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이 멈춘자리에서

by 신은정

2025년 2월, 차가운 겨울바람과 함께 예기치 못한 사고가 찾아왔다. 35년을 쉼 없이 달려온 한 주부의 일상은 그날로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용인 세브란스 병원에서 고관절 치환술이라는 큰 수술을 마치고, 작은 정형외과 입원실로 옮겨 한 달을 보냈다. 병실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지낼 수도 있었지만, 나는 보조기에 의지해서라도 한 발씩 내딛기를 선택했다.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들어올 때는 앰뷸런스였지만, 나갈 때는 반드시 내 두 발로 걷겠다.'


한 달, 가장 길고 무거운 시간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사고 후 한 달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무거운 시간이었다. 육체의 통증보다 더 힘들었던 건 공황장애처럼 밀려오는 불안이었다. 통증 주사를 맞아야 잠들 수 있었고, 신경과 약을 먹어야 밤을 넘길 수 있었다. 기억이 깜빡거리거나 말이 마음대로 나오지 않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답답한 가슴을 쳤다.


한 달쯤 지났을 때, 병원을 옮겨야 했다. 시설이 좋기로 유명한 양평의 교통재활병원을 고려했지만, 그곳은 간병인 외에는 가족 면회가 엄격히 제한된 곳이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위태로웠던 내게, 가족과의 분리는 치료가 아니라 또 하나의 고립처럼 느껴졌다.


"그곳에 가면 당신 마음이 먼저 무너질 것 같아."


남편의 그 한마디에 선택을 바꿨다. 시설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집에서 가깝고,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한방병원으로 향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내게는 '어디서 치료받느냐'보다 '누구 곁에서 회복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했다.


병원을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창밖으로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잇몸이 들떠 치과 치료를 병행해야 할 만큼 몸은 만신창이였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트였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해외 한 달 살기를 마치자마자 병실로 달려온 소영 언니, 정성껏 반찬을 챙겨주던 마야 언니, 병원 생활 힘내라며 간식을 들고 와 주변 환자들까지 살피던 영이 언니.


이름을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케이크를 들고 친구도 있었고 세종에서, 대구에서, 경주에서 "잠깐 얼굴만 보자"며 길을 나선 친구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오래 머물지 못하고 문 앞에서 돌아갔다.


시골에서 손수 만든 미역장아찌를 몇 번이나 보내준 한 친구는 흰 봉투에 33만 원을 넣어 보냈다. 놀라 전화를 하자, 불교 신자인 그 친구는 담담하게 말했다.

"33인의 제자 이야기 알지? 기적의 숫자야."

고마운 마음에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려 주소를 물었지만, 친구는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그 사랑을 내가 다 받아도 되는 걸까, 문득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사주에 인복이 많다는 말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조용히 믿고 싶어졌다.


멈춘 줄 알았던 그 자리는, 사실 시작점이었다. 병원 복도에서 보조기를 생명줄처럼 붙잡고 한 걸음을 떼던 시간, 침대 위에서 할 수 있는 운동부터 시작해 책을 쌓아 올려 근육을 키우며 버텼던 날들.


그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인데도, 아주 오래전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때는 몰랐다.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헬스장에서 기구를 들고,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오늘의 내가 그 시간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삶이 완전히 멈춰버린 것 같은 그 순간에도 우리는 다시 시작할 지도를 그릴 수 있다는것을

나는 그 시린 겨울과 찬란한 봄 사이에서 그 법을 배웠다.


지금 혹시 멈춰 서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당신의 지도 역시, 당신 곁의 온기로부터 다시 그려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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