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천국을 맞이했을까

1.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by 고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6월 24일, 평소와 같은 회사 점심시간.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족에게 뜬금없는 전화가 오면 덜컥 겁부터 난다.

평소 왕래가 적은 사촌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받기 전부터 설마, 설마... 설마..

언니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왜? 언니 무슨 일 있어?라는 질문부터 튀어나오더라.

'고은아, 지금 어디야? 할머니 돌아가셔가지구..'

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정말로 돌아가셨다.


어, 어쩌지..... 해드린 게 없는데. 2024년 8월에 한 번 동생과 찾아뵌 게 다인데. 그게 단데.

어쩌면 좋지. 며칠 전,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더라니. 이래서였을까?

전화를 받고 30분 간은 계속 당혹스럽고 눈물만 났다. 우선 회사를 나서고(슬퍼하는 나를 도와주신 대리님, 차장님께 정말 감사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기차표를 끊었다.

무슨 정신으로 기차표를 끊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안 난다.


'대학생인데, 저 벌써 취업했어요, 할머니!'

고이 품고 있던 이 짧은 한 문장.

취업했다는 소식을 이번 여름에 잠시 내려가서 들려드리려 했는데. 직접 명함도 드리고, 손도 잡고 기도도 드리려 했는데 이게 뭘까..


사랑 표현이 부족했던 나의 아버지를 대신해 우리를 아낌없이 챙겨주고 늘 나의 편이 되어 주셨던 할머니. 사랑하는 할머니. 힘들다 말 하지 않아도 그 아픔을 알고 먼저 품어주셨던 할머니.

하나님을 처음 만나게 해준 분도 할머니이셨다.

할머니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셨기에 나의 엄마가 교회에 따라갔고, 내가 태어나고도 우리 할머니 밑에서 신앙을 배웠다.


아주 어릴 적에 할머니의 집을 갈 때마다 나는 너덜너덜한 성경책만 보였다.

할머니는 성경을 닳도록, 그리 닳도록 읽으셨다.

그리고 우리를 붙잡아두고 계속 읽으셨다. 달달달 외우셨다.

왠지 모르게 참 잘 어울리는 돋보기를 쓰시고선, 닳고 닳은 성경책을 펼쳐 흐물해진 페이지들을 또다시 넘기며 밑줄을 긋던 할머니.


그녀는 이제 바라고 바라던 천국에 도착했을까.

그녀의 천국은 무엇이었을까.

그 많은 자식들을 낳으시고, 그 많은 손주손녀들을 보시고. 어떤 마음으로 사셨을까.


나는 우리 할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멋있었다. 마음이 참 단단하셨고 늘 올곧으셨다. 단호하셔도 사랑으로 모든 걸 채우시는 할머니셨다. 이 시대의 신여성이라고 불리울 정도였으니.

내가 활자에 집착하게 된 것도, 아마 할머니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앞으로 할머니의 장례식을 지키며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또 어떤 다짐들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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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일지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보시던 성경책을 받아오고 싶다.

내게 중요한 건 무엇일까.. 내가 '그리스도의 일'을 하길 바라신 할머니. 더 많이 찾아뵙지 못 하고 더 많이 사랑한다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할머니는 나의 가치관이자 내가 지켜야할 사람 중 가장 우선순위였다.


할머니와 도란도란 초록 풍경을 보며 할머니의 삶을 듣고 싶었고, 할머니를 모시고 푸르른 바다도 함께 담고 싶었다. 늘 그랬지만 하고 싶은 것은 참 많다.

2년 전. 잠시 제주에서 살며 초록, 파란 풍경들이 내 삶을 껴안아줬을 적 육지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이 할머니를 뵙는 일이었다.

2023년 1월 내가 느꼈던 제주는 마치 엄마의 품과 같았고, 더 나아가 아낌없이 사랑을 주시는 할머니의 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삶을 사셨을까. 할머니는 무엇때문에 그토록 예수 그리스도를 외치며 사셨을까. 자식들에게 핍박받음에도 어째서 예수의 생을 토로하셨을까. 아직 얕은 깊이의 내 삶으론 이해하지 못 한다.

어렸을 때는 사촌언니, 오빠들이 너무 좋았지만 한 편으로는 또 너무 미웠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의 품을 더 느꼈고 더 많은 추억을 가진 것에 질투가 났다.


기차를 타고 마산으로 가는 길이다. 서울에서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내려갈수록 비가 많이 온다.

또 서울에서는 실감 나지 않았는데,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점점 가까워지는 지금은 온 몸이 터질듯이 고통스럽다. 마주하기 싫지만 마주해야겠지.

한 생명의 죽음은 또다른 죽음을 연상하게 한다. 남겨진 가족들, 그들과의 추억을 더 많이 쌓아야겠다, 함께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표현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또, 오는 길에 서울역에서 지팡이를 쥔 할아버지를 봤다.

셔츠가 땀에 다 젖어 투명해졌고, 머리카락은 땀으로 젖어 뭉쳐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과연 누가 지나칠 수 있을까싶지만, 조금 고민하다 지체없이 물과 양갱을 사다드렸다.

종이백에 담아서. 동정의 시선으로 느껴지지 않으셨길. 건강하시길.


'아니요, 안 받아요, 맨날 뭘 받기만 해서 어째..'

라고 하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난 할머니와 손 잡았던 그때의 감촉이 아직 생생한데.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어느정도 ‘예상’은 한 이런 죽음에도 이토록 슬픈데, 갑작스레 맞이하는 죽음은 대체 어떻게 마주하는 걸까.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요한복음 11:25-26


우리가 주 안에서 죽은 자들과 함께 다시 만나니라 - 데살로니가전서 4:17


하나님. 우리 할머니 잘 부탁드려요.

아픔 없는 곳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편히 뛰어놀며 쉬시도록 도와주세요.

나의 믿음의 뿌리이자 인생의 한 기둥이었던 할머니.




난 아직 슬픔의 총량(總量)을 다 겪지 못 했다.

어쩔 수 없이 일상으로의 복귀는 했지만, 하루 하루가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아파오는 몸과 마음을 마주하는 중이다.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매거진을 작성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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