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을 사랑하는 사람들

by 신은정


압구정동 코리아나박물관이 있는 건물 2층, 유상옥 회장님이 내어주신 강의실에 우리가 모인다. 박물관을 연구하는 모임, 박연회다.

2년 동안 우리와 함께하셨던 강순형 선생님이 자리를 내어주셨다. 중앙박물관장을 오래 지내신 분으로, 영혼이 맑은 도인 같은 분이셨다. 여행을 가면 직접 차를 우려 나눠주시던 분.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품격이 있는 분이셨다. 그 빈자리가 작지 않았다.


새로 모시게 된 강사님은 국립경주박물관장, 국립춘천박물관장을 지내시고 동양미술사학회장까지 역임하신 최선주 강사님이었다.

첫 강의부터 달랐다.

수업 중에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렸다. 강의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런데 강사님은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오히려 그 벨소리를 자연스럽게 강의 속으로 끌어들이셨다.

"그때가 바로 핸드폰이 불통같이 울려 저를 찾던 시절이었습니다."

웃음이 터졌다. 민망함이 순식간에 유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강의는 2년 동안 강순형 선생님께 들어왔던 이야기들이 가랑비에 옷 젖듯 나에게도 스며들어 있었나 보다. 불교가 시작된 뒤 약 500년 동안 부처의 모습을 직접 만들지 않던 시대 이야기. 석가모니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을 조심했던 그 시대처럼, 어떤 것들은 직접 드러내지 않아도 그 존재가 충분히 느껴지는 법이라는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2년 동안 조각조각 들었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꿰어지는 느낌이었다. 부처의 모습을 만들지 않던 무불상 시대, 화장 후 남긴 사리를 모시면서 시작된 탑, 그리고 마침내 탄생한 불상,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담아낸 팔상도까지. 인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어진 그 긴 흐름이 두 시간 안에 또렷하게 그려졌다.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이 왜 그 자리에 서 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큰 그림을 가진 사람이 하는 강의였다. 오늘 강의실은 회원들로 꽉 찼다.


강의가 끝나고 삼원가든으로 향했다. 올해부터 사용료가 생겼다는 소식에 수업도 조금 늦춰졌던 터였다. 1인당 35,000원짜리를 최소한으로 시켜야 하고, 자리 사용료도 따로 3만 원이라고 했다. 그래도 장사가 잘되나 보다 싶었다. 1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기에 3층으로 올라가 잠시 쉬었다가 내려왔다. 2년을 다닌 곳이라 쉴 만한 자리를 눈여겨 두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꾸물거리다 늦게 내려간 식사 자리. 오늘은 새로 오신 회원과 합석하게 되었다. 늘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앉던 자리였는데, 새로운 분과 인사를 나누며 해물된장찌개와 돌솥밥을 시켰다. 육회비빔밥은 가격이 오른 후로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식사가 나오기 전, 새로 오신 분이 당신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셨다. 연세가 89세라고 하셨다. 정정하셨다. 서울대 행정실에서 정년퇴임하신 분이라고 했다. 갈비탕 한 그릇을 거뜬히 비우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 나이에도 배움의 기쁨을 누리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은정아, 그 어르신에 비하면 너는 청춘이야. 30년은 더 글을 쓸 수 있어."

강의실을 나서던 봄날 같은 길이..

오늘도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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