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동생을 지켜보며 깨달은 진정한 정의
동생을 통해 저는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이 특별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살아왔습니다. 예를 들자면, 지하철을 타는 법, 버스를 타는 법, 버스카드를 찍는 법, 물을 마시는 법, 엘리베이터를 타는 법, 컴퓨터를 조작하는 법, 사람들을 대하는 법, 큰 소리로 말하는 법 등.. 매우 일상적이고 사소한 부분들에서 세심한 교육이 필요하죠.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저는 늘 궁금했습니다. “우리 동생에게만 왜 이렇게 ‘법’이 많을까.”. 하지만 이 ‘법’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습득하고 체득해야 하는 것들임을 깨닫게 되었죠,
틀린 게 아니라, 성장 속도가 조금 더딘 것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억울해하지 않고, 동생에게 하나하나 천천히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동생보다 고작 3년 더 살았지만요, 제 삶에 이렇게 나이대에 맞지 않는 ‘고난’이 유달리 많았던 것도(이 부분은 브런치스토리에 차차 풀어낼 예정입니다.)
아픔을 통해 깨달은 것이 많은 것도 모두 ‘동생’에게 더 많은 삶의 이미지와 지혜를 알려주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렇기에 앞으로 제 인생에 닥칠 고난들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으로 이겨내며 제 동생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니까요.
신체 장애인들의 일자리지원사업은 많지만,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일자리는 부족합니다.
‘자폐증’이던 정신지체 장애인이던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다가가 그들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이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동생이 자신의 지식과 기억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동생은 단순히 자폐증을 가진 사람이 아닌, 사회에 기여하는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무지가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식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전에 일적으로 만났던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동생에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절대 동정을 바란 이야기가 아닌,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
‘아이고, 불쌍하다. 평생 집에만 있어야 하겠네’
어라, 왜 집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이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어와서 익숙합니다. "누나가 평생 책임져야겠네.", "부모님이 욕본다" 등.. 입에도 담을 수 없는 말들도 가득합니다. 그런데요, 자폐증은 단순히 치료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해와 수용의 대상입니다. 그들의 삶은 장애를 넘어서는 귀중하고 독특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현대사회, 독특함을 굉장히 중시하잖아요. 넘볼 수 없는 특별함을 가진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잖아요.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상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 걸음 더 다가가 그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들의 가능성을 지지하는 것이 아닐까요.
동생을 통해 저는 자폐증을 ‘문제’로 바라보는 대신, 하나의 다른 ‘세계’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제게 늘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줍니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장애를 가진 자들의 옳고 그름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른 것이 왜 하나의 문제로 치부되는가? 내게 무례를 범한 사람들도 그들의 상처가 깊어 보이는데,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그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까? 말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등..
자폐증은 어렵고 복잡한 주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동생과 함께하며 배운 한 가지는, 자폐증은 결코 한 마디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다채로운 색깔로 구성된 또 다른 세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계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작은 변화의 힘을 믿는 저는 앞으로 ‘장애인’들의 인식 개선과 더 나은 삶을 위해 힘차게 나아가겠습니다. 양 옆이 틀어 막혔다면 위로 올라가겠다는 굳센 다짐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