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소풍의 설렘은 잠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여전히 불편한 몸과 일상의 현실이었다.
두 달 반의 병원 생활 끝에, 나는 제2의 인생을 산다는 의미로 60세 생일날 퇴원 날짜를 잡았다.
퇴원을 앞두고 가까운 재활병원을 찾아 열심히 재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걸음걸이는 아직도 균형을 찾지 못하고 뒤뚱거렸고, 일상생활 곳곳에 작은 어려움들이 숨어 있었다.
바닥에 앉았다 일어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고, 깜빡깜빡하는 정도가 지나쳐서 찾던 건물이 안 보이면 '이사 갔나?' 하고 두리번거리다 보면 반대편에 와 있는 황당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변 언니의 권유로 장애 등급을 신청하기 위해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고 친절하게 장애 등급 신청 절차를 안내해 주셨다. 서류 한 장이면 앞으로의 삶이 조금은 수월해질 터였다.
병원이나 마트 주차장의 가장 가까운 명당자리에 차를 세울 수 있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솔직히 거부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이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슬그머니 장애 등급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병원에서 그러는데 내가 장애 등급 신청이 가능하대. 그러면 주차도 편해지고 여러모로 혜택도 많다는데... 우리 신청해 볼까?"
남편은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보았다. 평생을 함께하며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가 잠시 침묵 끝에 건넨 한마디.
"여보, 그러지 말자. 장애인 주차권 한 장 얻어 편하게 사는 것보다, 열심히 재활해서 당당하게 일어난 멋진 사람으로 사는 게 더 멋지지 않아?"
그 말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느새 나는 나 자신을 '보호받아야 할 환자'라는 틀에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내가 잃어버릴 뻔한 '주체적인 나'를 일깨워 주었다.
장애라는 이름 뒤에 숨어 얻는 편안함보다, 땀 흘려 되찾은 건강이 주는 자유가 훨씬 값지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주차권 대신 운동화를 신기로 했다.
그것은 단순히 몸의 재활을 넘어서, 남은 인생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환갑의 내가 내린 가장 존엄한 선택이었다.
편리함이라는 이름의 안주를 거부하고, 고통스럽지만 빛나는 회복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