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가장 추운날,삼합의 온기

일상의 결 (사는 이야기)

by 신은정



올겨울 가장 추운 날이었다.

소영 언니와 나는 강남에서 부동산을 하는 오빠의 사무실로 삼합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오후 4시쯤 오빠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참석 여부를 알려줘. 4시에 식사를 하려고.' 나는 그걸 '4시에 고기 삶고 5시에 식사'라고 잘못 읽어버렸다. 소영 언니에게 그렇게 알렸더니 4시 30분까지 오겠다고 했다.

이 추운 날 언니는 중앙박물관에서 르네상스 시대 그림을 보러 갔다. 신논현역에 일찍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서둘러 판교역에서 택시를 불렀다. 신논현역까지 직통이라 추운 날씨에 조금이나마 편한 선택이었다.


날씨 예보를 본 사람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두껍게 입었지만, 그냥 봐도 추워 보이는 차림의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다행히 목도리, 귀마개, 장갑을 챙겼지만 하의는 내복을 입었는데도 차갑게 느껴질 만큼 날씨가 매서웠다.

사무실에 먼저 가 있었으면 내 마음이 더 편했을 텐데, 언니는 신논현역에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신논현역에 도착해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 신논현역. 어디야?"

"화장실. 금방 나갈게."

반갑게 만나 지상으로 올라오니 칼바람이 더욱 매섭게 불어왔다.

"으악, 추워!"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집에서 들고 온 증류주와 시골 맛집에서 만든 쌀과자를 챙겨왔지만, 소영 언니가 무언가를 더 사고 싶어 했다.

"오늘은 그냥 가자."

따뜻한 사무실로

사무실에 도착하니 막내 조카 삼촌이 반갑게 맞이했다.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했어요."

나는 몸을 녹이려고 얼른 사무실로 뛰어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어우, 추워" 소리가 나오니, 2층에서 오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가 춥다고 그래!"

가족끼리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공간에 우리를 초대해준 것이 얼마나 큰 배려인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삼합을 먹으려고 준비한 테이블엔 신문지가 가지런히 깔려 있었다. 마늘, 고추가 올려져 있었다.

종이컵을 개인 접시로 사용해야겠다 생각하며 작은 종이컵을 놓으려는 순간, 삼촌이 큰 종이컵도 있다며 알려주었다.

"한 번 쓰기엔 아까운데..."

작은 종이컵을 잡으니 괜찮다고 해서 다시 큰 종이컵을 식탁 위에 여섯 개 두었다.

"한짱님이 한마디 하실 걸요."

아니나 다를까, 한짱님의 한마디에 큰 종이컵이 작은 종이컵으로 바뀌었다.

막내 조카 삼촌이 고기를 삶은 찜통을 들고 나오니 그 안이 궁금해 살짝 뚜껑을 열어봤다.

"지금 열면 안 돼요. 5분 후에 열어야 해요."

셰프처럼 요리를 잘하는 조카 삼촌은 나름 요리에 철학이 있다. 어머니의 솜씨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듯했다. 소영 언니도 내 마음처럼 뚜껑을 열어보려다 제지를 당했다.

삼겹살로 만든 수육은 여섯 덩어리나 되었다. 양이 엄청났다. 눈으로 보아도 내가 삶았다면 세네 덩어리였을 텐데. 언니와 나의 먹음새를 고려한 양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홍어는 삭힌 거 하나, 안 삭힌 거 하나."

총 1킬로를 준비했다. 더 산다는 걸 간신히 말렸다.

난 홍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젓가락에 집은 것은 안 삭힌 쪽, 그다음은 삭힌 쪽이었다.

삼합을 만들어 입속에 넣었다. 김치, 삼겹살 수육 한 점, 삭힌 홍어 한 점이 입속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확실히 삭힌 홍어가 더 맛있었다. 모두들 삭힌 홍어가 맛있다고 입을 모았다.

고기의 부드러움, 홍어의 찌릿한 감칠맛, 김치의 시원함이 한데 어우러지는 맛이었다. 미슐랭 셰프 못지않은 조카 삼촌의 수육 삶은 실력이 한몫했다. 고기 삶는 시간, 온도, 뜸 들이는 시간까지 계산한 수육은 입에서 살살 녹았다.

돼지고기 수육은 네 덩어리만 썰고 두 덩어리는 남겨뒀다. 어느새 수육이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센스 있는 막내 조카 삼촌이 살짝 일어나 수육을 썰고 있었다. 나는 넓은 수육 접시를 들고 가서 담아냈다.

막걸리를 한 잔씩 따라 모두 건배했다. 좋은 일들을 기원하며 잔을 부딪쳤다.


사무실이라 갖춰지지 않은 그릇에 김치통 그대로 놓고 시골스럽게 먹는 홍어 삼합이었지만, 고급스러운 맛집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한 시간이었다.

소영 언니가 말했다.

"가족 모임 같은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아요."

모두들 퇴근하고 우리 셋은 사무실 난로 앞에 앉았다. 불멍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무실 불을 끄고 밖에서 은은하게 들어오는 불빛이 더 근사했다.

속내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언니, 오빠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 후추 사건도, 요즘 자꾸 깜빡깜빡하는 이야기도 부끄러움 없이 꺼낼 수 있었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사무실에 초대해준 오빠의 배려.

정성껏 요리를 준비해준 조카 삼촌의 손길.

가족처럼 편안하게 웃고 떠들 수 있었던 이 시간.

사무실 난로 앞에서 불멍하며 보낸 이 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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