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사이코》를 보고 나서 한동안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
잔혹한 주인공보다, 거리에서 돈의 유혹에 흔들리는 여성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악은 가해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약한 자리를 만들어 놓는 구조 안에도, 그것은 존재했다.
그때 얼마 전 본 《뉴 노멀》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휠체어에 앉은 어른을 조용히 배려하는 가수 정동원의 손길.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장면 앞에서 멈췄다.
잘못이 없는데, 선한 행동이 낯설게 느껴지는 내 감각이 오히려 낯설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이가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조차 꺼린다고 한다.
경계가 먼저인 세상.
선한 마음을 함부로 드러낼 수 없게 된 것이, 어느새 당연해졌다.
그 변화가 두렵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무작위로 찾아올 수 있는 일이다.
심리학자 밀그램의 실험.
평범한 사람들의 65%가 권위자의 명령 하나에, 타인에게 최고 전압의 전기충격을 가했다.
괴물이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악은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답은 없다.
악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드러나기도 하고,
평범한 선택 속에서 조금씩 자라나기도 한다.
AI가 인간의 자리를 대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지는 세상.
하지만 진짜 두려움은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기술이 아니라, 함부로 선을 베풀지 못하게 된 우리 자신.
AI는 흉내 낼 수 없다.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마음을,
무너지는 사람 곁에 조용히 머무는 온기를.
오늘 하루, 마음 한켠에서 조용히 선을 택하는 나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에도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작고, 가장 소중한 일 아닐까.
그래도 나는, 선한 마음을 주고받는 따뜻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