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을 다시 읽는다.
읽을 때마다 머무는 문장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이해하려 읽었고,
두 번째는 인물을 따라갔고,
세 번째 읽는 지금은 자꾸 나 자신 앞에 멈추게 된다.
‘남이 정해준 선한 나로는 살 수 없다는 자각.’
이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왜 나는 이 생각이 이제야 이렇게 분명해졌을까.
막연히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확신은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다.
해야 할 역할이 있었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고,
착하게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던 시절이 오래였다.
그래서 이 자각이 예순 무렵에야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안다. 늦은 것이 아니라,
비로소 나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걸. 싱클레어는 어릴 때 그 문 앞에 섰고,
나는 오래 돌아 이제야 그 앞에 서 있다.
책은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변했으니 머무는 문장도 달라진다.
그래서 『데미안』은 한 번 읽고 끝낼 책이 아니었다.
삶이 달라질 때마다 다시 열어보게 되는 책이었다.
앞으로도 여러 번 읽게 될 것 같다.
그때마다 다른 문장에서 멈추며 그때의 나를 만나게 되겠지.
이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남을 이해하기보다
나를 읽는 시간이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