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관계의 소음이 멈춘 곳, 근육의 함성이시작되다

by 신은정


관계의 소음이 멈춘 곳, 근육의 함성이 시작되다

수년간 내 집처럼 드나들던 스포츠센터를 떠났던 이유는 몸의 부상 때문이 아니었다. 마음에 남은 생채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함께 커피를 마시고, 계절마다 해외여행을 떠나며 친자매보다 가깝게 지냈던 언니들. 그러나 사소한 오해는 칼날이 되어 돌아왔고, 서운함이 쌓인 그곳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도망치듯 센터를 그만두었다. 남편이 퇴직해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앞세워서.

다른 헬스장을 다니던 중 예상치 못한 사고가 찾아왔다.

2025년 2월, 고관절 치환술.

내 삶의 축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재활을 위해 수영이 절실해지자, 아이러니하게도 발길은 다시 옛 스포츠센터로 향했다. 마침 신규 등록 할인과 추천인에게 5만 원 상품권을 제공하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나는 아는 언니의 이름을 적어 넣고 조용히 등록했다. 오로지 내 회복에만 집중하겠다는, 나 스스로에게 하는 종결 선언에 가까웠다.

다시 찾은 센터의 공기는 익숙하면서도 서먹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 복잡한 시간을 피해 일부러 한적한 시간대에 자유 수영을 시작했다. 물속은 고요했다. 지상에서는 내 체중조차 버겁던 고관절이 부력의 도움을 받아 자유롭게 움직였다.

수영장을 나와 스트레칭 존으로 향했다. 당연했던 동작들은 이제 하나하나 정복해야 할 고지처럼 느껴졌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몸을 풀고 센터 안 트랙을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멈춰 있던 기계들이 하나둘 내 몸의 일부로 돌아왔다. 웨이트 기구의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기 시작했고, 어느덧 센터에서 보내는 시간은 네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운동에 재미가 붙을수록 주변의 소음은 희미해졌다. 예전처럼 삼삼오오 모여 남의 이야기를 전하던 목소리들은 더 이상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가벼운 인사만 남긴 채 이어폰을 깊게 눌러 꼈다.

'함께'하는 즐거움보다 '혼자' 일어서는 힘이 그때의 나에게는 더 절실했기 때문이다.

등록 시 제공되는 무료 PT 3회.

나는 여성 트레이너를 선택했다. 사고 전처럼 강도 높은 PT를 받고 싶은 마음에 50회권 결제의 유혹이 스쳤지만, 꾹 참았다. 이제는 누구의 구령에 맞춰 움직이는 운동이 아니라, 내 몸의 신호에 직접 응답하는 법을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첫 수업 날, 나는 조심스럽게 수술 이력을 밝혔다.

"고관절 치환술을 받은 지 8개월 정도 되었어요. 조심해야 할 동작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내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던 선생님의 말은 예상과 달랐다.

"회원님, 지금 움직임만 보면 고관절 환자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가동 범위나 근력도 일반인과 비교해 손색이 없어요. 이제 환자라는 생각은 내려놓으셔도 될 것 같아요."

그 순간,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짜릿함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흘렸던 눈물, 보조기에 의지해 한 걸음을 떼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시간, 남들의 시선을 피해 혼자 땀 흘렸던 새벽들이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장애인 주차권'이라는 편리한 권리 대신 '운동화'라는 험난한 도전을 선택했던 나의 고집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받는 순간이었다.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하며 되살아나는 뻐근한 감각은 마치 "살아 있다"고 외치는 함성처럼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사고를 당한 피해자도, 관계 속에서 상처받던 약자도 아니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의 한계를 밀어내며 다시 걷고 다시 뛰고 있다.

스포츠센터의 문을 나서는 발걸음은 처음 등록하던 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웠다. 나는 이미 물속에서, 트랙 위에서, 차가운 기계들 사이에서 다시 나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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