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정해준 나로 살수 없다는 자각

데미안을 읽고

by 신은정

『데미안』을 세 번째 펼쳤습니다. 스무 살, 오십 중반, 그리고 예순의 문턱에서 마주한 이 책은 매번 다른 문장으로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남이 정해준 선한 나로는 살 수 없다는 자각."


왜 하필 지금, 이 문장이 이토록 선명하게 다가오는 걸까요.

'그동안 내가 지켜온 선함은 진정 나의 것이었을까? 아니면 미움받지 않기 위해 정교하게 다듬어진 연기였을까?'

세상이 정해준 '착한 역할' 속에 머무는 것은 안전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유가 깊어질 무렵, 책은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문장을 내밀었습니다.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이 문장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타인의 시선 뒤에 숨어 있던 진짜 '나'가 보낸 간절한 신호였지요. 진정한 나로 살고 싶다는 영혼의 허기가 저를 이 문장 앞으로 이끈 것입니다.

제 블로그 이름을 '에바 부인의 책향기 나는 하루'라고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데미안』 속 에바 부인이 싱클레어의 정신적 이정표가 되어주었듯, 내 삶의 향기를 스스로 빚어내고, 그 온기를 누군가에게 전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진정한 선함은 세상이 요구하는 배역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데 있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에 정직하게 반응하고, 그 울림을 따라 발을 내딛는 용기에 있다는것을요.

고명환 작가는 『데미안』을 백 번 읽었다고 합니다. 내용을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읽을 때마다 달라져 있는 '나'를 확인하고 싶어서였겠지요?

저 역시 저만의 '백 번 읽기' 여정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예순의 문턱에서 다시 쓰는 삶의 기록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책장에도 먼지 쌓인 채 잊힌 책이 있나요? 그렇다면 오늘 한 번 꺼내어 보시길 권합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문장이 당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마음 가는 문장 앞에서 오래 멈춰 서게 된다면, 그 멈춤이 어쩌면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진짜 자신'과의 재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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