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내 손안에 내려앉던 날
병원 생활은 생각보다 단조롭고 답답했다. 외출도 못 하고 매일 같은 창밖만 바라봤다. 병원 근처 탄천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렇게 걸을 거야'라고 다짐했지만, 현실의 나는 보조기 없이는 화장실도 가기 힘든 상태였다.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뒤부터는 재활에 온 힘을 쏟았다. '운동 제일 많이 하는 환자'라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계단이 없으면 두꺼운 책을 발판 삼아 발뒤꿈치를 들어 올렸다. 하루 100번씩 3세트. 종아리가 떨리고 수술 부위가 욱신거렸지만 단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300번이 400번이 되고, 숫자가 늘어갈수록 희망도 조금씩 커졌다.
드디어 보조기를 떼고 누군가 손만 잡아주면 걸을 수 있게 된 날, 창밖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날 친한 언니가 깜짝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병실에 갇힌 나를 위해 도시락을 준비해서 '벚꽃 보러 가자'고 하더라고. 언니는 늘 이런 작은 이벤트를 선물하는 사람이다. 사고 후 긴 여행을 다녀온 언니는 병원에 올 때마다 내가 좋아할 만한 간식을 챙겨왔다. 내 마음의 빈틈까지 세심하게 채워주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다.
벚꽃이 팝콘처럼 터진 탄천 길 위에서, 나는 언니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디뎠다.
발바닥에 닿는 땅의 단단한 느낌
뺨을 스치는 보드라운 봄바람
코끝을 간질이는 달콤한 벚꽃 향기
보조기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온전히 느끼는 봄은 눈물 날 만큼 아름다웠다.
"은정아, 이제 혼자서도 걸을 수 있겠는데?"
언니의 말에 슬쩍 손을 놓아봤다. 벚꽃이 눈처럼 쏟아질 때 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떠올라 손을 뻗었다. 톡, 하고 첫 번째 꽃잎이 내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확신했다. 내 소원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벚꽃나무 아래 혼자 서 있던 그 순간, 깨달았다. 내 다리를 다시 움직이게 한 건 의사 선생님의 치료만이 아니라, 다시 걷겠다는 '나 자신의 믿음'이었다는 걸.
아직 절뚝거리지 않고 균형 있게 걷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더 중요한 루틴이 생겼다. 병원 치료를 성실히 받고, 내 속도를 지키며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소풍 가듯 내 일상에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주는 것.
그게 나를 다시 걷게 하고, 다시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걸 그해 봄날에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