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흰나비가 되어 내게 왔다

2. 그녀는 천국을 맞이했을까

by 고은

장례식 상주로 자리를 지키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우리 할머니, 정말 잘 사셨구나.”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조문객이 끝도 없이 오셨다.
자식이 많은 것도 한몫하겠다만,
이렇게 많은 조문객이 오는 장례식은 태어나 처음 봤고, 아마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 같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조용히, 묵묵히 헌신해 오신 삶이 그 조용한 발걸음마다 묻어 있었다. 나는 수십 명의 손주들 중 막내 손녀이기에, 내 기억 속 할머니는 늘 할머니로만(?) 존재하셨다.


그런데 할머니를 아시는 분들, 그리고 교회 분들이 오셔서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 이랬다.

“할머니께선 정말 예수님의 시선으로 사신 분이에요.”

동네의 아픈 노인을 기꺼이 집으로 모셔 돌봐주시고, 독거노인을 위해 꾸준히 봉사하셨으며, 그저 봉사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까지 바라보며 해결하려 애쓰시고, 그 일에 대해 오래, 아마 평생도록 기도하셨던 분이라고.


나는 가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구조적 문제를 고민하며 여러 도전을 시도해 봤다.
그럴 때마다 늘 벽에 부딪혔다. 가장 큰 벽은 주변의 시선이었다.

“너 그걸 해서 얻는 게 뭐야?”,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

나는 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내릴 수 없었고, 딱히 해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말들에 내가 종종 위축됐다.

나의 가치관을 실천하는 일 앞에서 손익을 따지게 되고, 아, 어쩌면 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척’을 하는 건 아닐까, 정말 내가 착한 ‘척’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반성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질문은 유효하다.


그런데 장례식 내내 조문객들을 통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할머니의 삶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할머니도 같은 상황을 수도 없이 마주 하셨겠지.
하물며 할머니는, 드러내지 않고 평생 선을 행하신 분인데. 그녀는 그 순간들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어떻게 반응하셨을까.


“내 길을 아시는 주님을 믿고,

묵묵히 주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셨겠구나.”
그 믿음 하나로. 나는 그분의 삶을 들으며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변함없는 계획을 믿으며 오늘을 살면 되는 거구나.


나는 불의를 지나치지 못하고, 누군가의 고통을 감지하면 가만히 있지 못한다.
이 모든 게, 어쩌면 할머니의 삶을 보며 체득한 감각이 아닐까 싶다.


한평생 남을 돌보며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해 오신 할머니. 자식, 손주, 자부, 사위 수십 명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기도로 힘을 다하셨던 분.

할머니의 바람 때문인지 나를 포함한 손녀 둘이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가족들도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삶의 기준을 세워주신 분, 그분이 바로 우리 할머니셨다.

할머니, 고모부, 큰아빠들은 고모들을 못 이겼는지 결국 기독교장례식으로 진행했네요.
천국 환송 예배 때는 쓰러지실 정도로 오열하셨어요.
할머니, 다 보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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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선산에 할머니를 모시며 참 많은 생각이 오갔다.


가장 정확한 감정으로 말하자면, 아, 너무, 뼈저리게 외로웠다.

나는 원래 부모님께 기대는 성격이 아니다. 사소한 고민조차 말하지 않고, 사실 기댈 수 있는 성격도, 그럴만한 환경도 아니었다. 자폐 동생도 챙겨야 했고, 막내 손녀로서 분위기를 살피는 역할도 해야 했다.

그 와중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장례 절차도 참 열심히 도왔다.

그런 나를, 유일하게 세상에서 가장 깊이 이해해 주던 분이 할머니셨다.

그분이 계시지 않다는 사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공허감이었다.


장지에서, 제대로 식사도 못 하고 몸조차 가누기 힘든 상태로
나는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가 조용히 땅바닥에 앉았다.


그때, 저 멀리 흰나비 한 마리가 훨훨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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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 중앙에 흰나비가 있다.


할머니일까. 혹시 할머니가 나를 지켜보고 계신 건 아닐까.
마음을 붙잡아 보았지만 외로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사촌 언니·오빠들과 저 멀리 강가를 걷는데
또 흰나비가 눈에 들어왔다.


“할미다, 할미!” 하며 장난스레 웃었는데
바로 그 순간,

그 흰나비가

내 오른 신 위에 가만히 앉았다.


몇십 초간, 아무 움직임도 없이.

그리고 이 강가는, 내가 어릴 적- 할머니와 손 잡고 걸은 기억이 있는 강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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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정말 거셌는데, 바람에 약한 흰나비가 신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귀로 들은 건 아니지만 분명하게 들렸다.


고은아, 내가 있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 외로워 말아라.
너 혼자 아니야. 나는 너를 보고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잠시 울음을 멈췄다.

그리고 조용히 되뇌었다. “그래, 나 혼자 아니구나.”


그 흰나비는 조용히 내 오른 신 위에 내려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도 없고 소리도 없던 그 몇십 초, 나는 들리지 않는 음성을 또렷이 느꼈다.


고은아, 내가 여기 있다. 너를 지켜보고 있다.

외로워하지 마라. 너는 혼자가 아니다.

그 순간, 가슴속에서 꼬여 있던 울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할머니는 몸은 떠나셨지만, 사랑은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나는 흘러내리던 눈물을 닦고 속으로 대답했다.

“할머니, 저 한 번 잘 버텨볼게요.

모든 걸 사랑으로 품어볼게요, 할머니가 그러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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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은,

22년 전쯤일 거다.
내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


아마, 할아버지 산소에

벌초하러 간 날이었을 거다.


그저 카메라 앞에 세워져 찍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오른쪽 사진은, 2025년.
이번엔 할머니를 보내드리러 같은 자리에 왔다.
할아버지를 따라, 할머니도..



같은 배경. 같은 산.
굽이굽이 겹친 산등성이가
이제 두 분 다 지켜주겠다고,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서 있다.
늘 그 자리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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