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틈 사이로 피어난 미역국 냄새

일상의 결(사는 이야기)

by 신은정


망각의 틈 사이로 피어난 미역국 냄새

어제까지의 기억은 다 어디로 증발한 걸까. 눈을 뜬 아침, 머릿속은 하얀 백지 같았다.

식탁 위에 빵과 우유, 계란과 과일을 차려냈다. 남편은 늦었다며 계란과 우유만 마시고 나가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경신이 생일이야."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미쳤어, 정말..."

자책은 비명처럼 뒤따라왔다. 사랑하는 딸의 생일마저 놓쳐버리다니.

요즘 나는 자꾸만 기억의 조각들을 잃어버린다.

얼마 전엔 '후추 사건'도 있었다. 펄펄 끓인 우족탕에 파를 송송 띄워 식탁 위에 내놓고 소금 간을 마친 뒤, 후추통을 들었는데 갑자기 사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매일 쓰던 물건이 마치 외계의 물건처럼 낯설게 다가오던 그 찰나의 공포.

교통사고 후의 대수술과 장시간의 마취 탓이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새어나가는 기억의 틈을 마주할 때마다 불안은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진다.

그래도 내가 놓친 기억의 조각을 조용히 주워 건네주는 남편이 있다. 그 자상함 덕분에 나는 주방으로 돌아가 딸의 생일 아침을 준비할 수 있었다.

불을 켜고 미역을 씻어 미역국을 끓인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과메기와 납작만두를 꺼내 놓는다.

몇 달간 시험 준비로 몸과 마음을 다 바친 딸아이가 단잠에 빠져 있다. 아이를 깨울 수가 없다. 미역국 끓는 김 위로 내 마음을 실어 보낸다.

'수고했어, 고생 많았어.'

그 말들은 차마 깨울 수 없는 잠결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다.

기억은 가끔 나를 배신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온전히 딸과 함께하고 싶다.

딸이 일어나면 정성껏 차린 아침 상을 내밀 것이다. 미안함과 사랑을 가득 담아서. 그리고 저녁엔 남편과 함께 딸아이가 좋아하는 맛있는 외식을 해야겠다.

경신아, 생일 축하해. 엄마가 순간 잊어버려서 미안해. 혹시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네가 이해해줄 수 있겠니?

작가의 이전글배우고싶은 마음으로 첫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