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멍의 온도
장작불 앞에 앉았지만, 먼저 따뜻해진 건 마음이었다.
오포 친구 채완이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동네 친구들과 불멍을 하자며 나를 초대했다. 내가 불멍을 좋아한다는 걸 아는 채완이였기에 망설임 없이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채완이는 "일찍 와"라고 했지만, 나는 조금 망설여졌다. 오십 년을 함께한 그들만의 시간 속으로 들어선다는 게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사 거의 끝날 무렵, 불멍하러 갈게"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곧 "어여 와"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심스러웠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다. 초대를 받은 만큼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다. 고향에서 올라온 빨간 생선을 정성껏 쪄서 와인 두 병과 함께 들고 갔다.
마당에는 이미 나무불이 피워져 있었고, 은박지에 싼 고구마가 조용히 익어가고 있었다. 가래떡과 밤,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상 위에는 김치와 직접 주워 만든 도토리묵까지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친구의 남편은 잘 마른 장작을 불 속에 천천히 넣었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이들의 우정도 이렇게 오래도록 이어져 왔겠구나 싶었다.
불멍이 좋은 건 이럴 때다. 말이 없어도 자연스럽고, 불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는 어색함도 불 앞에 앉는 순간 사라졌다.
오십 년 넘게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골목길 구석구석의 기억과 학창 시절의 소소한 장면들이 불꽃처럼 튀어 올랐다. 나를 위해 친구들은 이야기마다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주었고, 나는 그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불을 가운데 두고 앉으니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씩 들여다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불을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친구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내가 가져간 생선을 한 입 드신 친구들이 "이거 정말 맛있다"며 연신 칭찬을 했다. 내 마음을 기꺼이 받아주는 게 참 좋았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돌아갈 즈음, 친구들은 꽃게와 채완이가 직접 만든 도토리묵, 잡채를 조금씩 챙겨주었다. 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던 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웃던 시간들. 불멍하듯 마음이 천천히 풀어졌다.
그날 밤 나는 감사와 겸손을 배웠다.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 속으로 초대받았다는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오십 년을 함께한 우정의 깊이 앞에서 느낀 겸손함.
불멍의 온도는 장작불의 온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우는 마음의 온도였다. 조심스러웠던 내가 용기를 낸 덕분에, 나는 따뜻한 환대를 경험했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감사와 겸손을 얻었다.
그 밤은 불보다 사람이 먼저 마음을 데워주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