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프리네는 무죄를 받았다.
그날 법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논리라기보다
아름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예쁘면 무죄라는 인식이
지금 우리의 선택에도
조용히 스며들어 있는 건 아닐까.
서울 강남구에 가보면
유난히 많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성형외과, 피부과, 리프팅, 윤곽, 주사…
건물 하나에 몇 개씩 붙어 있는 간판들.
처음엔 그냥
“아, 여기가 그런 동네구나.”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 많은 간판은
단순히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 것 같다.
혹시 우리는
예쁘면 조금 더 유리하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 거리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건 아닐까.
요즘은 취업 사진도,
프로필 사진도,
SNS도 모두 얼굴이 먼저다.
말보다 이미지가 앞서고,
능력보다 인상이 먼저 소비된다.
예쁘면 조금 더 관대해지고,
조금 더 기회가 많아지고,
조금 더 빨리 용서받는다는 믿음.
그 믿음이 쌓이면
외모는 취향이 아니라 전략이 된다.
나는 성형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피부과에 가는 마음도 이해한다.
나 역시 거울을 보며
조금이라도 생기 있어 보이고 싶으니까.
다만 궁금해진다.
이 선택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덜 불리해지기 위한 것’인지.
프리네의 재판이
아주 먼 옛날 이야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더 세련된 법정 안에 서 있는 건 아닐까.
배심원은 세상이 되고,
판결은 댓글이 되고,
증거는 얼굴이 되는 자리.
예쁘면 용서가 되는 세상보다
조금 덜 흔들리는 세상이면 좋겠다.
아름다움이 빛이 될 수는 있어도
판단의 기준까지 대신하지는 않는 세상.
그리고 나부터
조금 천천히 보려고 한다.
얼굴보다 말투를,
인상보다 시간을.
혹시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예쁘면 무죄’의 판결을
내리고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돌아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