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맞으며 인사동을 걷는 하루

by 신은정


봄비다.

가볍게 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앞집 할머니가 문을 열어두고 현관을 빗자루질하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뵈어 반갑게 인사를건넸다,

시골에서 파가 올라와 파김치를 담그려 한다며 말을 건네시더니

핸드폰이 갑자기 안 된다며 봐달라고 하신다.

기계치인 나도 잘 모르지만

혹시나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 손에 재활용 버리려고 들고 나온 걸 내려놓고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몇 번을 만지다가 위로 올려보니

핸드폰이 작동하는 듯했다.

다행이다. 도와드릴 수 있어서.


분리수거를 하고 나오는데

봄비지만 날씨는 차다.

이렇게 입고 가면 추울 것 같아

다시 집으로 들어가 외투를 하나 더 겹쳐 입었다.


남편은 아침 일찍부터 스크린 약속이 있는지 나가고

나는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봄비에 우산 받쳐 들고 걸어본다.

우산에 조용히 내려앉는 빗소리는

토닥토닥 나를 위로해준다.

화 목 금 일은 남편이 차를 써야하기에 오늘은 내가 차를 가지고나올까 생각했었는데...


나는 우산에 내려앉는 빗소리를 유독 좋아한다.

철없이 비가 오면 좋아하는 마음은

60이 넘어도 변하지 않는다.

버스정류장에 도작하니

1500-2는 10분 후에야 온다.

앞집 아주머니가 서초동 가신다며

버스를 기다리고 계셔서 인사를 건넨다.

차시간을 보고나오지않았더니 꽤나 오래기다린다며 말씀하시기에 혼자 버스타고 먼저가기에 살짝 죄송한 마음이 든다.


"저는 오는 버스 아무거나 타고 갈게요."하고 먼저오는 일반버스에 올랐디.


비가 와서인지 정류장마다 서지 않고

좌석버스처럼 손님 있는 곳만 들르며 달린다.

오늘은 센터 가서 씻고 물리치료하고

컴퓨터 배우러 갔다가

소영 언니랑 인사동에 나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나가는 인사동이라 설렌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우산꽂이 옆에 내려놓은 내 우산이 없었다.

비가 와서 누군가 들고 간 모양이었다.

남의 우산을 왜 들고갈까?

당장 알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CCTV를 돌려봐달라고 부탁해두고 그냥 나왔다.

나중에 누군가를 위해서는 해야 할 일 같아서.

야채가게 은선 언니가 우산 하나를 챙겨주었다.


조계사에서 내려 걸어갔다.

수도약국 앞, 약속 시간보다 이른 시간이라

인사동 거리를 누리며 다녔다.

오다가 백화점에 주문해 둔 머플러를 찾아

추워서 목에 둘렀다.

오늘 입은 코디랑 색깔이 어울리지 않아도

목에 두른 것이 훨씬 따뜻하다.


스카프 가게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누군가가 목에 두른 스카프가 고급지다.

만져보니 촉감도 색감도 좋다.

"저거 하나 주세요."

하나 남았다며 찾았지만 결국 없었다.

회색 하나를 고르고,

소영 언니는 핑크와 연한 하늘색을 둘러보다가

연한 하늘색이 얼굴을 더 환하게 해주어

그걸로 골랐다.

시간이 남아 돌아보다가 파스텔톤의 예쁜 실내화가 눈에들어와 가게를 들어갔다.

생각보다 가격은 비샀다.

마음에 드는건 한컬레에 48000원

적당한 기본으로 두켤레를 샀다.

약속시간이 다 되었다

약속장소에 가니 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과 만나 굴짬뽕집을 찾아갔지만

수리 중이라 가지덮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선생님은 중앙박물관장도 오래동안 역임하셨고 인사동과 오래 인연이 있는 분이라

이 동네를 훤히 알고 계셨다.

간단한 단품으로 하자며

가성비 좋은 곳을 안내해 주셨다.

문을 들어서기 전

"여기는 가지덮밥만 시켜요."

들어가자마자 가지덮밥 세 개를 주문했다.

먼저 나온 것은 미나리 새우전.

"서비스입니다."

주인이 선생님을 알아보고 내어준 것이었다.

가지솥밥은 가지가 듬뿍 들어 있었고

반찬도 맛깔났다.

다시 와도 좋을 집,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은 숨은 맛집이었다.

내가 얼른 결제를 했더니

소영 언니가 나무란다.

스카프도, 식사도…

차는 언니가 사겠다며 좋은 데로 가자고 한다.

선생님은 차에도 조예가 깊으시다.

매년 4월이면 하동으로 내려가

직접 차를 만드신다.

그래서인지 차를 마시는 시간도 참 좋아하신다.

선생님을 따라 들어간 곳은

차를 도매로도 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었다.

마음에 드는 찻잔을 하나씩 고르라고 하신다.

나는 투박하고 조금 큰 잔을 골랐더니

"이런 것 말고…" 하시며

잔 안쪽에 글씨가 있는 잔을 권해주신다.

그 잔이 이상하게도 나와 닮아 있었다.

소영 언니 잔은 또 언니답다.


앉자마자 음악을 바꾸신다며

핸드폰을 만지신다.

라틴 음악, 살사 리듬.

웅장한 스피커를 통해 흐르는 음악은

나도 모르게 흥을 끌어올린다.

주인은 유머스럽고

아는 것이 많아 대화가 깊어진다.

"아들들은 120세 인생을 설계하고 살죠.

우리는 100세 인생을 설계해야죠."

차를 마시는 두 시간 동안

대화는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나누기에는

꽤 깊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신기했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차도 골랐다.

어떤 얼굴이 떠올랐다.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이상하게 마음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충만했다.

오늘 같은 날이 있어서,

살아가는 일이 가끔은 참 좋다.

작가의 이전글고니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