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전망보다 자판을 선택한 오후

일상의 결 (사는 이야기)

by 신은정


카페 루시아에 들어서자마자 바다가 보이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창밖으로는 제주의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낭만은 거기까지였다. 컴퓨터 화면에 햇빛이 반사되어 글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바다와의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안쪽 자리로 옮겼다.

원고를 쓴다는 건, 때로 이런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보다 선명한 글자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

자리를 잡고, 가주님이 메모해둔 피드백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꼼꼼하게 적힌 메모들이 원고 곳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는 에세이와 어울리지 않아 넣을 수 없다"는 말에 조금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부분을 덜어냈다. 그러자 원고가 조금 허전해 보였다. 빠진 자리가 눈에 밟혔다.

책을 쓴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고, 다시 읽다 보면 무엇이 잘 쓴 내용인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마치 같은 단어를 계속 반복해 읽다 보면 그 의미가 흐릿해지는 것처럼. 3차 퇴고를 마치고 짝꿍의 퇴고만 남았다고 하니, 이제 정말 끝이 보인다. 얼른 마무리하고 싶다.

그런데 이 과정을 여러 번 겪어온 작가님들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어떻게 매번 이 불안과 기대 사이에서 글을 완성해낼 수 있을까.

카페를 나와 돌아오는 길, 주상절리에 들렀다. 2,000원의 관람료와 주차 요금.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풍경 중 하나지만, 오늘따라 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들어 살짝 한기가 느껴졌다.

주상절리 해변을 걸으며 문득 생각했다. 이곳은 돈을 주고 볼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며칠 전 송악산에서 내려다본 해변의 충만함이 너무 컸던 탓일까. 오늘의 주상절리는 조금 밋밋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하고, 혼자 셀카도 찍어보았다. 역시 셀카는 어렵다. 각도며 표정이며, 모든 게 어색하다.

오는 길에 '몬딱'이라는 곳에 들렀다. 감귤 농장을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라고 한다. '몬딱'은 제주어로 '몽땅'이라는 뜻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음과 재능을 나누며, 문화와 예술을 즐기는 공간. 그 설명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늘 하루는 원고를 고치고, 바다를 보고, 바람을 맞고, 새로운 공간을 알게 된 날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이런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문장을 다듬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바람을 맞으며 걷고, 낯선 공간에 발을 들여놓으며 마음을 채워야 한다. 그 모든 것이 결국 다시 글이 되어 돌아온다.

멋진 공간을 알게 되어 고마웠던 하루.

그리고 조금씩, 천천히, 책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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