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눈이 내리면, 아버지를 만납니다

5분에세이

by 신은정

아버지라는 그림

전시회에서 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한참을 서 있었다.

거대한 벽면을 가득 채운 발바닥. 흙이 묻고, 삶이 묻어 있는 발바닥. 누군가의 아버지가 평생을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새겨진 발바닥.

문득, 우리 아버지의 발이 떠올랐다.

그 발바닥에는 많은 아버지들의 땀과 눈물과 사랑이 켜켜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핸드폰에 담아두었다.

아버지가 보고 플 때면 이 그림을 찾아보며 아버지를 떠올린다. 겨울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하얀 눈 위에 선명하게 남은 아버지의 발자국을 상상한다. 그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겨울이 되면 유난히 눈을 기다리게 된다.

눈 내리는 날이면 온전히 아버지를 만나고, 온전히 아버지를 느낄 수 있다는 작은 착각을 허락받는 것 같아서다.

아버지를 너무 사랑한다.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는 딸이어서 너무 고맙다.

8년 전, 이맘때였던 것 같다.

부안의 화려하지 않지만 조용한 한옥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내소사라는 절에서 아버지의 49재를 지냈다. 남동생의 지인이셨던 여스님을 모시고 정성을 모아 예쁜 절에서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가족들과의 작은 여행도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서 결정한 일이었다.

그날, 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

나뭇가지가 부러질 만큼 수북이 쌓여 절 전체가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발이 푹푹 빠져 걸을 수 없을 만큼 쌓인 눈이었다.

눈이 멈추고 햇볕이 비치자 절은 한순간 환해졌다.

스님은 그 광경을 오래 바라보시다가 자연의 흐름을 말씀하시며 아버지의 49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는, 확신에 찬 말씀이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스님의 표정이 참 평온했고, 그 말씀을 듣던 우리 가족의 마음도 평온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를 좋은 곳으로 보내드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이 처음으로 편안해졌던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겨울 눈은 더욱 소중하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오롯이 아버지만 생각할 수 있다. 복잡한 감정들이 하얀 눈에 덮여 잠시 잊혀지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만이 선명하게 남는 시간이다.

어제 늦은 밤, 둘째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엄마, 오늘 따라 별이 너무 밝게 보여."

딸의 말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깜깜한 밤하늘에 별들이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문득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나네. 아버지가 가끔 하늘을 보라고 하셨는데..."

그러자 딸이 조용히 말했다.

"할아버지 불러봐. 아빠, 잘 있냐고."

하늘을 보라고 해서 본 건데, 보니까 아빠 생각이 난다고.

그 순간, 마음속 겨울 풍경이 되살아났다, 겨울 나무 사이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내게 겨울 나무와 겨울 눈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이 머물러 있는 풍경이다.

올해도 수북이 쌓인 눈을 다시 만나고 싶다.

8년 전 내소사에서 그랬듯이, 마음 편안하게.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는 딸로 살아온 것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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