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소'

작가를 만나다

by 신은정


짝꿍퇴고하다말고 내가 본그림들을 책에다 적고보니 그 그림에대해 알아보고싶어졌다.

이중섭의 그림 ' 소'.

소는 자기 병을 고치는 약초를 단번에 찾을수있자고 한다.


이중섭은 소가 아픈 몸을 고칠 약초를 단번에 찾아낼 줄 아는 힘을 가졌기에 스스로의 고통을 이겨내는 존재이기에 소를 사랑는지도 모른다.

그는 소에 자신의 삶을 비추어 넣었다.

말과 글마저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 그는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 미친 듯이 소를 관찰하고 그렸다고한다.

타국에 나라를 빼앗긴 슬픔, 억눌린 열망을 그는 소의 눈빛과 몸을 표현했다.

그림 속 소는 곧 우리 민족의 또 다른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본 유학 시절 만나 사랑에 빠진 연인에게 그는 매일같이 마음을 그려 보냈다.

1941년, 1년 동안 80여 장의 엽서를 그려 보냈다.

그의 사랑은 순수했고 요령이 없었고, 그림처럼 뜨거웠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했고 두 아들을 낳았다.


전쟁이 터지자 가족은 제주도로 피난했고, 그 시절 그는 서귀포의 환상을 그렸다. 평온한 그런 곳에서 살고싶었는지도 모른다.

가족과 함께.

그러나 아이들 건강이 악화되자 아내는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중섭만 한국에 남겨졌다. 돌아갈수없는 이유가 일본인이 아니었기때문이었던가?들어갈수없는 이유가있어서 혼자 남게되었던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가진 것이 없어 담뱃갑 속 은박지에도그림을 그렸다.

“화가로 성공하는 길만이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는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영혼을 갈아넣듯 흰 소를 그렸다.


고난과 역경 앞에서 돌진하는 소.

그것은 어쩌면 끝내 가족에게 가 닿지 못한, 그의 초인적인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전시 실패와 사기, 생활고가 그를 무너뜨렸다. 우울증과 피해망상, 영양실조가 그를 괴롭혔다. 1955년 12월, 아내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후 그는 정신병원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다. 겨우 41세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본다.

가족이 곁에 있었다면, 그는 그렇게 일찍 떠나지 않았을까?를.

그에게는 가족이라는 마지막 등불이 절실히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그림은 생전에 환영받지 못했지만,

죽고 나서야 많은 이들의 눈에 닿기 시작했다.

그가 그리던

흰 소,

덤벼드는 소,

달과 아이 등등

한국 미술사의 별이 되어

늦게나마 그를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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