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여성들은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밖의 일은 남성의 몫이었고,
그들의 세계는 담장 안에서 완성되었다.
우리 조선의 삼부종사처럼, 여자의 삶은 누군가를 따르는 일로 설명되던 시절이 있었다.
질서는 단단했고, 그 안에서 개인은 조용히 자자리지키며 자신의 역할에만충실했다.
그림 한 점 앞에 선다.
John William Godward의 〈The Favourite〉.
대리석 벤치 위, 한 여인이 앉아 있다.
햇빛은 따뜻하고, 공기는 고요하다.
얇은 옷자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그녀의 손끝에서는 작은 고양이가 실오라기를 쫓는다.
우리가 SNS에 올리는 사진처럼, 가장 아름다운 한 순간을 담은 그림이다.
햇살 좋은 오후, 사랑스러운 고양이, 평온한 표정. 누구나 '좋아요'를 누를 것 같은 장면.
한 장의 그림 바깥세상에 어떤 삶이 있는지를 우리는 모른다.
제목은 '총애를 받는 여인'이다.
총애. 사랑받는 자리.
그녀는 아름답고 안정되어 보인다.
흔들림 없이,
그러나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 평온은 어디서 온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누군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삶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고 파문이 없고
갈등도 드러나지 않는 삶.
하지만 고요함이 곧 자유를 의미하는 것일까?.
순응인지.
평화인지.
길들여진 것인지
선택한 것인지.
그림 밖에서는 알 수 없다.
조용히 있는 것,
자리를 지키는 것,
파문을 일으키지 않는 것.
그림 속 여인이 그 자리에서 행복했는지는 모른다.
61세에 자살했다는 작가.
"나 자신이나 피카소에게 세상은 너무좁다"라는 유언을 남긴 작가
그가 그린 여인들에게 눈길이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