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보름,땅콩 네봉지

by 신은정


오랜만에 야탑 친구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수영 중이라 받지 못하고 다시 걸었더니,

"정아, 집으로 밥 묵으러 와."

"응, 알겠어."

"대답이 왜 캐 늦어."

그 말 한마디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센터 위 한샘 야채가게에 들러 과일이라도 살까 하다가 땅콩을 보았다.

어제가 보름이었는데 부럼도 못 깨고, 보름밥도 챙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네 명이 모일 것 같아 땅콩을 네 봉지 담았다.

하나씩 나누어 먹으려고.


친구 집으로 가는 길, 괜히 주차 걱정이 앞섰다.

예전에 한 번 곤란했던 기억 때문인지, 친구 집에 가는 길은 늘 조금 망설여진다.

셋에게 전화를 해도 아무도 받지 않는다.

다들 무음일까.

다시 한 번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서야

"학교 앞에 두고 와"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


집에는 친구의 베프, 시골 친구 숙경 씨가 와 있었다.

노래자랑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실력자라던 그분.

요리도, 시골 일도 눈 하나 깜짝 않고 해낸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많이 들었기에

처음 보지만 낯설지 않았다.


복희 언니가 만들었다는 떡볶이.

치즈를 녹여 만든 국물이 묘하게 매력 있다.

우리에게 한 그릇씩 떠주고는, 앞집에도 한 그릇 퍼서 나누는 친구.

친구는 정이 많은 아이다.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친구가 묻는다.

"정아, 찰밥 줄까?"

"응, 나 찰밥 좋아해."

그때 혜심 언니가,

"나도 찰밥 조금만 줘."

친구가 웃으며 말한다.

"주려고 준비하고 있어."

"은정이만 줄까 봐?"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자주 만나는 그들 사이에서

나는 집이 멀다는 이유로

가끔 불려가는 사람이다.

자리를 내어주고, 한 번씩 불러주는 마음이 고맙다.


노래교실로 맺어진 모임이라 노래는 빠질 수 없다.

혜심 언니가 숙경 씨 노래 안 들어볼 수 없다며 노래방을 제안한다.

우리가 가던 코인노래방으로 고고.


숙경 씨는 노래를 구수하게, 정말 잘 부른다.

음반을 내도 될 만큼의 재능.

시골 살기 아깝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송가인 노래를 즐겨 불렀다.

트로트를 아주 잘 부른다.

노래를 '가지고 논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코인노래방이 순식간에 리사이틀장이 된다.

숙경 씨의 리사이틀이 끝나고

한 곡씩 하라는데

괜히 기가 죽어 선뜻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용기 내어

'비상'과 '너에게로 또다시'를 불렀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사고 이후라서인지

저녁 늦은 시간까지 마음이 쉽게 따라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식사와 노래방까지 함께했다.


오랜만에 저녁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웃고, 나누고, 한 곡 부르고.

늦은 보름이었지만

땅콩 네 봉지와 친구의 보름밥과

함께한 이들의 웃음이 내 마음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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