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의 맛

난 명료한 답이 존재하는 세계가 좋다

by D군

오랜 시간 날카롭게 단련된 내 추리력이 말했다. 범인을 맞힐 수 있겠다고.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 건 아니었다. 그냥 머릿속에서 무언가 간질간질했다. 앞 페이지 뒤 페이지 종횡무진 왕복하며 닥치는 대로 단서를 찾았다. 하이라이트 기능으로 중요하다 싶은 문장엔 형광펜 칠을 했다. 단서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가설을 검토했다. 오랜 시간 책을 붙들고 있었던 끝에, 범인을 한 사람으로 좁힐 수 있었다. 그래, 범인은 그 사람이야. 자신만만하게 해답 편으로 넘어갔다. 작가의 트릭을 간파했다는 오만한 마음가짐으로 읽었다. 틀렸다. 내가 생각한 사람은 범인이 아니었다. 순간 불쾌했다. 마음속 심술쟁이가 튀어나왔다. 작가의 논리에 문제 있는 거 아니냐고 심술쟁이가 말했다. 이번엔 트집을 잡으려고 앞 페이지 뒤 페이지 종횡무진 왕복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내가 단서를 놓쳤다.


범인의 정체를 알고 다시 읽으니 눈치채지 못했던 복선들이 보였다. 내가 단서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 대다수는 가짜 단서였다. 나는 생선처럼 미끼를 덥석 물었고, 작가의 그물 안에서 펄떡이고 있었다. 이 정도로 완벽하게 속았으니 심술쟁이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추리 소설을 작가와 독자 간의 게임이라고 한다면, 이 게임은 말할 것도 없이 나의 패배였다.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범인의 행적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독서의 여운은 길었다. 더 이상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추리 소설 한 권을 제대로 즐겼기 때문에 상쾌한 기분이었다. 소설을 읽는 재미도 즐겼고, 스스로 추리하며 퍼즐을 푸는 재미도 즐겼고, 작가에게 완전히 속아 반전의 재미도 즐겼다. 어느새 전자책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검색했다.


내가 추리 소설에 빠진 건 순전히 만화 ⟪명탐정 코난⟫ 덕이다. 그 만화는 어린이를 주요 독자층으로 삼은 만큼 판타지 설정이 꽤 있다. 독약을 먹고 어린이로 변했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추리물로서 미덕은 충분히 갖췄다. 단서가 공평하게 제공된다. 추리 과정은 합리적이다. 진상은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납득 할 수 있다. 나름대로 추리를 하며 코난을 읽었다. 때론 범인을 맞혀 기뻤고, 때론 틀려 아쉬웠다. 그러다 조금 더 무거운 분위기인 ⟪소년 탐정 김전일⟫을 읽었다. 김전일을 다 읽자 소설로 넘어갔다. 엘러리 퀸, 애거서 크리스티, 요코미조 세이시 등 유명 추리 작가들의 책을 게걸스럽게 읽어댔다. 군대에 있을 때도 소설을 읽을 땐 항상 추리 소설만 읽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사건을 명탐정이 논리적으로 해설한다.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그 맛이 어지간히도 좋았다.


현실에선 명쾌한 답을 얻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내가 생각한 선택지 중 답이 없을 때도 있다. 같은 답인데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때도 있다. 하지만 추리 소설엔 확실한 답이 있다. 그 답은 대개 누가 읽어도 납득할 수 있다. 헷갈릴 여지없이 명료하다. 칼로 자른 듯 확실한 답이다. 이게 바로 추리 소설 특유의 '맛'이다. 난 그 맛이 너무 좋다. 추리 소설의 묘미는 또 있다. 소설 속 명탐정들을 동경하다 어느새 그들처럼 된다는 점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사소한 일상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그 답을 찾게 된다. 그냥 지나칠 법한 작은 일그러짐도 놓치지 않는다. 대개 별일 없지만, 간혹 이런 의문이 커다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한 번 재미를 붙이면 ‘관찰-추리-검증’은 습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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