 따위 생각할 겨를 없이 바쁘게 지내왔다.

그랬던 내가. 얼마 전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표정을 보았고, 심지어 그 표정은 나에게 말을 건네기도 했다. 바로 아빠였다.

명절을 맞아 문경집에 내려갔는데, 어쩌다 보니 이틀을 꼬박 아빠와 단둘이 보내게 되었다. 이유인즉슨, 나는 때 아닌 몸살에 걸려서는 고립된 산 중턱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된 것이고, 아빠는 곧 다가올 수확철을 앞두고 사과밭에 비닐을 씌워야 해서 꼼짝 않고 예초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우리 집은 과수원 안에 있는 농가주택이다). 아빠가 아프고 나서 간판가게를 접어 수입이 없어지게 되자 엄마는 요즘 시간 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다니기에 집을 비웠다. 엄마 없이 아빠와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내는 건 처음이었다.

별다른 사건은 없었고, 평온했다. 나는 내내 소파에 누워있었고 아빠는 사과밭에서 풀을 벴다. 그러다 때가 되면 나는 밥을 차렸고, 둘이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식사를 했다. 말은 주로 아빠가 했고,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살짝 고개만 끄덕여주는 것이 다였다. 그토록 무뚝뚝한 아빠였는데. 조금 말이 많아졌구나. 하고 잠시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데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뒤를 돌았을 때, 거실에 있어야 할 아빠가 없었다. 창문 너머로 어둠이 깔린 테라스에 앉아 보름달을 바라보는 아빠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와 보이던지, 시골 밤 어둠 속에 아빠가 파묻혀버릴 것 같은 두려움까지 밀려들었다. 창문을 벌컥 열고 모기 많은데 거기서 뭐 하는 거냐 물었다. 아빠는 엄마를 기다린다고 했다. 어미소를 기다리는 송아지 같은 눈망울이었다. 콧등이 시큰해졌다. 오늘 하루 내가 너무 아빠를 외롭게 한 건 아닌지 후회가 밀려왔지만, 나는 더 다가서지 못한 채 그렇게 한참 동안 아빠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때로, 똑바로 마주 보기가 버거운 현실들이 있다.

실은 나에게 아빠는 그런 현실과도 같았다. 나는 최근 들어 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슬퍼지기가 싫어서였다. 어찌 못할 현실을 놓고 감상에 빠지기에는 일상이 너무 치열했다. 늙고 병든 아빠의 모습이 안타까웠고, 그럴수록 내가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외면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 되지 않을 일들도 제법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우리는 의외로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늙어가는 걸 목격하는 경우가 많다.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과 목에 깊게 패인 나이테는 제대로 한 번 본 적도 없으면서, 왜 굽은 등과 하얗게 내려앉은 흰머리는 그리 잘 보이는 건지. 이제야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아빠의 뒷모습은 나에게, 쓸쓸하다, 인생이 덧없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빠는 달빛을, 나는 아빠의 뒷모습을 향한 채로 시간이 멈춘 듯했다. 선명하던 달빛은 어느덧 구름 뒤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고, 밤공기는 제법 찼다. 풀벌레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해 있었을 때, 뒷모습조차 어눌했던 아빠는
퇴원을 하고 급속도로 회복을 했고, 늘 테라스에 앉아 트롯을 들으며 건너편 산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아빠와 단 둘이 보낸 둘째 날. 나는 또 아빠의 새로운 뒷모습을 보고 말았다.

아픈 나를 대신해 무려 설거지라는 것을 하는 아빠의 뒷모습. 태어나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우리 아빠는 웬만해선 주방 근처엔 얼씬도 안 하고, 청소기의 사용법 같은 건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뒷모습은 나에게 '내가 너를 이 정도로 생각한단다'하고 고백하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10여 년 전, 어린 나의 뒷모습에서 지친 표정을 발견했다는 친구는 아마 나를 많이 아꼈을 것이고, 그래서 조금 말라버린 뒷모습에서 힘들어하는 표정을 읽은 걸 거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가사의 노래가 떠올랐다.


설거지를 마친 아빠는 그 날도 어김없이 밖으로 나가 엄마를 기다렸고,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지 않았다. 함께 나가 테라스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다. 산 뒤에 숨어있던 달이 마치 일출처럼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고, 우와 정말 멋지다! 정도의 말이 오고 갔다.

우리 언젠간, 이렇게 나란히 앉지 않고 똑바로 마주 앉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라는 말은 마음으로만 했다.




길이길이 남겨야 할, 설거지하는 아빠의 뒷모습






매거진의 이전글 고데기가 고장 나서 울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